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문학 결산] 맨부커상 환호 뒤 문단 성폭력으로 추락

최재봉 2016. 12. 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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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국문학 잠재력 확인
시 르네상스 잠재운 '문단 성폭력'
논란 낳은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

[한겨레] 올해 한국문학은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으로 한껏 고무되었다가 문단 성폭력으로 한순간에 추락했다. 복각본 시집 바람과 시 르네상스 등으로 판매 측면에서는 호조를 보였지만, 주요 문학잡지들이 휴간하거나 편집위원 사퇴 등으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음유시인’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문학의 경계에 대한 질문과 함께 적잖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유난히 곡절이 많았던 2016년 문학계를 돌아보았다.

맨부커상 수상과 시 르네상스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영역본 (데버러 스미스 번역)이 5월16일(한국시각 17일)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 중국 작가 옌렌커, 이탈리아의 ‘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과 경합 끝에 거둔 성과였다. <채식주의자> 영역본은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10권에도 선정되면서 한국문학의 잠재력을 새삼 확인시켰다. 2007년 단행본으로 첫 출간되었던 <채식주의자>는 수상 직후부터 12주 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올해 한국문학 바람을 이끌었다. 2014년작 <소년이 온다>와 맨부커상 수상 직후 나온 신작 <흰> 등 한강의 다른 소설들도 <채식주의자>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선전했다. 여기에다가 조정래의 교육 소설 <풀꽃도 꽃이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 같은 인기 작가들의 신작이 가세해, 지난해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으로 위축되었던 한국문학의 ‘부흥’을 주도했다.

정유정(왼쪽), 조정래

서점가에서는 연초부터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등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의 기념비적인 시집 복각본 바람이 불었다. 희귀본인 초판의 모양과 질감을 되살린 이 시집들은 책이라기보다는 팬시 상품처럼 소비된 느낌이 있지만, 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는 있었다. 이와 함께 시 전문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몇몇 젊은 시인들이 일종의 팬덤을 형성하면서 시 낭독회에 청중이 몰리는 등 ‘시 르네상스’ 현상도 나타났다.

■문단 성폭력 폭로 모처럼 조성된 한국문학 바람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이른바 문단 성폭력 사태였다. 김현 시인이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을 기고해 문단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실태를 까발린 뒤, 주로 남성 시인들한테 성폭력과 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독자와 문학 지망생 들의 고발이 트위터를 중심으로 터져나왔다.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으로까지 발전한 이 연쇄 고발 사태 와중에 이름이 나온 이들만 10명이 넘는다. 이 문인들은 시를 가르쳐 주겠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접근하거나 대학과 고교 및 사설 창작교실 등에서 만난 수강생들에게 성폭행 또는 추행을 저질렀으며 심지어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고발 대상이 된 시인들은 책을 절판하고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문학·출판계와 대학 및 고교 등 현장에서는 피해자 연대모임과 서명운동 등이 이어졌다.

■문예지의 영광과 상처 한국문학의 계간지 시대를 연 <창작과비평>이 올해로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부산에서 나오는 계간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은 통권 100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렇게 기념하고 축하할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계간 <자음과모음>이 출판사의 직원 인권 탄압 논란 속에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으며 <실천문학>은 경영권과 편집권을 둘러싼 분쟁 와중에 편집위원 전원이 사퇴하면서 파행 제작되었다. <현대시학>은 편집위원이 운영하는 사설 창작교실 수강생에 대한 등단 특혜 논란이 불거지면서 역시 편집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해 <세계의문학>을 폐간한 민음사는 ‘편집자가 만드는 문학지’를 표방한 <릿터>를 8·9월호로 창간했지만, 페미니즘을 특집 삼은 10·11월호의 표지 그림을 그린 만화가 이자혜 작가가 성폭력 방조 논란에 휩싸이면서 잡지를 회수하고 다시 제작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김숨

■기억할 만한 소설과 시 일본 군함도 조선인 징용공들의 아픔을 그린 한수산 소설 <군함도>, 87년 6월항쟁 당시 숨진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 과정을 다룬 김숨 소설 , 역시 김숨의 소설로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과 회한에 주목한 <한 명>,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통일을 가상하고 그 후유증에 눈을 준 장강명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 그리고 <삿포로의 여인>(이순원) <비밀 문장>(박상우) <피에로들의 집>(윤대녕) <개와 늑대의 시간>(김경욱)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천명관) <뜨거운 피>(김언수) 같은 장편들은 서점가의 한국문학 바람을 밑에서 떠받쳤다.

한수산

상대적으로 장편보다는 중단편집 쪽에서 수작이 많았던 한해였다.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베개를 베다>(윤성희)와 함께 <포로들의 춤>(최수철) <중국식 룰렛>(은희경) <쁠리도 괴리도 업시>(성석제) <상냥한 폭력의 시대>(정이현) <아무도 아닌>(황정은) 등의 수작이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리얼리즘의 부활 또는 건재를 과시한 이시백의 <응달 너구리>와 이인휘의 <폐허를 보다>는 올해의 수확이라 할 만했다. 정지돈의 <내가 싸우듯이>, 백수린의 <참담한 빛>,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등 젊은 작가들의 개성있는 목소리도 종요로웠다.

권여선(왼쪽), 이인휘
송경동

르네상스에서 성폭력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갔지만 시 쪽에서도 결실이 적지 않았다. 최승자의 반가운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 지금도 거리에서 싸우는 송경동의 수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페이스북 스타 류근의 시집 <어떻게든 이별>, 오은 시집 <유에서 유>, 김민정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등이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도 고은 시인의 <초혼>과 황동규 시집 <연옥의 봄>, 김용택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 도종환 시집 <사월 바다>, 이정록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김선우 시집 <녹턴>, 그리고 요절 시인 이연주의 시를 한데 모은 <이연주 시전집> 등을 기억해 둘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동안은 시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4년간 절필해 온 안도현 시인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시를 다시 쓰겠다고 밝혔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미국 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노벨문학상의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노래와 시가 분리되지 않았던 문학의 원류를 되찾아가는 의미있는 결정이라는 긍정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잖아도 잘나가는 대중음악에 노벨‘문학’상까지 안겨줌으로써 문인 및 문학지망생들을 좌절시켰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원로 시조시인 정완영과 소설가 이호철·송영, 시인 송수권이 올해 세상을 떴다. 해외에서도 <장미의 이름>의 작가 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앵무새 죽이기>의 미국 작가 하퍼 리, 다자이 오사무의 딸인 지한파 일본 작가 쓰시마 유코가 타계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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