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박근혜를 '미스 박'으로 부르고 싶다면

아이즈 ize 글 강명석 2016. 11. 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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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강명석

DJ DOC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수취인분명’은 금지곡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쉽게 들을 수 있다. DJ DOC가 개인 자격으로 ‘수취인분명’을 공연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제지당하는 일도 없었다. 그들이 ‘수취인분명’을 부르려다 무산된 장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 주최 측이 마련한 무대였다. 주최 측은 ‘수취인분명’ 가사에 여성혐오적인 부분이 있다는 비판을 받은 뒤 공연을 취소했다. 참여 인원만 전국에서 최소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이 집회는 사실상 모든 국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성별, 성정체성, 인종, 지역, 종교, 신체 조건 등이 각자 다른 사람들이 모인다. 주최 측이 누군가의 정체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에 대해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집회 주최 측이 마련한 무대에서의 발언은 더욱 그렇다. 한 개인이 거리에서 외치는 것은 그의 의견일 뿐이지만, 참여자들은 물론 매스미디어가 주목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은 집회의 입장이자 기준으로 통용될 수 있다.

애초에 논란이 될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이 그가 태어난 지역이나 나이 때문이라는 랩을 했다면, 그런 곡을 주최 측 무대에 올리려는 시도조차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문제를 그의 성별과 연결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디스하기 위한 도구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쓰이는 것은 남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는 겪지 않는 경험이다. ‘수취인분명’이 논란 끝에 주최 측 무대에서 등장하지 않으면서,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지 않으면서 집회에서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것은 집회가 가진 국민통합의 성격에도 어울린다. 반면 DJ DOC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이 침해당하거나, 집회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집회의 공식적인 무대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누군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어야 하는 문제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주최 측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는 자명하다. 그들은 힙합 축제가 아니라 대통령 퇴진을 위해 국민들을 한데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 

대통령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여성혐오적인 노래가 공식적인 공간에서 퍼지면 여성은 그 목소리에 합류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된다. ‘수취인분명’에서 ‘미스 박’은 ‘miss (take) 박’이다. ‘미스’가 실생활에서 여성을 하대하거나 폄하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는 것과 별개로, ‘수취인분명’에서 ‘미스’라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비난(misstake)과 연결된다. 또한 “(주사를) 하도 찔러 대서 얼굴이 빵빵 /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라는 부분은 박근혜 대통령을 피부 관리에 신경 쓰고 남자가 모는 차를 기다리는 여자로 묘사한다.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라는 부분은 차를 가진 남자가 여자를 만나러 가는 ‘오빠차’의 가사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디스하는 수단으로 그의 일이 아닌 어떤 유형의 여성을 끌어들이고,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를 덧씌워 이런 여성을 더욱 부정적으로 느끼게 한다. DJ DOC는 단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이 가사를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가사에서 여성, 특히 이 노래가 만들어가는 어떤 젊은 여성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함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위한 수단이자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 노래가 집회에 모인 사람들 전체에, 더 나아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퍼지면 이들은 집회의 목소리에서 배제된다.  

래퍼 블랙넛은 여성혐오 가사를 계속 써왔지만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적은 없다. 그 밖에도 여러 래퍼들이 여성, 동성애 등에 대한 혐오 가사를 써도 활동에 제약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혐오 발언을 하거나 가사를 쓰는 것은 혐오 범죄를 하는 것과 다르고, 그들을 원하는 시장이 있는 한, 그들은 계속 활동할 수 있다. 그들의 활동 범위에 대한 문제는 대중이 얼마나 이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결국 여성을 비롯한 각종 혐오 발언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창작자들이 보다 긍정적인 대안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 뿐이다. 그 점에서 ‘수취인분명’에 얽힌 논란은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다. 누구도 DJ DOC가 이 노래를 녹음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공연이나 행사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는다. 원한다면 그들은 집회 어디에선가 ‘수취인분명’을 부를 수도 있다. 그들이 이 곡으로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다만, 모두가 모인 광장에서 주최 측이 이 노래를 공식적으로 국민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고, 공연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지상파 방송이 유튜브의 개인방송과 같은 기준을 가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딱 그만큼이다. 적어도 모두가 모이고 지켜본 광장에서는 성별, 성정체성, 인종, 지역, 종교, 신체 조건에 상관없이 동등한 대우와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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