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띠 명산ㅣ계룡산 르포] 계룡이 뿜어내는 새벽닭 소리가 들리는가!

글·월간산 신준범 기자 2017. 1. 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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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의 시대가 왔다. 정유년 닭의 해, 주인공은 계룡산(鷄龍山)이다. 닭이 주인공인데, 닭이 말썽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를 비롯해 나라가 백두대간 능선처럼 크게 굽이치는 시국이다. 짙은 가스 속에서 날카로운 바위길을 오르는, 위태로운 시간이다.

하지만 산꾼들은 깨끗하게 가스가 걷히는 순간, 더 큰 감동을 맞게 될 것을 안다.

[월간산]계룡의 자연성릉 곁으로 햇살 머금은 지능선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자연성릉이란 말이 맞아 떨어지는 계룡의 백미 구간이다.
계룡산은 격이 다르다. 풍수지리적 길지라 옛날부터 ‘영험한 산’으로 통했다. 무학대사는 계룡산을 두고 “금계포란형(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이요, 비룡승천형(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했다. 정상인 천황봉에서 쌀개봉과 삼불봉으로 이어진 바위능선은 닭벼슬을 한 용의 형상이라고 보았다. 때문에 닭과 용을 한 자씩 써서 산 이름이 되었다.

박정자삼거리에서 동학사로 이어진 벚나무 가로수 길을 지난다. 벚꽃터널이 없는 동학사계곡은 한가해서 산에 온 것 같다. 봄의 동학사계곡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유커(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한 명동거리마냥 이질감이 들곤 했다.

[월간산]삼불봉 데크 계단에서 본 계룡산 줄기. 주능선이 닭 벼슬처럼 늘어서 있다.
추위 탓에 산객은 적고 공기는 맑다.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의 근황을 알려 주려는 듯 찬 공기가 도시 매연에 찌든 폐를 깨운다. 번쩍 정신이 든다. 멍에처럼 들러붙었던 잡념이 계곡 저만치 떠내려가는 것만 같다. 수염을 기른 개성 넘치는 두 명의 사내와 함께한다. 본지 객원 사진기자인 김준영 사진가와 전형준 한국시각콘텐츠학회장이다. 김준영씨는 산을 좋아하는 광고사진가이며, 전형준씨는 산을 좋아하는 홀로그램 전문가다.
계룡산의 대표적인 명찰인 동학사와 갑사를 잇는 코스다. 상원암, 삼불봉, 관음봉, 등운암을 잇는 코스이니, 명찰명봉 순례길이다.

정갈한 동학사에 들른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천년고찰 동학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승가대학이다. 깨끗하고 단순한 대웅전 앞마당에서 계룡산이 올려다 보인다. 닭벼슬을 닮았다는 쌀개릉 암릉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학사를 나와 남매탑으로 이어진 산길을 오른다. 때죽나무와 졸참나무, 물푸레나무가 가득해 하늘은 야윈 가지가 점령했고, 땅은 낙엽의 바다다. 오름길이 서서히 심장과 근육을 데운다. 속세와의 연을 잠시 끊어놓을 심산인 게다.

[월간산]동학사 대웅전 너머로 쌀개릉이 버티고 있다.
광장처럼 너른 남매탑에서 가쁜 숨을 풀어내며 땀을 말린다. 동학사 창건의 기원이 되는 상원조사의 전설이 있는 두 개의 탑이다. 상원조사가 이곳에 토굴을 만들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입 속에 큰 가시가 있어 뽑아 주었더니,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 내려놓고 갔다. 처녀는 경북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첫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겨울이라 눈이 쌓여 돌려보낼 수 없어 계절이 바뀐 뒤 처녀를 돌려보냈다. 처녀의 부모는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스님에게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길 바랐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수행하다가 한날한시에 입적했다고 한다.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제자인 회의화상이 사리를 담은 탑을 세웠는데, 남매탑 또는 오누이탑이라 불리게 되었다. 보물 제1284호와 1285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구니 승가대학인 동학사와 무척 잘 어울리는 전설이다.

