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이야기 | 창경궁] 시인의 감성으로 들려주는 나무이야기

글·월간산 신준범 기자 2016. 11. 25. 15: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반칠환 숲해설가의 문학적 숲해설

창경궁은 1418년 세종대왕이 아버지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별궁이다.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이었으며, 성종 때인 1484년 명정전과 통명전 등 궁궐을 크게 지으며 창경궁(昌慶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 황제를 위로해 드린다며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이름을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창경원 개원식을 하려던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 1984년 문을 연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동물들을 옮긴 뒤 창경궁이라는 본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서울의 궁궐들 중에서 가장 수난을 많이 겪었지만, 창경궁은 수목원이었기에 가장 나무가 울창하다. 때문에 여러 궁궐 중에서 가장 자연미 넘치는 산책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창경궁에서도 운치 있는 숲길은 궐내 호수인 춘당지로 이이진 길이다.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을 들어서서 우측으로 이어진 숲길로 거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반칠환(52)씨는 숲해설가이다. 감수성 짙은 문학적인 그의 숲해설은 꼭 들어봐야 하는 것으로 다른 숲해설가 사이에서도 소문나 있다. 객관적인 식물의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나무를 통한 인문학적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는 숲해설사를 교육하는 기관인 사단법인 숲연구소에서 숲해설 강의를 하고 있으며, 국립수목원과 과천의 어린이 생태동아리 등 여러 단체에서 프리랜서로 숲해설을 해왔다. 기사는 반칠환 시인의 숲해설을 바탕으로 쓰였음을 밝혀 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원형, 뽕나무

[월간산]창경궁의 운치 있는 숲길. 서울 5대 궁궐 중 가장 숲이 풍성한 곳이 창경궁이다.

융통성이 없는 전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휘어지며 햇볕이 많은 곳을 찾을 때도 꿋꿋이 인내심을 발휘하며 수직으로 곧게 자란다. 빛이 없으면 성장을 멈출지언정 휘어지며 뜻을 굽히지 않는 강한 소신을 가졌다. 전나무의 수직성은 생명력과 연관되어 있어, 살아 있을 때 서고 죽으면 눕는다. 뿌리가 깊기보다는 옆으로 넓게 퍼지는 특성 때문에 죽으면 쓰러진다. 때문에 생명의 원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전나무다.

반칠환 시인은 어릴 때 창경궁의 뽕나무처럼, 이렇게 큰 뽕나무가 있는지 몰랐다. 뽕나무는 모두 키가 작은 줄 알았다. 뽕잎 재배를 위해 사람들이 계속 베어 맹아갱신을 했기 때문에 마음껏 클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릴 적 뽕나무 아래에 있으면, 애벌레가 뽕잎을 먹는 소리가 “사각 사각”하고 들렸다.

시골에서 젊은 남녀가 어른들의 눈을 피해 급히 만날 장소는 많지 않았다. 뽕잎은 둥글고 커서 뽕나무밭에 사람이 들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시골 청춘들의 데이트 장소로는 최적이었다. ‘뽕도 따고 임도 보고’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뽕나무는 옛날부터 모든 것을 주는 나무였다. 옷도 내어주고, 오디 열매도 주고, 상황버섯도 많이 생겼다. 상황(桑黃)은 뽕나무 ‘상’자 누를 ‘황’자인데 뽕나무에서 나오는 노란버섯이란 뜻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뽕나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창경궁의 뽕나무는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나무다. 과거 궁인들이 농사체험을 하도록 만든 뽕밭이 이곳에 있었다. 보통 양반들은 집 가까이 뽕나무를 두는 것을 꺼려했다. 뽕나무가 가까이 있으면 여자들이 도망간다는 속설 때문이다. 반칠환 시인은 시적인 감성으로 뽕나무와 이야기한다.

“뽕나무에 귀를 기울이면 옛날 궁인들의 얘기를 들려줄 것 같아요. 나무 나이테의 CD를 재생할 수 있는 이어폰을 개발해서 꽂으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적인 상상을 해요. 실제 나무 나이테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요. 과거 기후를 살피는 자료가 되죠. 나무는 살아 있는 역사기록물이라 할만 해요.”

