재혼가족이 초혼가정과 다른 점

2017. 2. 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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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증가한 재혼가정 수만큼 그에 따른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이를 소재로 한 세계적인 감독 프랑수아 오종(Francois Ozon)의 영화 ‘리키’(Ricky) 가 실재하는 듯한 캐릭터들의 심리묘사로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 제목인 '리키'는 싱글맘인 케이티가 같은 공장에서 동료로 만난 파코와 사랑에 빠진 뒤 낳은 아기의 이름이다.

여느 가정처럼 축복 속에서 태어난 아기지만, 재혼가정에서의 '아기의 탄생'은 반드시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파코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케이티의 딸 리사에게 '리키'의 탄생은 자신을 더 외롭게 만드는 '또 다른 낯선 가족'의 탄생일 뿐이다.

영화는 재혼가정에서 태어난 리키의 특별함으로 인해 가족 간에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친밀해져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혼율의 증가는 ‘돌싱’이나 리본족(Re-born족: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로 경제력을 갖춘 젊고 매력적인 재혼 희망 남성’을 가리킴)과 같은 관련 신조어와 더불어 ‘재혼가정’을 탄생시켰다.

영어로는 스텝 패밀리(Step family)로 여기서의 'step'은 '한 걸음 건너 뛴'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 '걸음'이 가족이 되기 위해 '직접 다가가는 걸음'이 된다면 어떨까. 영화 '리키'는 이렇듯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있다.①

이처럼 재혼가족은 초혼가정과는 달리 새로 구성 편입되는 가족구성원 수만큼이나 다양함과 그 특징을 안고 출발하게 된다.

그래서 초혼가정에서 적용되는 많은 생활모습 - 규칙이나 생활방식 - 과는 사뭇 다른 그 가족 특유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초혼가정 또는 원가족의 모델이 재혼가정에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재혼을 해서라도 초혼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재혼에 임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런 생각이 재혼가정을 더 힘들게 하는 출발점이 된지 모른다.② 초혼가족과는 다른 재혼가족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재혼 가정 문제 전문가인 퍼트리샤 페이퍼나우 박사는 재혼 가정이 겪는 문제를 초혼 가정과 동일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보스턴 지도를 가지고 뉴욕 시내 거리를 찾아다니는 것”으로 비유한다. 사실, 재혼 가정이 직면하는 문제는 매우 독특할 뿐만 아니라 초혼 가정에 비해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 심리학자인 윌리엄 머르켈은 재혼 가정을 가리켜 “인류가 알고 있는 인간관계 중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부자연스러운 관계”라고 기술했다.③

특히 재혼에 대한 잘못된 신화 중의 하나는 ‘초혼핵가족복원의 신화’로서, 재혼과 더불어 부부관계, 부모-자녀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잃어버린, 혹은 파괴된 초혼의 가정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혼가족은 가족역동성, 가족경험, 상호간의 기대 등 여러 부분에서 초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복잡다단함을 경험하게 되고 이것은 초혼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스트레스와 긴장을 낳는다.④

결국 재혼가족이 초혼가정과 다른 점, 혹은 차이점을 우리는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진-pixabay

① 생물학적 측면

▷ 재혼가족은 가족상호간에 대한 친밀감이 낮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재혼가족들은 초혼의 원가족만큼 가깝지는 않다. '새 부모-새 자녀관계'는 초혼에서 맺어진 '친부모-자녀'만큼 정서적으로 가깝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긴장감 때문에 재혼가족들이 친 혈족에 따라 두 패로 나뉘어질 수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양은 아빠의 재혼을 반기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다. 새엄마와 여동생이 지난해 8월 김양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새로운 가족과의 생활이 시작됐다. 가시적인 갈등은 남동생과 여동생 사이에서 시작됐다. 남매 중 막내로 자라오면서 항상 관심을 받아오던 김양의 남동생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새엄마가 데리고 온)여동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아빠가 여동생을 귀여워하면 그 자리에서 짜증을 부리거나 떼를 쓴다. 그러면 새엄마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고 아빠는 또 남동생만 타박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김양은 동생들이 싸우면 점점 더 남동생 편을 들게 되고 여동생과 함께 있는 시간이 싫어서 피해 다니려고 한다.⑤

두 가족이 합쳐진 후 재혼가족들이 ‘살수록 친밀해지는 것일까?’에 대해 경험적지지 연구는 아직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재혼가족이 가정적 기능을 원만히 회복할 수만 있다면 이를 계기로 정서적 친밀함이 초혼의 원가족과는 거의 구별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 가정을 제시하고는 있다.

부모 재혼시 이미 나이가 ‘성인’이 된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가족구성원’ 이전에 '동거인' 수준으로 만족해야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 각각 기존의 부모자식 동맹이 여전히 존재한다.

