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경제위기 난국 탈피 위한 전직경제수장 긴급 좌담회

전정홍,정의현,부장원 2016. 11. 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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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제부총리에게 경제에 대한 전권(全權)을 주자." 국정을 집어삼킨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한국 경제가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정치권 위기와 국정 공백이 경제로 전이돼선 안 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임 위원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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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 마비사태.."새 경제사령탑에 전권 주고 빨리 가동시켜라"
"새 경제부총리에게 경제에 대한 전권(全權)을 주자." 국정을 집어삼킨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한국 경제가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경제 현장 곳곳에서 풍전등화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붕괴와 함께 경제 컨트롤타워를 포함한 국정 전반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백척간두 위기에서 새 경제사령탑으로 내정된 임종룡 금융위원장(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이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매일경제신문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자 지난 4일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전 국무총리실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전직 경제수장들이 참여하는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정치권 위기와 국정 공백이 경제로 전이돼선 안 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임 위원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제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작 국정 운영은 마비됐다. 현재 위기 상황을 진단한다면.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제2차 오일쇼크, 외환위기, 카드대란, 금융위기 등 과거 위기 시점을 반추해보면 국정 거버넌스와 리더십이 정상 가동될 때는 타격이 덜했고, 정권 말기나 큰 선거 일정이 맞물렸을 때는 경제가 휘청이는 등 여파가 컸다. 이미 사실상 대선 국면이고 국정 리더십이 크게 훼손된 상황이라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생각보다 클 것으로 본다.

▷박병원 경총 회장=지금 진단 같은 것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위기다. 기본적으로 앞선 두 번의 위기는 유동성 위기다. 그러나 지금 위기는 펀더멘털(기초체력) 위기다. 실물경제 자체가 가라앉고 있어서 문제가 더 심각하고 해결 방법도 훨씬 더 어렵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위기에선 전통적 거시경제정책 수단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거시정책 수단 갖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금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미국·유럽을 비롯한 주요국 경제는 괜찮았다. 2008년에도 구조개혁 등을 통해 비교적 큰 문제없이 넘어갔다. 결국 제일 중요한 차이는 '정치적 공감대'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을 찾아 김영삼 대통령, 이회창·김대중·이인제 등 대선후보 3명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정파는 달랐지만 힘을 합쳐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공감대 형성마저 쉽지 않을 정도로 (정치권 내부에서) 간극이 벌어져 있다.

―임종룡 신임 경제부총리 내정자 및 새 경제팀에 대한 조언은.

▷권 원장=지금 아노미(무정부) 상태다. 국정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경제 안정이다. 금융시장 불안감을 달래는 게 기본이다. 또한 중장기적 과제 중에 노동개혁, 규제개혁, 서비스산업 육성 중 최소한 하나라도 매듭짓겠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일해야 한다.

▷박 회장=이런 때일수록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작은 매듭부터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구조개혁이라도 뭉뚱그려 외칠 것이 아니라 세부 사업별로 하나씩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하자면 새로운 경제부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권을 줘야 한다. 과거처럼 경제부처 인사권 전권을 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경제부총리가 반대하는 사람을 장관을 시켜서는 안된다.

▷박 원장=대통령 임기가 얼마 안 남았고 곧 선거정국인 만큼 사실 이 시기에 관료들이 영혼을 실어서 일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 예를 보면 줄서기도 하고 그런다. 부총리가 맏형이니까 잘 독려해서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임 내정자가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원장=옳은 판단이다. 최근 경제성장률의 과반이 건설·부동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1990년대 초반 일본이나 2000년대 중반 미국 정도로 한국 부동산 시장에 버블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계부채 증가율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해 내수를 옥죄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열지역 중심의 처방으로 일단 경고 신호를 준 것은 적절하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사실 손에 쥐고 있는 날계란 같다. 세게 쥐면 깨져버리고 너무 느슨하게 쥐면 떨어져버린다. 정교하게 설계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박 회장=주택 건설로 경기를 띄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가 직면한 경기 침체가 결국 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왔다. 경제 펀더멘털과 아무 관련 없다. 꺼지는 과정에서 전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 부동산 띄우기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하책 중 하책이다.