홍랑의 슬픈 사랑 담긴 버드나무


[월간산]이별의 상징이었던 버드나무.
버드나무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조선 중종 때 유명한 시인 최경창이 함경도 관리로 부임하자 축하연이 벌어졌다. 이때 관기인 홍랑이 시를 한 수 읊었는데, 바로 최경창의 시였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최경창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가게 되자, 홍랑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주며 시를 써 주었다. 한양으로 돌아온 최경창이 마당에 버드나무 가지를 꽂았고, 뿌리를 내려 버드나무가 되었다. 최경창은 버드나무를 볼 때마다 홍랑이 생각나서 상사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홍랑은 관내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기고 7일 밤낮을 달려 최경창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살림을 차렸고, 이를 시기한 사람이 임금에게 고자질했다. 당시 국상 중이라 자중해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 하여 귀양을 떠나게 된 최경창은 귀양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병에 걸려 숨을 거뒀다.

홍랑이 최경창의 무덤 곁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는데, 젊고 예쁜 그녀를 남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계속 남자들이 치근덕거리자 홍랑은 자신의 얼굴을 칼로 긋고 숯불로 살을 태워 용모를 흉하게 만들어 시묘살이를 계속했다고 한다. 홍랑이 죽자 해주최씨 가문에서 그녀의 일편단심을 높이 여겨 최경창과 합장하여 묘를 세웠다.

옛날 버드나무는 이별의 상징이었다. 바람에 흩날린 가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듯, 다시 돌아와 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로 버드나무는 열대지방과 온대지방, 툰드라의 수목한계선까지 자생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별할 때 버드나무 가지를 주는 건, ‘객지에 가서 죽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 돌아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때문에 대동강변 나루터의 버드나무는 가지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워낙 많이 꺾어 버드나무들이 앙상해졌다는 것이다.

창경궁에는 독특한 나무가 있다. 완전히 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선 쉬나무다. 마치 검은 용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듯 기묘한 모습이다. 어느 해 태풍이 몰아쳤을 때 쓰러진 쉬나무가 마치 윗몸일으키기 하듯 다시 일어서고 있는 과정이다.

쉬나무는 옛날에 양반들이 이사 가면 꼭 심는 나무였다. 학자수라 하여 ‘공부를 잘해서 출세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쉬나무 열매를 짜서 그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밤에도 책을 읽었으니, 공부할 환경을 마련해 준 것이다. 북한에서는 전기가 부족해 쉬나무로 등불을 밝히는데, 얼마 전까지 대대적으로 심었다고 한다.

[월간산]태풍에 쓰러진 쉬나무가 다시 일어서고 있는 과정. 뿌리 가까운 몸통에서 광합성을 위해 줄기가 나는 맹아갱신 현상을 볼 수 있다.
보통은 뿌리 근처의 아래쪽 몸통에서 가지가 나는 일이 없지만, 목숨이 위태롭고 긴급한 때에는 가지가 나와 잎을 달고 광합성을 하는 맹아갱신을 한다. 쉬나무 역시 쓰러졌을 당시 위급하다고 판단, 아래쪽 몸통에서 큰 가지를 뻗어 악착같이 광합성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맹아갱신을 하는 나무가 있는 반면, 하지 않는 것도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나무다. 소나무의 세계관은 ‘힘 센 타인 곁에서 고초를 겪으며 사느니 포기하고 죽는 게 낫다’는 것이다. 무척 햇볕을 좋아하는 나무라 다른 나무의 그늘 밑에선 자라지 못한다. 대신 2세를 뿌려 훗날을 기약한다. 솔방울이 땅 속에 숨어 있다가 큰 나무가 죽어 햇살이 들면 다시 자란다. 그러니 성장이 힘든 상황에서 생존을 단념한다고 하여, 진짜 포기하는 것은 아니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판단하기가 어려운데, 쉬나무의 맹아갱신과 소나무의 삶 역시 그런 화두를 던져 준다.

오갈피나무 열매는 폭죽놀이에서 불꽃이 터지기 직전의 모습을 닮았다. 마치 땅속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 펑 터트리며 우주공간으로 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달나라에 계수나무가 살았는데 요즘은 오갈피나무가 산다는 말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우주인들이 우주 정거장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야 할 때 섭취할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인삼을 찾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재배하며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어 대체식물로 찾은 것이 오갈피나무였다. 실제로 인삼과 비슷한 성분을 지녀 효능이 있었다고 한다.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특정 기간 동안 오갈피를 복용한 쪽과 아닌 쪽으로 그룹을 나눠 3,000m 달리기를 했더니 복용한 쪽이 평균 2초 빨랐다. 이후 우주인들이 먹을 수 있는 식품으로 개발했다.

<동의보감>에 실린 오갈피나무의 효능은 다음과 같다.

