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여수

봄엔 어디나 좋고, 여름엔 바다와 그늘이 좋고, 가을과 겨울엔 여수가 좋다고. 누군가 요즘의 여행을 물으면 나는 그렇게 답한다. 어느 날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아니 다른 일상들로 현재의 일상을 가만히 위로해 주고 싶을 때, 그런 날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여수가 당신으로부터 멀지 않고, 그곳에 닿으면 모든 게 부드러워진다고.

뭐 더할 말이 필요할까.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라고만 말해도 모든 것이 다 설명된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말. 아름다운 바다와 너그러운 골목들을 만났다는 말. 남쪽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들 앞에서 행복했다는 말. 그냥 생각나서 걸었다 말하고 끊은 밤의 전화가 있었다는 말. 조금 힘겨운 것들도 있지만 잘 견딜 것이라는 말.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함께 오고 싶다는 고백. 그 모든 것들이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라는 표현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여수를 목적지로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을 말하다가,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라고. 노래를 빌려야만 말할 수 있는 마음이 내게 있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그때 당신은 무슨 대답을 할까. 조금 놀라게 될까? 아니면 당신은 내 마음을 모른 척 내게 다시 물어 올까.
“지금 여수는 어때요?”

“여수에 왔습니다”
여수는 생각보다 멀지 않아요. 평소보다 더 자고 느긋하게 출발해도 대부분 점심 전에 닿을 수 있어요. KTX로 서울에서 3시간. 전국 어디에서 출발해도 4시간 이내에 여수가 있는 것이죠. 되도록 점심 무렵에 닿을 수 있도록 일정을 정하면 좋아요. 남도에 왔으면 최소 두 끼는 먹고 가야 하니까요. 그것이 맛있는 음식에 대한 예의잖아요. 한정식은 아무 식당이나 다 좋아요. 기본이니까요.
입 안쪽을 짭조름한 맛으로 조여 주는 간장게장, 잘 숙성되어 반찬으로도 안주로도 좋은 서대회, 매콤하면서 시원하고, 건강해지는 기분을 주는 장어탕, 담백하고 부드러운 갯장어 샤브샤브, 각종 회, 사과처럼 아삭거리는 돌산갓김치. 그런 음식들이 여수 어디에서나 맛있고 좋아요. 여수가 주는 또 다른 행복인 셈이죠.
기차역을 나오면 가까이 바다가 보여서 처음으로 놀라요. 도시에 온 것이 아니라 바다에 온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고요. 그런 작은 기쁨으로 여수는 시작되는 거예요. 엑스포 공원을 천천히 걷다 시멘트 저장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스카이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남해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먼 바다일수록 원액처럼 빛나고 가까운 해안으로 수면이 새의 날개처럼 반짝이며 출렁여요. 멀고 잔잔한 것들은 깊은 아름다움을, 가깝고 출렁이는 것들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죠. 그 전망대에 세계에서 가장 멀리까지 소리를 들려 주는 파이프 오르간*도 있어요. 어디까지 소리를 들려 줄까? 최대 6km 밖에서도 들린다 해요. 자전거로 20분 이상 달려야 하는 먼 거리까지 들리는 것이죠. 그 소리도 가까이 들으면 출렁일 것이고 먼 곳에서 들으면 잔잔한 속삭임처럼 들려올 거예요.
*파이프오르간 연주 | 독일의 오르간 명장 헤이 오그겔바우가 제작해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오르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지만 현재는 가장 작은 소리로 연주 중이다. 12월18일까지 금·토·일요일만 하루 5회 20분간 연주한다.