▷권 원장=다만 부동산 시장 전체를 과열로 보긴 어렵다. 이미 부동산 경기가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너무 떨어뜨리면 일본식 장기 침체 발생 가능성이 있다. 국지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법인세 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권 원장=금융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법인세를 올린 나라는 칠레, 아이슬란드 등 심각한 재정위기 국가들밖에 없다. 4분기 연속 0%대 성장에 올해 4분기 성장률에 대해 마이너스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 타이밍상으로도 법인세 인상은 부적절하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유럽 국가조차 법인세율을 낮추고 투자 유치에 역점을 두고 있다. 스웨덴은 2008년 28%였던 법인세를 지난해 22%까지 낮췄다. 핀란드가 20%, 덴마크는 23.5%로 대부분 우리 법인세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500억원 이상 과세구간 신설안도 국제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다.

▷박 원장=최순실 국정 농단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수립·집행 중인 사업·예산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법인세 인상은 투자 유인을 억제하는 역효과와 함께 각국의 조세 경쟁 추이와 배치된다. 최근 최저한세를 꾸준히 올려 법인세 부담이 증가한 것을 고려해도 명목세율 인상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비과세 감면 정비가 최우선 과제이고 그 밖에 소득세 면세점 인하 등 세금 부담 체계 정상화가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되찾으려면.

▷박 회장=현 상황에서 저금리는 소비·투자를 전혀 촉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은퇴생활자에게는 저금리가 소비를 줄이게 하는 요소다. 거시정책 수단이 무력화됐다. 제조업 한 바퀴로만 굴러가던 한국 경제를 서비스업과 농업 세 바퀴로 굴러가게 해야 한다. 기존 서비스·농업 종사자들의 의식구조를 바꿔줘야 한다. 그들도 제조업이 지난 50년 이룩한 것처럼 똑같이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줘야 한다.

▷박 원장=한국은 전반적으로 경제부처와 부서, 산업 부문 간 울타리와 칸막이가 심하다. 여기에 통치 체제마저 5년 대통령 단임제이다 보니 중장기 개혁과제가 일관되게 집행되기 힘들다. 큰 관점에서 국가가 전략을 기획하고 정책을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팔 걷고 나서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돼선 안된다. 선진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선 결국 민간이 중심이 돼 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정부는 이런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규제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코리아 엑소더스' 최악 상황만은 막아야

'최순실 게이트'만이 아니다. 한국 경제에 몰아치는 외풍(外風)도 심상찮다. 8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 정국이 막판 안갯속에 빠진 가운데 다음달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되는 등 대외 여건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미국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인 보호무역주의 기조 확산에 따라 수출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저금리 시대가 종언을 고할 경우 부채의 늪에 빠진 국내 가계와 한계기업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한국 경제 뇌관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 경제수장들은 "미국발(發) 리스크가 코리아 엑소더스(Exodus·대탈출)로 이어지지 않도록 여야 구분 없이 정치권과 정부가 경제 현안 해결에 힘써야 한다"며 "국제 금융시장과 외국 기업들이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오판하지 않도록 경제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리더십 공백으로 인해 외교·통상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자금을 유출하면서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 기업과 금융회사의 줄도산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은 크지 않겠지만 관건은 향후 기준금리 인상폭과 속도"라며 "연준이 향후 2~3년간 2%포인트 이상 올릴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미 시장에서 대출 금리와 국채 수익률 상승 압력이 나타나고 있는 데다 금리 인상 후 달러 절상폭이 예상보다 클 경우 자본 유출이 불가피해 외환당국의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미국의 중장기적인 금리 정상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봤다. 박 전 장관은 "미국발 리스크가 주는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급력을 최소화해 연착륙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규제 병목 현상을 극복하고 한국을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이미지를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정홍 기자 / 정의현 기자 / 부장원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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