‘기운을 돕고 정수를 보충한다. 힘줄과 뼈를 든든히 하고 의지를 굳세게 하며 남자의 음위증과 여자의 음부 가려움증을 낫게 한다. 허리와 등골뼈가 아픈 것, 다리가 아프고 저린 것, 다리에 힘이 없어 늘어진 것 등을 낫게 한다. 아이가 세 살이 되어도 걷지 못할 때 먹이면 걸어 다닐 수 있다.’

반 시인은 어릴 적 오갈피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먹기도 했는데, 피곤할 때 먹으면 시야가 맑아지는 듯 사물이 선명히 보일 정도로 효과가 빠르다고 한다.

창경궁에는 독특한 느티나무가 있다. 늙은 느티나무가 젊은 느티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연리목, 완전히 삼키듯 휘감고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한 그루처럼 보인다. 굉장히 드문 형태로 시간이 지나면 연리목이었다는 것도 잊게 될 정도로 하나의 나무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1,100여 종의 나무 중에서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수관을 형성하고 있다. 가지와 뿌리는 크게 성장하기에 장수하는 나무다. 그런 의미에서 느티나무는 하늘과 땅을 단단히 쥐고 있다. 뿌리는 땅을 움켜쥐고, 가지는 하늘을 움켜쥐고 있다. 몸집이 큰 거대수임에도 태풍에 잘 쓰러지지 않는 건, 가지를 굉장히 잔잔하게 뻗기 때문이다. 강풍이 불어도 잘게 나뉜 가지 사이로 바람을 분산시킨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것이 느티나무다.

“내 피가 초록색이라 믿었다”

[월간산]폭죽이 터지기 직전의 순간을 닮은 오갈피 열매.


춘당지를 한 바퀴 돌아 숲 그늘 아래에서 반칠환 시인이 숲해설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청주시 용정동 산골 외딴집에 살았다. 다른 인가를 만나려면 10리는 걸어야 하는 첩첩산중의 7부 능선이었다. 9남매 중의 막내인 그는 모친이 44세에 낳은 늦둥이였다. 친구나 또래 형제가 없었기에 그는 외로움을 알지 못했다. 늘 혼자 집을 지켰기에 외로움보다는 혼자였던 기억이 강했다. 어머니는 농사를 짓느라 바빴고 병환으로 누워 있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그를 시인이 되도록 이끈 건 3개의 꽃이다. 코스모스, 살구꽃, 진달래였다. 친구도 없고 TV도 없던 시절 그에게 친구가 되어준 건 책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독학으로 한글을 익힌 그는 형제들의 교과서를 외울 정도로 탐독했다. 처음 읽었던 시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나무꾼과 지게’였다. 할아버지가 지고 가는 나무지게에 활짝 핀 진달래가 꽂혀 호랑나비가 춤을 추며 따라간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그의 누나는 글재주가 뛰어나 곧잘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왔다.

[월간산]늙은 느티나무가 젊은 느티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연리목.

‘코스모스 꽃잎에 톱날이 맺혀 있네
톱질하던 아버지 모습 아련히 떠오르네.’

[월간산]반칠환 시인.
목수였던 아버지를 코스모스 꽃잎으로 회상하던 시의 울림은 어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았다. 살구꽃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유치환의 ‘춘신(春信)’이었다. 읽는 순간 멍했고, 혈관으로 꿀물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중학교 입학 전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모두 외어버렸을 정도로 푹 빠졌다.

“제 시의 원천은 숲이에요. 코스모스, 살구꽃, 진달래를 몰랐다면 시를 읽었을 때 그런 감동이 있었을까요? 요즘 아이들이 이 시를 읽는다면 과연 감동을 받을까요? 제 시의 스승은 숲입니다.”

그는 학창시절 처음 혈액형 검사를 받을 때도 ‘내 피는 숲을 닮은 초록색일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꽃술 지렛대> 등 여러 권의 시집과 시해설집을 펴냈다. 2002년 서라벌문학상을 받았으며, 중학교 교과서에 그의 시 ‘노랑 제비꽃’이 실렸다. 노랑 제비꽃은 자연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 주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생태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나무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숲해설가가 되었다. 숲해설가 공부를 하면서 무척 행복했는데, 결핍이 없어졌기 때문에 시가 안 나온다고 한다.

행복한 숲해설가 반칠환 시인은 “시는 작정한다고 써지는 게 아닌데, 숲을 공부하면서 행복해서 시집을 못 내고 있다”고 말한다.

▶ 실컷 놀았는데도 저녁… '한나절 행복' 찾아 춘천으로, 파주로

▶ 자동차 타이어에 새겨진 숫자의 비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