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수정 불가능한 붓펜으로 막힘없이.. 내 그림엔 한계가 없다"

이경택 기자 2016. 11.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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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작가는 즉석에서 다양한 이미지들을 빠른 속도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주변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이를 스케치로 남기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김정기 작가가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한 작품 ‘한국의 전설2’(1.2 X 2m).

라이브 드로잉 작가 김정기

붓펜을 쥐고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보이는 ‘라이브 드로잉’의 달인 김정기(41) 작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 그의 드로잉 작품은 단 두 점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당시 이미 그는 해외에서 유명인사였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열리는 만화페스티벌에 그는 단골 초대작가였고,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드로잉 원화 두 점이 연이어 고가에 팔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정문 인근에 있는 그의 작업실 ‘슈퍼 애니’를 찾았다.

작업실은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하는 공동공간으로 김 작가 외에 7명의 작가가 함께 작업실을 쓴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가장 궁금했던 사항 즉, 어떤 화가이건 캔버스 앞에 앉으면 바탕작업으로 드로잉을 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들의 작업과 무엇이 다른지 먼저 물어보았다.

“다른 작가들은 보통 많은 자료들을 갖고 작업하며, (수정이 가능하도록) 연필로 대부분 그려요. 그리고 바탕에 연필로 드로잉을 한 후 물감 등이나 다른 것으로 덧칠하죠. 그러나 나는 수정불가한 붓펜으로 바로 그려요. 그리고 보통 작가들은 꽃, 동물 등 영역이 정해져 있지만 나는 그런 한계가 없어요. 코끼리건 자동차건 막힘없이 빨리 그려내요. 그래서 모두 신기해하죠.”

실제로 전시회 등 각종 행사에서 김 작가가 즉석에서 밑그림 없이 붓펜으로 세밀하게 묘사해 내는 라이브 드로잉 작업을 보면 모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올해 3월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도 무려 2000명이 넘는 미술애호가들이 찾아 액수로 3억 원 이상 되는 작품들이 거래됐다. 또 크리스티 경매에서 1.2×2m짜리 드로잉 원화가 2014년 경매에서는 830만 원, 2015년에는 1200만 원에 팔려나갔다.

운도 좋았다. 그 즈음 프랑스의 아스트릭스나 일본 아톰만화 등 애니메이션 원화 작품들이 경매에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의 장르가 아트토이, 만화원고, 상업일러스트 같은 것들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에서의 유명세에도 국내에는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김 작가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지난 7월 에너지 화학기업인 SK이노베이션 광고를 라이브 드로잉 작업과 함께 보여준 동영상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두 달 만에 조회 수가 무려 800만 회에 이르렀다고 한다. ‘믿을 수 없다(Incredible)’ ‘놀랍다(Amazing)’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당시 그는 5×2m짜리 캔버스에 SK이노베이션의 활약상을 붓펜으로 세세하게 묘사해 놓은 후 이를 세계지도로 마무리했다.

김 작가는 즉석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빠른 속도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머릿속에 저장된 이미지가 풍성해 그것을 가져다 쓸 뿐”이라며 주변에 대한 집요한 관찰력과 일상 속 사물을 스케치로 남기는 습관이 이미지 저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집의 달력 뒷장은 모두 내 차지였죠. 고등학교 시절엔 수업시간 내내 그림만 그린 적도 많죠. 요즘도 계속 노트에 수시로 이미지들을 남겨요. 그리고 남들은 보통 남의 그림을 베끼는 모작을 하는데 저는 일상 속 사물을 꾸준히 그렸어요.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면 자전거만 주야장천 그렸고, 신발이 갖고 싶으면 신발만 세세하게 여러 장 그렸죠. 고양이 한 마리를 그려도 표범, 치타, 호랑이까지 고양잇과는 다 그려 봤어요. 그런 스케치 습관이 관찰력을 키워주고, 어떤 한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정확히 기억 속에 남겨준 것 같아요. 또 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본 것도 이미지 저장에 역시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김 작가의 관찰력과 관련해서는 얼마전 본인이 그린 자화상에도 잘 나타나 있다. 모두 6개의 눈이 달린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자화상이다. 또 그의 드로잉 스케치 작품들에 등장하는 본인의 모습은 모두 뒤통수에도 눈 하나가 달린 것으로 그려놓아 많은 것을 정확히 관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김 작가는 “웬만한 것들은 다 그려 보았기 때문에 자신 없는 것은 없지만 싫어하는 것은 반복되는 장면, 즉 건물 창문 같은 그림을 그릴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최근 김 작가의 명성이 국내외로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하며 협업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이달 초에도 그는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아키라’의 작가 오토모 가쓰히로(大友克洋)와 협업하기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가쓰히로는 김 작가에 대해 “뭐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그려줄 수 있는 작가”라며 자신이 스토리를 쓸 테니 김 작가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지난해 두 번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두 번 다 일본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중의 한 사람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가 운영하는 도쿄(東京)와 교토(京都)의 카이카이키키갤러리에서 열렸다. 도쿄 전시에서는 1억 원어치 팔았다. 최저 50만 원부터 가로 세로 1.5×1.2m짜리 원화는 1000만 원까지 받았다.