국내 최초로 바다를 횡단하는 케이블카도 있어요. 돌산에서 자산공원까지 1.5km 거리를 잇는 총 50대의 케이블카. 바닥이 투명한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면 물 위를 날아서 가는 것처럼 느껴져요. 신발이 젖을까 발을 잠깐 들어 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낮에는 깊고 먼 바다 위를 날고, 해 질 녘에는 붉은 노을 속을 온몸으로 통과하듯 지나고, 밤이 오면 야경에 스며들 듯 날아요. 여수는 그렇게 바다에 있고, 그 바다는 가장 아름다운 해상 국립공원 두 개와 다시 닿아 있어요. 금오도, 거문도, 하화도 등의 아름다운 섬들이 가득 있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잊지 않으려고 바다에 표시해 둔 징표처럼, 섬들은 가장 아름다운 바다에,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있어요.
멀리 섬들을 바라보며 날아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오동도가 멀지 않아요. 방파제 길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오동도는 동백꽃이 가득한 섬이에요. 당신도 잘 알겠죠. 1월에 핀 꽃이 3월에 만개하고 그때 섬은 그 자체로 가득한 한 송이의 붉은 꽃이 된다고 해요. 그 무렵 나무는 그 붉은 꽃들을 지상에 선물처럼 내려 놓는데, 꽃은 떨어진 채로도 며칠 동안 생생하게 붉음을 유지한다고 하고요. 동백꽃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상으로 장소를 옮겨서 피는 것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바다 옆으로 달리는 레일 바이크 체험도 해 볼 만해요. 규제가 풀리며 전국에 레일 바이크가 수십 군데 있지만, 여수 해양 레일 바이크는 전 구간을 바다 옆으로 달린다는 점이 특이하죠. 630m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묘한 긴장감이 있어요. 터널이 생각보다 좁거든요. 그게 또 매력이에요. 좁은 터널 속을 속도감을 느끼며 달리는 기분. 정말 달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 어두운 터널 벽으로 예쁜 네온사인들이 빛나고요. 터널을 나오면 다시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여요. 터널을 통과해 나온 뒤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 아마 당신도 좋아하게 될 거에요. 밤의 바다를 보려고 왔지만, 낮의 바다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밤에 아름다운 것들은 낮에도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내가 본 여수를 당신께 그렇게 설명하겠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한마디일 것이다.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에 와 있다는 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은 그 한마디 안에 있고, 당신이 들어야 할 말도 그 말 속에 다 있는 셈이다. 당신께 전화를 하기 전까지 내가 있던 여수의 밤. 밤의 바다에 닿아 반짝이는 불빛들. 멀리 두고 왔다고 믿었던 그리움이 사실은 몰래 내 걸음을 따라와서는, 환영처럼 저기서 밤 바다에 닿아 흔들리는 것. 그래서 내가 저 불빛들을 보고 당신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저마다의 불빛을 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이라고.
바다의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밤의 악사들. 둥글게 모여 앉아 눈 감고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 낭만포차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단축 다이얼 1번을 눌러 잘 지내냐고 묻는 사람들. 오래도록 바다를 응시하는 여인들. 그것은 여수에 취해서 하는 행동. 여수의 아름다운 밤이 그대에게 용기를 주는 것. 여보세요. 나는 지금 여수 밤 바다에 와 있어. 당신과 가장 멀리 있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 그 먼 거리를 가득 그리움으로 채우고 싶어서 달려왔어. 와 보니 참 아름다운 도시여서, 언젠가 당신과 함께 오면 좋을 것 같아. 당신과 가만히 여수를 걸을 때, 그때 그 밤은 더 한없이 아름다워질 테니까.
▶travel info 여수

백천선어마을
가을이면 민어회와 민어구이를 찾는 사람들로 붐비는 민어회 전문점이지만 다양한 생선 구이, 남도 백반, 서대회 무침 등이 맛있다.
주소: 전남 여수시 공화동
전화: 061 662 3717

여수 스카이타워
운영시간: 10:00~22:00(연중 무휴)
요금: 성인 3,000원
홈페이지: www.skytower.kr

여수 아쿠아플라넷
운영시간: 10:00~19:00
정보: 아쿠아리움, 얼라이브 뮤지엄, 4D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권을 구입하면 경제적이다.
요금: 아쿠아리움 성인 2만3,000원, 얼라이브 뮤지엄 9,000원, 4D 5,000원, BIG 3 패키지 3만1,000원
홈페이지: www.aquaplanet.co.kr

여수 해양레일바이크
위치: 여수 만성리해수욕장
운영시간: 09:00~18:00
요금: 2인승 2만원, 3인승 2만5,000원, 4인승 3만원
홈페이지: www.여수레일바이크.com(인터넷 예약 가능)

여수 해상케이블카
위치: 여수 돌산과 오동도 사이 운행
요금: 8인승 일반 캐빈 왕복 성인 1만3,000원, 편도 1만원, 5인승 크리스탈 캐빈 왕복 성인 2만원
운영시간: 9:00~22:00
전화: 061 664 7301(예약 없이 현장발권만 가능)
홈페이지: www.yeosucablecar.com
글·사진 Travie writer 최성규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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