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호의 문자로 보는 세상] (38) 덕금 닮은 정치 지도자

김신성 2017. 1. 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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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부르는 닭울음처럼.. 활기잃은 한국 깨울 대통령 오길
붉은 닭띠 새해의 첫 주간이다. 해넘이와 해맞이를 위해 국민안전산악회 회원 및 아청안전지도사들과 함께 변산반도를 찾았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 탓에 지는 해도 뜨는 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저 구름 뒤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은 또 그렇게 지고 떴을 것이다. 논리적 근거가 없음에도, 흐린 날씨를 두고 청와대를 거점으로 한 국정 농단의 흐린 정국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동력 잃은 한국호에 대한 지나친 염려 탓인가, 아니면 나쁜 생각인가. 지난여름의 천둥이 뇌성과 번개를 동반한 하늘의 아픔이었다면, 겨울의 국정 농단은 함성과 불길을 동반한 광장의 아픔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하리란 위험한 진리를 믿고, 웬만한 통증은 참아야 하는가. 장기화, 양극화되어가는 광장의 함성으로 국민과 언론의 목은 쉬어가고, 꺼지지 않는 촛불로 밤잠의 안식을 놓친 정치와 경제는 혼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지나간 일 돌이켜 걱정하는 사람과 다가오지도 않은 일을 당겨서 걱정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럼에도 올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두 귀 쫑긋 세우고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살피며 나쁜 생각을 하고 싶다. 그리하여 수탉처럼 목청껏 세 번 소리 지르고 동방(東邦)을 밝혀 줄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싶다.

닭은 새벽을 부르고 새벽은 광명을 부르며, 광명이 어둠을 몰아내면 온갖 잡귀는 어둠과 함께 도망친다. 대장 수탉이 홰를 치고 울면 온 세상의 닭들도 따라 운다. 세 번 울면 여명이 온다. 닭의 울음소리는 이 땅의 모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경사로운 일만 넘치게 한다는, 벽사진경(?邪進慶)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닭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 우리 선조는 첫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었으니, 여기에는 나라와 백성이 재앙은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들이길 바라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의 의미가 담겨 있다.

닭은 12지(支) 중에 날개를 달고 있는 유일한 동물로, 닭의 시간을 유시(酉時)라 하며 오후 5~7시를 가리키는데 이때는 대개 닭이 홰에 올라가는 시간이다.

선조는 닭을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길조(吉鳥)’라 여겼다. 그리하여 닭은 지명이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최병남)에 의하면 우리나라 140만여개의 지명 중, 닭실마을, 계룡산, 계명산, 계족산 등과 같이 닭과 관련된 지명으로 293개가 있다.

동양화나 민화에서 하늘을 보고 우는 수탉이 모란과 함께 있으면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뜻한다. 이때 모란은 부귀(富貴)를, 수탉은 공명(功名)을 상징한다. 동양화는 보는 게 아니라 ‘읽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발음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수탉은 중국어로 공계(公鷄)라 하는데, 여기서 ‘공(公)’은 ‘공 공(功)’으로 읽고, ‘명(鳴)’은 ‘이름 명(名)’으로 읽어야 비로소 ‘수탉이 욺’은 ‘공명(功名)’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수탉의 붉은 ‘볏’은 ‘벼슬’과 발음이 비슷하여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뜻한다. 맨드라미의 별명이 ‘계관(鷄冠)’인데 이는 모양이 닭의 볏과 비슷한 데에서 온 말이다. 만약 수탉과 맨드라미를 함께 그리면, ‘관 위에 또 관을 더한다’는 뜻의 ‘관상가관(冠上加冠)’이 된다.

닭을 호랑이와 함께 그려 대문이나 집안에 붙이기도 했는데 이는 ‘벽사초복(?邪招福)’을 바라는 뜻에서다. 만약 암탉과 여러 마리의 병아리를 함께 그리면 ‘자손 번창’을 바라는 그림으로 읽어야 한다.

중국 전한의 학자 한영(韓?)이 쓴 ‘시경’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 ‘2권’에서는 닭이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 등의 오덕(五德)을 지녔다 하여 닭을 가리켜 ‘덕금(德禽)’이라 하였다.

수탉을 보면,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니 문(文)이요,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으니 무(武)요, 적이 앞에 있으면 용감히 싸우니 용(勇)이요, 먹이를 얻으면 서로에게 알리니 인(仁)이요, 밤을 지키며 때를 놓치지 않으니 신(信)이다. (首戴冠者文也 足搏距者武也 敵在前敢?者勇也 得食相告仁也 守夜不失時信也…?有此五德)

특히 먹이를 두고 무리를 불러 모음과 밤을 지켜 제때에 울며 대자연을 모닝콜로 일깨움은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인간보다 뛰어난 실증적이고 감동적인 대목이다.

인간에게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충(忠), 신(信), 효(孝), 제(悌) 등의 팔덕(八德)이 있지만, 항상 말보다 실천이 문제가 된다. 병가(兵家)에서는 무사가 지켜야 할 오덕(五德)으로 지(智), 인(仁), 용(勇), 신(信), 엄(嚴) 등이 있다. 닭과 인간의 공통 덕목은 인(仁)과 신(信)인데, 현존 위기의 한국호 선원들이 진정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판단된다. 닭처럼 매일 세 번 큰 소리로 외쳤다면 작금의 국난은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닭은 배고픈 인간에게 완전식품인 계란을 제공하니 ‘긍휼(矜恤)’이요, 인간을 위하여 각종 독충을 잡아먹으니 ‘이타(利他)’요, 죽어서도 불닭·닭고기튀김(fried chicken)·닭볶음탕(닭도리탕) 등으로 자신의 온몸을 온전히 인류에게 바치니 ‘희생(犧牲)’의 덕목을 추가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더하면 닭에게도 팔덕(八德)이 있다 하겠다.

닭의 굴욕(屈辱)은 아무래도 머리 나쁜 사람을 가리켜 ‘닭대가리’라고 하는 데에 있다. 닭의 분통(憤痛)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행위’에 있다. 그렇잖아도 모든 닭이 12년 만에 맞이하는 닭의 해를 맞이하여 축배를 올려야 할 판에, 청문회를 보노라면 국가적 대혼란의 주역들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리발을 내밀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니 ‘해까닥(닭)’ 할 판이다. 닭의 최대 치욕(恥辱)은 철새들이 옮겨놓은 AI로 거의 모든 종족이 혼쭐마저 놓으며 ‘꼴까닥(닭)’해야만 하는 데에 있다.

공교롭게도 공포로 다가오는 두 가지 AI가 있는데, 하나는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이고, 또 하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이육사 시 ‘광야(曠野)’의 1연으로 문명의 새벽을 말하고 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4연으로 시련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 힘든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올해는 이 땅에 닭 우는 소리 힘차게 들려, 백성을 위하는 정치의 새벽이 오고,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덕금(德禽)을 닮은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길 간절히 기원한다.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구절이다. 이제는 지난날의 모든 아픔을 날려 보내고 모든 국민이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새 희망을 얘기하도록 하자.

지나고 나면 슬픔과 아픔조차 그리워진다고 했다. 이번에는 백성의 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마음으로 서로 신뢰하며, 무엇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에 여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런 성실한 대통령을 모셨으면 참 좋겠다. 임기가 끝난 뒤에 더 인기 있고, 더 바쁜 그런 대통령께서 어디 계실까?

권상호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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