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야, 아무리 추워봐라 나는 따끈한 사케 마시지

2017. 1.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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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한겨레]

‘온나나카세’. 데렉 제공

<너의 이름은>이란 일본 애니메이션이 최근에 개봉했다. 영상미도 영상미지만 감독 특유의 애절함이 마음을 움직여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 깊게 보았다. 영화 속 한 상징물로 ‘미인주’가 등장한다. 사람이 쌀을 입으로 씹어 침 속의 효소로 쌀의 전분을 분해시켜 만드는 아주 옛날 방식의 술이다. 일본의 고대 시집인 <만요슈>에 처음 등장하고 최초의 니혼슈(일본주, 이하 사케)라 여겨진다. 하지만 꼭 일본이 기원인 술은 아니고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는 내내 미인주와 관련된 장면들이 나오니 사케를 처음 마셨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다니던 대학 근처 오래된 상가 건물 1층 구석에 작은 꼬치구이 술집이 있었다. 처음 들른 날도 그랬다. 평소처럼 지칠 대로 지쳐서 연구실을 나와 집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우연히 구석에 술집이 있는 걸 발견하고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땐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었는데 왜 그랬었는지…. 아마도 향긋한 꼬치구이 냄새에 끌렸었던 듯싶다.

꼬치구이에 맥주를 한잔 했다. 겨울이다 보니 이내 몸이 으스스 떨려왔었다. 좀 춥다고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했더니 사케를 한잔 마셔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따끈하게 마시는 술이라니! 신기해하며 한잔을 했다. 얼었던 몸이 속부터 따뜻해졌고 이어 머릿속 팽팽하게 땅겨져 있었던 신경줄들도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긴장을 풀 수 있었던 그날 뒤로 겨울 동안 가끔 그곳에 들렀다.

사케는 쌀 속 전분을, 누룩을 사용해 포도당으로 변환시킨 뒤 이 포도당을 효모로 발효시켜 알코올로 만드는 대표적인 발효양조주 중 하나다. 술도 음식인지라 사케도 재료와 제조법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사용한 쌀 품종, 누룩, 효모는 물론 양조 방법에 따라서도 맛이 좌우된다.

사케의 주재료는 쌀 속의 전분이다. 이 전분은 쌀알의 바깥 부분보다 안쪽에 집중되어 있어 사케 제조 때 쌀을 많이 깎아낸 후(정미) 만들수록 고급 사케로 취급받는다. 보통 조미료나 양조알코올을 쓰지 않고 쌀로만 만든 술을 준마이슈(純米酒), 특수한 효모를 사용하고 정미율을 높여서 극저온에서 저속으로 발효시킨 술을 긴조(吟?), 긴조의 상위 카테고리로 정미율을 50% 이상 높여서 만든 술을 다이긴조(大吟?)라고 보통 칭한다. 그밖에 위스키의 캐스크 스트렝스처럼 물을 타지 않고 그대로 출하하는 술을 겐슈(原酒), 출시할 때 열처리를 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 있는 채로 출하하는 술을 나마자케(生酒)라고 한다.

즉 ‘준마이 다이긴조’라고 하면 쌀을 50% 이상 정미한 후 저온·저속 발효시켜서 양조알코올이나 다른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만든 사케를 의미한다. ‘나마겐슈’라고 하면 발효 후 열처리를 하지 않고 물을 타지 않은 채로 출하하는 사케로 보면 되겠다.

최근 ‘쿠마가이주류’나 ‘수을도가’ 같은 뜻있는 수입사들 덕분에 ‘나베시마’나 ‘우스키’ 같은 좋은 사케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이런 술은 대부분 일식주점에서만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케 중에는 준마이긴조급인 ‘조젠미즈노고토시’와 준마이다이긴조급인 ‘온나나카세’(사진)가 국내 사케 동호회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 두 술은 마트에서 볼 때마다 한 병씩 사오는 편인데, 보통은 차갑게 마신다. 따뜻하게 마시고 싶을 때는 긴조급의 ‘덴운’을 주로 선택한다. 물론 보통 차갑게 마시는 술을 따뜻하게 데워 마셔도, 보통 데워 마시는 술을 차갑게 마셔도 상관은 없다.

특히나 겨울엔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방구석에 작은 탁자를 가져다 놓고, 따로 안주를 만들기도 번거로우니 냉장고에서 젓갈을 약간 갖고 와서 따끈하게 데운 사케 한잔과 함께 즐기곤 한다. 술 한 모금을 목 뒤로 넘기고 고개를 들어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겨울엔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가보고 싶다. 손을 잡고 학교 교정을 같이 거닐며 여기서 아빠가 공부했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학교 앞 꼬치구이집이 아직 있다면 거기서 아빠는 사케 한잔을, 아들은 꼬치구이를 먹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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