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간 다른 이름..공무원 실수해놓고 "개명해라"

대전CBS 고형석 기자 2016. 11. 1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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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행정자치부-법원행정처-구청 책임 떠넘기기
김선옹 씨의 제적등본(위)과 주민등록표(아래). 제적등본에는 이름 마지막 글자가 ‘웅’이라는 한자로 돼 있다. 수컷 웅(雄)을 뜻한다. 반면 주민등록표에는 이름 마지막 글자가 ‘옹’으로 돼 있다. (사진=고형석 기자)
대전에 사는 김선옹(37) 씨는 결혼한 뒤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직원으로부터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들었다.

직원은 "호적상 이름이 주민등록과 달라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김 씨가 37년 동안 살아온 주민등록상 이름은 '김선옹'.

하지만 직원이 보여준 호적에는 '김선웅'이란 이름이 등록돼 있었다.

이름의 마지막 글자 'ㅗ'가 'ㅜ'로 호적에 등록되면서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서 작성이 아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개의 이름으로 37년을 살아온 셈인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직원은 김 씨에게 출생신고가 접수된 본적지에서 제적등본을 보라고 권유했다.

김 씨는 그길로 바로 자신의 본적지인 충남 아산시 둔포면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면사무소 직원은 "출생신고서는 이미 폐기돼 없다"며 대신 제적등본을 보여줬다.

이를 본 김 씨는 아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수기로 작성된 제적등본 역시 호적과 마찬가지로 ‘옹’이 아닌 ‘웅’이 한자로 버젓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37년 전 제적등본을 수기로 작성한 공무원이 한자를 잘못 쓴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이럴 수 있느냐"는 김 씨의 항의에 직원은 "되돌리려면 개명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행정자치부에 관련 사항을 문의하라고 안내했다.

김 씨는 직원의 말대로 행정자치부에 이를 질의했지만, 행정자치부 직원은 다시 법원행정처에 책임을 미뤘다.

법원행정처 직원도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처음에는 책임을 계속 미루다가 계속된 김 씨의 항의를 받고서야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찾아 구청에서 직권으로 정정이 가능하단 사실을 안내했다.

결국, 김 씨는 다시 구청으로 돌아와 이를 다시 문의한 끝에 겨우 구제받을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제야 구청 관계자는 모든 잘못을 인정한 뒤 김 씨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정정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구청의 안내에 김 씨는 갓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서에 아버지 이름을 자신의 이름인 '김선옹'이 아닌 '김선웅'으로 적어낼 수밖에 없었다.

구청은 이후 출생신고서에 적힌 김 씨의 이름을 '김선옹'으로 다시 정정했다.

김 씨는 "관련 법령 하나를 찾지 못해 민원인을 이곳저곳으로 보내고 개명까지 하라고 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에 진저리가 난다"며 "처음 수기 작성부터 잘못된 공무원의 실수를 왜 민원인에게 미루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공무원의 실수 등으로 인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정정 신청은 한 해 평균 1만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고스란히 피해자들의 몫이다.

주민등록과 호적 기록이 오류를 보이는 것은 과거 호적과 주민등록이 전산화되기 전 수기 등으로 작성했던 오류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주민등록을 본적지와 주소지별로 기재하는 과정에서 누락이나 기재착오 등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호적을 재작성하거나 가로쓰기 과정에서의 기재오류, 전산화 단계에서의 입력 오류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도 두 기록 간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행정당국은 설명했다.

한 행정기관 관계자는 "주민등록 관련 실무와 호적을 담당하는 곳이 다르다"며 "일일이 현황 파악을 하고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대전CBS 고형석 기자] koh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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