재혼가정에서는 부모 중 한 명 또는 두 명 모두 이전 결혼에서 생긴 자녀들이 있을 수 있다. 재혼가정에서 존재하는 이전의 부모자식 동맹관계는 부부유대보다 먼저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새자녀 관계로 가정은 흔들릴 수 있다.

재혼 후 부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소생인 남매와 아내의 소생인 딸들이 벌이는 ‘힘겨루기’게임이 시작되어 집은 다툼이 끊일 날 없고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아이들의 싸움에 두 부부의 감정이 개입되고 그때마다 ‘자기 아이들’ 편들기가 볼썽사납게 시작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양상은 부부에게도 금이 갈만큼 심각해져만 갔다.⑥

아이들 문제에 관한한 새부모(=의붓부모)의 권위가 도전받거나 그 역할하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 어딘가에 또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생물학적 친부모가 작용한다.

생물학적 부모는 항상 아이들에게 중요한 존재이므로 아이들을 통해 재혼가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녀들은 현실과는 갈등하지 않는, 부재(不在)부모를 완전한 부모로서 상상할 수 있다.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잔소리 투성이의 부모나 새부모와 살지 않고 헤어진 '진짜부모'와 살았다면, 그들의 생활이 휠씬 좋아 졌을 거라는 강한 믿음에 집착한다. 아이들이 기억 속에 둘 이상의 부모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접촉이 많지 않았던 부모라 해도 자녀들의 머릿속에는 부재(不在)부모에 대한 기억들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부재 부모라면 잘 해결해 주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⑦

▷ 가족경계가 애매하다.

가족에는 속해 있으나 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를 상정해야한다. 가령 아이들이 이집 저집 옮겨 다니는 경우와 그리고 아이들은 새부모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 함께 살지 않는 부모들은 아이들과 가끔 접촉을 하거나 만난다하더라도 아이들은 가족명단에서 제외된다. 새 형제(=의붓형제) 간에도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② 정서적 측면

▷ 재혼가족 구성 초기에는 가족전체가 '과도기'단계임을 서로 인식한다.

'과도기'란 글자 그대로 불안한 단계를 의미한다. 이합집산 후 새로운 안정단계에 들어가기 직전 단계에 해당한다.

재혼가족 구성원들이 편부/모 가정에서 벗어나 새로 통합된 재혼가정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과도기 내 발생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 모든 변화와 혼란스러움에 대한 격한 정서적 스트레스를 예상할 수 있다.

오래전에 이혼한 정수진(51·가명)씨와 김종훈(56·가명)씨는 지난 가을 재혼했다. 고교 영어 교사인 정씨는 자녀 두 명 중 아들은 전 배우자가 키우고 20대 딸은 자신이 키우고 있다. 김씨는 증권사에 다니는 딸 하나를 둔 상태. 두 사람은 결혼정보 회사를 통해 만나 서로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쉽지 않은 결정 뒤에도 크고 작은 싸움과 의견 충돌이 계속되고 있지만 “서로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진짜 가족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⑧

▷ 재혼가정이 '한 가족'으로서 기능 하기 위해서는 긴 통합기간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재혼가족의 통합과정이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 하는 데는 4~5년이 걸린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혼가정이 초기의 어떤 어려움도 없이 초혼가정 또는 원가족처럼 가족기능이 원만하게 잘 돌아갈 것이라는 비현실적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재혼한 성인들조차도 재혼가족의 가족관계가 어떤 노력도 없이 잘 될 것이라는 희망적 기대감이 포함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절적인 기대들이 현실화되지 못했을 때 재혼가족들은 예기치 못한 혼란을 겪는다.

재혼가족(blender/blended family, 혼합가족)의 통합과정을 요리에 비유해보자. 대부분 맛있는 음식들은 신선한 식자재를 각종 양념과 함께 요리방법에 따라 적절하게 섞어서(혼합, blender) 전자레인지 압력솥 혹은 푸드 프로세스 과정을 통하여 빠르게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런 요리 스타일은 재혼가족의 패밀리 성분을 충분히 녹여 내지 못하므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통적으로, 열이 가해지면 서서히 데워지는 오래된 낡은 냄비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비유한다. 재혼가족을 통합하는데 빠른 요리법은 없으며, 오직 숙련된 모범이 필요할 뿐이다.⑨

▷ 가족 내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세밀한 관찰과 주의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물학적 유전성향과 다른 가족 내 성장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현장에서 맞부딪치는 곳이 재혼가정이다. 당연히 차이점이 발생하고 곳곳에서 불평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새로운 기준이 아닌 어떤 특정한 기준(재혼전의 어떤 부모 또는 어떤 자녀의 기준)만이 강요된다면, 그 특정기준을 근거로 나머지 기준이나 습관, 행동 가치가 부정되거나 제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평정과 균형을 찾기가 어려워 질수 있다. 새로운 가족 규칙이 서둘러 마련되어야 한다.