정유년은 계룡산과 맞아 떨어지는 해

[월간산]동학사에서 남매탑으로 이어진 활엽수 우거진 숲길.
돌계단에 고개를 바싹 묻고 오르자, 세 부처의 봉우리인 삼불봉(三佛峰)이다. 천황봉이 계룡산에서 가장 높은 정상이라면, 삼불봉은 불교의 깨달음의 정점이고, 관음봉은 그 중간에 위치한 등산인의 정상이다. 삼불봉은 멀리서 보면 세 분 부처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 같다 하여 유래한다. 천황봉과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과 연천봉까지 속 시원하게 펼쳐진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시작처럼 웅장하고 현란한 변주로 능선을 풀어놓았다. 능선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정유년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금의 기운을 상징한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의 계룡과 맞아떨어지는 해다. 등산인이라면 계룡산을 찾을 이유가 한 가지는 생긴 셈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계룡은 밀도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부담 없는 당일산행지다. 산이 크지 않아 산행이 수월한 편이며 경치도 화려해 어느 코스로 오르더라도 후회할 일이 없다.
[월간산]상원조사의 동학사 탄생 설화가 담긴 남매탑.
성벽 같은 수려한 바위능선을 이어간다. 산행의 백미인 자연성릉이다. 실제 성벽처럼 바위절벽이 이어져 산행의 맛이 쏠쏠하다. 멋들어지게 용틀임한 절벽 사이의 소나무가 풍치를 더하고 산꾼들은 벼랑 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관음봉으로 이어진 고비는 끝없이 이어지는 철계단길. 계단을 오를수록 경치가 화려해진다. 용의 등골을 타고 비상하는 것 마냥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짜릿함에, 누구든 기념사진을 찍으며 걷게 된다.
관음봉에 오르면 계룡이 한눈에 든다. 용의 갑옷 같은 자연성릉과 뿔처럼 뾰족하게 솟은 문필봉과 연천봉이 시야에 잡힌다. 천황봉이 가장 높은 정상이지만, 군 시설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766m인 관음봉이 등산인들의 정상 역할을 한다. 산세를 봐도 연천봉, 천황봉의 가운데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봉우리다. 관세음보살처럼 자비롭게 산행의 즐거움을 무한정 내어주는 봉우리가 관음봉이다. 팔각정과 표지석이 솟은 바위지대, 전망데크가 모두 있어 정상에 오른 즐거움을 골고루 만끽할 수 있다.
[월간산]관음봉 정상으로 이어진 철계단에서 본 자연성릉과 삼불봉. 서쪽 사면은 완만하고 동쪽 사면은 자연성벽을 이루며 가파르게 솟았다.
산길은 문필봉을 우회해 연천봉에 오르도록 이어져 있다. 연천봉은 계룡의 서쪽 끝에 솟은 해넘이 전망대다. 해넘이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쌀개릉의 뒷모습이다. 대전 방면에서 본 계룡산을 주로 이야기해 왔지만, 연천봉에서는 계룡의 숨은 이면을 볼 수 있다. 둥글둥글한 암릉이 고집스럽게 자리 잡은 채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긴 세월을 관조하고 있다.

천황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진 쌀개능선이 닭의 벼슬 같아 보인다. 붉은 닭의 해에 어울리는 산경이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쌀개릉은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을 뜻한다. 무언가 빌어야 할 것만 같다.

닭은 어둠을 물리치는, 새벽을 알리는 존재다.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라의 새로운 비상을, 계룡을 비추는 오후 4시의 햇살에 실어 빈다.

연천봉 아래 자리한 여유로운 터의 등운암 해우소에서 근심을 비우고 갑사계곡으로 내려간다. 무릎 시린 가파른 돌계단이 단시간에 고도를 훌쩍 내리도록 도와준다.

[월간산]자연성릉에서 본 관음봉. 긴 철계단을 올라야 관음봉 정상에 설 수 있다.
어둑해져 산행이 어려울 즈음 갑사가 포근하게 맞아 준다.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화상이 420년에 세운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라는 갑사다. 우위에 있는 자의 횡포로서의 갑이 아닌, 역사적 깊이와 수행의 깊이에 있어서의 갑일 것이다. 붉은 닭의 산을 내려오니 짙은 어둠 속이다.

