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은 곪은 상처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2016. 11. 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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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대한민국 헌법의 첫째 줄은 민주공화국이란 말로 시작한다. 대통령과 비선실세 일당의 작태도 충격적이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애당초 가능한지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에 대한 무력감이 더 거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관 주도로 국가자원은 총동원되어 국민이 아닌 왕이 기뻐할 결과물을 만든다. 기업이 바친 준조세와 국민의 혈세는 그렇게 골고루 흩뿌려졌지만, 구체적 명령이 아닌 분위기에 따른 일이니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살고 말 것이 아니므로 장기적 관계가 만드는 분위기는 효율적으로 집단을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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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최순실 게이트 핵심은 저신뢰 사회와 연고주의

[미디어오늘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대한민국 헌법의 첫째 줄은 민주공화국이란 말로 시작한다. 어쨌거나 권력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고, 또 이런 글을 써도 연행되지는 않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개 이후 모두 공황에 빠졌다.

대통령과 비선실세 일당의 작태도 충격적이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애당초 가능한지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에 대한 무력감이 더 거북했을 것이다. 고시 엘리트들은 탐관오리로 부역했으며, 정당도 의회도 침묵으로 가담했다. 재계는 관의 한마디에 일제히 입금했다. 마치 왕을 섬기는 신하들처럼 일사분란했다.

헬조선의 액센트는 헬보다 ‘조선’에 있다. 이 조선풍의 전근대 국가에서 관리들은 어떤 왕이 취임하더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극진히 모시고, 그 뜻에 따라 백성을 다스린다. 왕이니까 환관과 신관이 붙어도 그러려니 한다. 윗사람의 의중을 추측하는 회의를 통해 ‘VIP 관심사항’은 살이 붙고 구체화된다. 막후 실세의 눈짓만으로도 문화융성이니 창조경제니 뭐라도 결과물이 나올 수 있던 이유다. 그리고 그렇게 관 주도로 국가자원은 총동원되어 국민이 아닌 왕이 기뻐할 결과물을 만든다. 이제와서 관료도 당도 제3자적 시각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제각각 나름의 가담자였다. 전근대적 국가에서 원칙이란 분위기와 눈치였다.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덕에 커온 기업들도 궁궐의 분위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관이 민간을 끌어가는 한국형 성장 방식은 추경예산과 부동산만이 남은 성장동력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저성장시대가 된 지금도, 아니 그렇기에 버리지 못한다.

기업이 바친 준조세와 국민의 혈세는 그렇게 골고루 흩뿌려졌지만, 구체적 명령이 아닌 분위기에 따른 일이니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분위기 파악만 하면 다치지 않는다. 이 거대한 무책임의 체계는 왕이 교활해도 무능해도 그럭저럭 기능했다. 의사결정은 투명하지 않고 아무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저 나라가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이고,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일 뿐 질문도 답도 없다. 알만한 사람은 분위기 파악을 했고, 약아빠진 사람은 떡고물이 돌아왔으니 침묵한다. 설명 책임은 누구에게도 없다. 밑 빠진 독이라도 물을 붓는 국민이 있는 이상 국가는 좀처럼 파산하지도 않는다. 지친 국민은 이제 검찰도 관료도 누구도 믿기 힘들다 한다. 저신뢰사회의 전형적 증상이다.

영국이 나폴레옹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소득세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국채를 발행해 대규모 군자금을 확보하는 조세금융 혁명이었는데, 이 시스템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제도에 대한 신뢰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신뢰를 만든 것은 권력 남용으로부터 개개인을 지켜내는 예외 없는 원칙이었다. 저신뢰사회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할 수 있었던 일은 프랑스혁명의 원인이었던 소금세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었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먼저 쟁취했지만 그것이 근대화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적 결정에 대해 책임 있는 설명이 뒤따르는 일, 즉 설명책임이 운명을 갈랐다. 통치에는 반드시 책임 있는 설명과 행동이 뒤따르고, 예외 없는 원칙이 어떠한 절대 권력마저도 규율할 것이라는 신뢰. 우리에게 필요한 근대화의 비결이다.

사회를 아우르는 원칙과 신뢰가 없는 곳에 연고(緣故)주의가 피어난다. 불의를 느끼는 분자가 생겨도 “왜 그리 눈치가 없냐”, “분위기 파악 못하네.”며 시범케이스로 몇 명만 내치면 쉽게 조직은 길든다. 전근대적 농경문화에선 구체적 명령이 없어도 눈치와 분위기에 의해 집단작업이 이뤄진다. 하루 이틀 살고 말 것이 아니므로 장기적 관계가 만드는 분위기는 효율적으로 집단을 통제한다. 마을이라는 장기적 관계는 해소되었어도, 조직이라는 장기적 관계에 다시 의존된 삶의 한계다. 집에선 멀쩡하고 우직한 사람 같지만, 조직 내에서는 분위기 파악 잘하는 눈치 빠른 공범이 되는 이유다.

IMF 시절 한국에 쏟아진 훈수들은 하나같았다. 정경유착과 관치경제라는 고질적 병리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 만성병을 다시 껴안은 채 20년을 어찌어찌 더 살아왔다. 사회의 약한 부위부터 곪아 갔지만, 참았다. 그 예후가 오늘이다.

박근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내실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과 적극적인 복지 확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고 있다. 원칙이 바로 선 경제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

원칙?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발견되기 전날의 발언이었다. 컴퓨터 속 데이터만이 원칙에 따라 설명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늦었지만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 사건의 뒤처리는 우리도 과연 군주가 아닌 원칙의 지배, 법의 지배를 받는 보통 공화국이 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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