또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는 LA에서 열리는 CTN만화 축제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선보이고, 특강을 하기 위해 미국을 다녀왔다. 특히 프랑스의 유명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협업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베르베르의 소설 파라다이스의 삽화를 그렸고, ‘제3인류’의 앞 100페이지 분량을 20회 분량의 드로잉 작업으로 완성했으며 작업과정을 동영상과 함께 올려 큰 인기를 얻었다. 또 2014년에는 프랑스 스토리 작가와 손잡고 ‘스파이 게임’이라는 만화를 출간했는데 무려 1만 권 이상 판매됐다. 만화는 세계 각국의 정예 요원이 서로 정보를 빼내기 위해 벌이는 전쟁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분야도 다양해져 최근엔 영화 및 만화 제작사인 마블의 요청으로 만화 ‘시빌워2’의 표지를 그리기도 했다.

“제 직업이 만화가인지, 화가인지, 상업미술가인지 저 자신도 헛갈려요. 만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면서 현대미술에도 한발을 딛고 있고, 상업미술 쪽에도 관여하고 있으니까요.”

김 작가가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국내외에서 그를 찾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해외 화단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1년 부천국제만화제를 통해서였다.

“당시 부스를 꾸며야 하는데 남들과 같이 액자에 작품을 넣어 걸지 말고 벽면에 백지 붙여놓고 3∼4일 동안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자고 했어요. 그래서 3면에 백지 붙여놓고 그림을 그렸죠. 제작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장난처럼 올렸는데 파급력이 대단했어요. 그 다음 해인 2012년 프랑스의 한 단체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지금은 일년의 반 이상을 외국에 나가 살아요.”

김 작가의 작품은 A4 용지에 그린 그림이 50만 원에서 200만 원, 그리고 주문받아서 그릴 때는 30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이 외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에 대해선, 심오한 이야기도 아니고 쉽게 이해되고 일상적이어서 공감하기 쉽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또 대부분 작품이 거래될 때는 결과물만 보고 가격을 매기지만 자신의 작품은 동영상 등을 통해 그 과정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컬렉터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크리스티 경매를 할 때 작품 옆에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담긴 ‘라이브 드로잉’ 영상물을 틀어줘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향후에 ‘라이브’로 만화를 연재해 보고 싶어요. 결과물만 보는 만화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도 함께 볼 수 있는 만화죠. 일주일에 2∼3일 정도 시간 정해서 만화로 그려지는 과정을 연재하는 거예요. 그리고 만화책으로 내놓고, 영상으로 올리면 반응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베르베르 쪽에서도 스토리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오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황석영 선생님도 ‘바리데기’를 만화로 라이브 연재할 생각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김 작가는 보통 하루에 5∼6시간 작업하지만 전시 현장을 찾아 라이브 드로잉을 보여줄 때는 12시간 내내 그림을 그릴 때도 많다고 한다. 즉석에서 드로잉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짧게 2시간, 길게 나흘까지 걸린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출장이 빈번해지면서 체중도 10㎏ 이상 줄었다. 그러나 작업에 대한 열정은 체중과 달리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아이디어도 공개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 작업과 국악을 접목해 보고 싶어요. 심청가나 춘향가를 완창하는 데 7∼8시간이 걸린다는데 완창하는 동안 그 옆에서 내용을 라이브 드로잉 작업으로 보여주는 거죠. 창하는 소리만 듣고는 내용과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든 외국인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인터뷰 = 이경택 부장 (문화부)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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