▷ 재혼가족은 많은 상실과 변화를 겪은 후 모인 가족이다.

재혼은 초혼에서 있었던 모든 것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온다. 그 변화가 초혼 때의 많은 것-기회, 꿈, 관계, 경험-들의 상실을 수반 하는 것이 대부분일 수 있다.

초혼 때 함께 했던 많은 것을 잃게 하고 모두에게 친숙한 주변 환경도 잃게 된다. 여기에는 특히 초혼에서 가졌던 가정이나 결혼의 환상이 깨지면서 가족모두에게 내면적 슬픔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의식에 잠재 돼 있을 수 있다.

▷ 재혼가족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주는 가족사가 아직 없다.

친부모와 친자녀는, 공동의 경험과 가족생활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두가정이 합친 재혼가족들은 하나의 단위로서 공유했던 역사가 아직 없다.

새로운 상호작용 유형을 만들어내야 하고 가족공동의식 즉 재혼가족의 새로운 정체감을 발전시켜야 한다.

가족의례, 공유된 행동 규칙 등을 가족합의하에 창출해야 한다. 가족의 역사를 만들기 위한 절대적 시간과 조율,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재혼가정 초기에는 아직 가족의 역사가 없다. 가족 역사가 생겨나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가 전개되면 집단에 소속감이 생기고 일상생활과 일을 처리해 나가는 특별한 방식에 점차 친숙해진다. 건강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간 '시간'이라는 자원을 서로에게 제공해야 한다.⑩ ③ 사회 구조적 측면

▷재혼가정을 바라보는 편견이 강하게 남아 있다.

초혼가정에 비해 필요한 만큼의 사회적 지지를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재혼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아직은 우리 사회나 이웃에 기능하는 최소사회단위임을 수용·인정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재혼가족도 대외적으로 핵가족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이 스트레스를 증가시킬 수 있다.

가족법이 최근 개정되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지만 결혼의 한 형태로 '재혼'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 대한 사회적 감정은 아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재혼가족은 초혼가족에 비해 구조가 복잡한 구성단위로 되어 있다.

가령 이혼 후의 재혼관계를 따져보면 부모의 위치에서 4명의 성인-어머니와 새아버지, 아버지와 새어머니-을 갖게 된다. 그리고 두 가정 사이에 '그의' 그리고 '그녀의' 자녀들과 만일 재혼한 부부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의' 자녀가 있을 수 있다.

4명의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친족관계까지 확대 된다면 훨씬 더 많은 인간관계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복잡다단한 '초 가족 체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 가족의 생활주기(=세대)가 다를 수 있다.

세대차이가 나는 가족구성원들이 재혼가정에서 한 가족을 이루게 될 수도 있다. 가령, 연령차이가 많은 재혼부부들에게는 역시 연령차이가 크게 나는 자녀들이 있게 됨으로서 발달 단계상 일치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불일치가 재혼가족에서 일어나면 구성원들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갖기가 어렵게 된다.

사진-pixabay
재혼가정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생활모습은 원가족 혹은 초혼가족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나 문화적 신념 때문에 재혼가족은 그 특수성이 반영된 가족체계로 자리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재혼가족 구성원들에게 문제를 예견하고 또한 앞으로 현존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갈 해결책을 강구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혼에 임하는 개인들 역시 가족관계에 대한 재혼가족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자녀들은 초혼가정처럼 처음부터 무조건 부모에게 복종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존경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단정하는 것 등인데 이러한 현상은 재혼 가족만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수도 있다.

재혼할 때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재혼가족(An Instant Family)도, 그들이 정상적인 가족 또는 초혼의 원가족과 같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혼의 원가족 처럼 가족 구성원 간에 사랑이 즉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새부모는 재혼가족이 초혼과 같은 생물학적 가족처럼 기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나는 새로운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새자녀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이미 아이들 기억 속에는 생물학적 친부모가 자리 잡고 있어서 새로운 배우자가 부모역할을 하는 데는 거부감을 갖는다. 그래서 새부모들은 아이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⑪

재혼부모의 역할, 가족가치와 친밀함,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 있게 하려는 욕구 등과 관련된 명확한 문화적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 현실에서, 재혼가족이 늘어나는 만큼 오히려 재혼관계에 갈등만이 양산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혼이든 재혼가족이든 가정을 꾸려 나가야 할 방식의 근본원리는 사랑이다. 이때 사랑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조화가 있든 갈등이 있든 기쁨이 있든 슬픔이 있든 이것은 두 사람 혹은 그들 가족내부에서 그들의 실존의 본질로부터 도피하기 보다는 그들 자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서로 일체감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곧 사랑이다.⑫

영화 ‘마미’(Mommy, 감독/자비에돌란)의 이야기는 청소년 보호시설에 보내졌던 아들 스티브가 엄마가 있는 디안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소년원에서 갓 돌아온 아들 스티브가 처음부터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ADHD, 즉 ‘주의력 결핍’과 ‘과잉 행동’으로 주위 사람 힘들게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3년 전 아빠가 떠난 뒤 그리되었다. 생각이 거칠고 말은 더 거칠고 무엇보다 행동이 가장 거친 아이. 엄마는 스티브를 청소년 보호시설에 보냈다.