[계룡산]

845m
충남 공주시 계룡면·반포면

[월간산]관음봉 정상 표지석 뒤로 전망데크가 있다.
산행 거리 10.1km
산행 시간 5시간 30분
산행 난이도 중(가파른 계단 간간이 있음)
[월간산]삼불봉 정상. 천황봉과 관음봉, 자연성릉이 보이는 조망명당이다.

산행 길잡이

국립공원이라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길찾기 어려운 곳은 없다. 다만 길이 꺾이는 지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거친 바위산이지만 등산로는 정비가 잘돼 있어 위험한 곳은 없다. 다만 가파른 계단이 길게 이어지는 곳이 많아 기본 체력과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동학사를 기점으로 남매탑과 삼불봉을 거쳐 관음봉~연천봉~갑사를 잇는 코스는 계룡산의 달콤한 알맹이만 쏙 빼먹는 코스다. 산행의 백미는 삼불봉과 여기서 관음봉으로 이어진 자연성릉, 관음봉, 연천봉, 갑사이다. 갑사는 보물을 여러 점 간직한 유서 깊은 사찰이라 은은한 깊이가 있다. 원점회귀하려면 관음봉에서 바로 동학사로 내려가거나 연천봉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가 동학사로 하산하면 된다. 관음봉에서 연천봉까지는 30분이면 닿을 수 있으며, 오르막이 적어 산행이 수월하다.

연천봉 아래 등운암에 화장실이 있다. 연천봉에서 갑사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편이므로 이전에 다리가 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갑사에서 도로 따라 1km 내려가면 주차장이 있는 버스정류소에 닿는다. 동학사 문화재관람료는 2,000원이며, 동학사 주차료는 하루 4,000원이다. 갑사 주차료는 하루 3,000원이다.

교통

[월간산](윗쪽 사진)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진 능선길. (아랫쪽 사진) 연천봉에서 본 천황봉. 조선이 개국 482년 만에 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명한 석각이 새겨져 있다.
대전역에서 동학사까지 운행하는 107번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유성시외버스터미널을 경유하며 대전역에서 출발하는 첫차는 새벽 5시 50분이며, 동학사에서 대전으로 나가는 막차는 밤 10시 30분이다.

갑사에서는 공주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30분에 한 대꼴로 운행한다. 갑사에서 신원사를 거쳐 호남선 공주역으로 가는 205번 버스는 하루 2회(09:50, 15:30) 운행. 갑사에서 동학사 주차장으로 택시를 타고 갈 경우 3만 원 정도 나온다. 문의 공주개인택시 041-858-5949, 858-8115.

숙식(지역번호 031)

동학사 입구와 갑사 입구에 식당과 숙소가 널려 있다. 백숙, 파전, 오리고기, 산채비빔밥, 더덕요리 등 먹거리가 즐비하다. 청주식당(042-825-2879) 더덕백반이 맛깔스러운 편이다. 더덕백반 1만2,000원, 산채한정식 1만5,000원. 오리요리 전문점 감나무집(042-826-5256), 간장게장·갈치구이 전문점 싸리골(041-856-9300), 돼지고기구이 전문점 돈금정(042-825-9257) 등이 있다.

갑사 인근 수정식당(041-857-5167)이 소문난 맛집으로 민박도 가능하다. 산채비빔밥(8,000원), 버섯전골정식(1만5,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갑사 인근의 대형숙소로 갑사유스호스텔(041-856-4666)이 있으며, 동학사 입구에는 계룡산의아침(042-825-3401), 동학사펜션(042-825-5700) 등 펜션이 즐비하다. 계룡산 인근에는 충청남도에서 운영하는 금강자연휴양림(041-635-7400)이 세종시 금남면에 있다.

[월간산](윗쪽 사진) 연천봉 아래의 등운암. (아랫쪽 사진) 계룡산의 유서 깊은 사찰인 갑사.
[월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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