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끈 위작 논란.. 검찰이 결론 짓다

김미리 기자 2016. 12. 2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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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미인도'는 진품" 발표]
檢 "진품 13점 비교 감정한 결과 덧칠·안료·외곽선 자국 등 동일.. 차녀 스케치 바탕해 미인도 그려"
유족 "佛 감정팀 위작 판명 부정"
미술계 "천화백 두 번 죽이는 일.. 재발 막으려면 감정 선진화해야"

검찰이 25년간 진위(眞僞)가 가려지지 않았던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가 '진짜'라고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배용원)는 19일 "소장 이력 조사, 전문가 안목 감정, X선·원적외선·컴퓨터 영상 분석·DNA·필적 감정 분석 등 과학 감정 기법을 총동원한 결과,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5월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62)씨가 "미인도가 위작임에도 천경자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며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전·현직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고소·고발함에 따라 이 사건을 수사해 왔다.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1명은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5명은 무혐의 처분한다"고 밝혔다.

미인도 논란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그림으로 만든 포스터를 보고 천 화백이 "내가 낳은 자식을 모를 리가 있나. 내 그림이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천 화백의 위작 주장을 묵살하고 '진품'이라고 결론짓자 천 화백은 절필(絶筆)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동안 묻혔던 사건은 1999년 동양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미인도' 위조범을 자처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천 화백 별세를 계기로 유족 측에서 어머니의 명예 회복을 위해 미인도 문제를 들고나오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작가가 위작이라고 했는데 굳이 진짜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정서가 지배적이 됐다. 게다가 검찰 발표 전 유가족 측이 의뢰한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팀의 감정 결과 "진품일 확률이 0.00002%"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위작' 결론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는 예상을 뒤집었다. 검찰은 지난 5개월간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13점을 비교 감정한 결과 ▲백반·아교·호분 성분으로 바탕칠을 한 다음 두껍게 덧칠 ▲고급 안료인 석채 사용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로 눌러 외곽선을 그린 자국) 등이 미인도와 진품에서 공통으로 발견됐다고 했다. 적외선 등으로 촬영한 결과, 그림 밑층에 숨겨진 다른 밑그림을 발견했다. 이는 진품 '청춘의 문'(1968년 작)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올해 처음 공개된 차녀(김정희)를 모델로 한 스케치(1976)도 중요한 단서가 됐다. 이 스케치를 바탕으로 '미인도'(1977), '장미와 여인'(1981)이 완성된 것으로 봤다. 프랑스 감정단의 분석에 대해서 검찰은 "감정팀이 사용한 '밝기 분포' 등의 계산식을 진품이 명확한 작품에 대입해 본 결과 진품 확률이 4.01%, 4.31%로 계산됐다"면서 "위조 여부 판단 근거로 삼기엔 논란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위조범이라고 주장했다가 말 바꾸기를 거듭해온 권춘식씨가 수사 과정 중 미인도를 직접 보고는 "이건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의 작품"이라고 한 점도 참작됐다.

미인도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이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지난 1977년 천 화백이 중앙정보부 간부 오모씨에게 미인도 등 천 화백의 그림 2점을 선물했고, 오씨의 아내가 대학 동문인 김재규 아내에게 미인도를 선물했다. 1980년 신군부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에서 미인도를 김재규로부터 기부 채납받아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 측은 미인도가 김재규의 소장품이라는 증거가 부족하고 다른 작품과 바꿔치기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진품'이라는 결론이 나오자 유족 측은 "프랑스의 국제적인 과학 감정 전문 기관이 도출해낸 명백한 위작 판명 결과를 검찰이 부정했다. 법적인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천 화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대체 무슨 흑막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반면 미술평론가 서성록씨는 "작가의 의견은 중요한 참고 사항이지 전적인 위작 판단 기준은 아님이 증명됐다"며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감정 선진화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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