싱글맘 디안 다이 데프레도 처음부터 그런 엄마는 아니었다. ADHD로 진단받은 아들을 보호시설에 떠넘길 만큼, 처음부터 모진 엄마는 아니었다. 3년 전 남편이 떠난 뒤 그리되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가난한 싱글맘이 점점 더 거칠어지는 아이까지 제대로 건사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보호시설에 맡겼는데 더는 맡아줄 수가 없단다. 집으로 돌아와 버린 아들. 감당하기 힘들어 떠나보냈던 녀석을 이제부터 다시 디안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

카일라가 처음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디안의 앞집으로 이사 오기 전, 그래서 커튼 사이로 힐끔힐끔 디안과 스티브를 훔쳐보기 전에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말해줄 사람이 없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그리되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미처 다 토해내지 못한 응어리가 가슴을 짓눌러, 그만 말더듬이 틱 장애를 갖게 되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그러다 다시 한 번, 꾸역꾸역 잘만 살아내는 자기 자신이 참 미워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그냥 방치해온 자신의 인생을, 혹시 앞집의 그들과 함께라면 다시 감당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딴에는 제법 큰 용기를 냈을 것이다.

영화 ‘마미’의 이야기는 스티브가 디안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카일라가 디안의 집으로 가려고 길을 건너면서 시작된다. 스티브의 곁을 카일라가 함께 지키면서부터, 그리고 카일라가 디안에게 자신의 곁을 내주면서부터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 불쑥불쑥 관객 앞에 튀어나온다.⑬

점 두 개를 연결하면 ‘선’이 되지만 점 세 개를 서로 연결하면 ‘도형’이 된다. 평행한 선들로는 기껏 ‘기호’를 만들 뿐이지만 그 선들이 서로에게 기대는 순간 ‘도형’이 생긴다. 도형이란, 곧 하나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 점과 점을 잇는 선이 다른 선과 손을 맞잡고 자신들만의 우주를 확보하는 것. ‘마미’의 세 주인공도 그들만의 도형을 만들어간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삶을 각자 끌어안고 휘청이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의 삼각형을 만들어간다. 하나의 우주로 합쳐진다.

어떤 면에서 재혼가족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의 일체감에 목말라 하는지 모른다.

<글 출처 및 인용 참고문헌>

① 이두리 기자, 포근한 판타지'리키', 스텝 패밀리를 말하다!, 아츠뉴스 , 2010/01/06

② L.H.가농& M.콜맨, 재혼가족관계, 김종숙 역, 한국문화사(2003) p.153-170/ E.B.비셔& J.S비셔, 재혼가정치료, 반건호& 조아랑역, 도서출판 빈센트(2003), p.66-99/건국대 과제수행 리포트 '재혼가족'(http://cafe.daum.net/dlsrnjs12) 참조정리

③독특한 어려움을 겪는 재혼 가정,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http://m.wol.jw.org)

④ 김연옥, 재혼가정의 가족기능향상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시론적 연구, 한국사회복지학(2004).Vol36.No2, p. 215-233

⑤ 안인용 기자, 너무나 복잡한 가족의 탄생!, 한겨레21, 2006년 10월 24일

⑥ 김미애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행복을 여는 효제상담 뜨락] 배우자의 아이를 사랑하라, 매일신문, 2014.10.02

⑦ 강희남, 내인생의 터닝포인트 이혼, 그리고 재혼, 키메이커(2016), p.460

⑧ 이하나 기자, 2011 대한민국 가족|재혼가정, 여성신문, 2011-05-20

⑨ Ron L. Deal, 10 Things to Know Before You Remarry (http://www1.cbn.com), 내용참조정리

⑩ 김용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가족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투자하세요, 동아일보, 2008.05.22

⑪ "By Jeffrey Cottrill, How To Create a Successful Stepfamily(www.stepfamily.org), February 12, 2016, 내용참조 정리

⑫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김진유 역, 서음출판사(1990), p.108

⑬ 김세윤(방송작가),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사랑해’ 영화 [마미], 시사IN[380호], 2014.12.26

[강희남 한국전환기가정센터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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