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 몰려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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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왜? 하지만 두 사람이 ‘닥터 둠’(비관적 경제전망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처하기 한참 전인 올해 초부터 이미 한국 경제의 위기 가능성은 다양한 경로로 제기돼 왔다. 최근 한은이 발표한 ‘시스템적 리스크 서베이’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문제 5가지를 묻는 질문(복수응답 기준)에 국내외 금융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70%)를 가장 많이 꼽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보유한 엄청난 부동산을 보면 이 정부가 부동산 정책 등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며 "최순실씨 사태로 국정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여야 합의로 거국내각을 꾸려 산적한 경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훈 박사는 "구조적으로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처럼 엘(L)자형 저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며 "경제 부문 사령탑을 다시 꾸리고 이를 중심으로 연착륙 정책을 계속 내놓아 위기의 가능성을 최대한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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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
“한국 경제에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엔진이 고장난 조각배에 선장도 구명정도 보이지 않는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가 지난달 31일 <트렌드 코리아 2017>을 펴내며 연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경제 진단이다. 김 교수가 내년의 트렌드 키워드로 국가와 직장에 대한 불신이 커져 혼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꼽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퍼펙트 스톰’은 여러 악재가 모여 경제가 대혼란에 빠지는 현상을 뜻한다. 원래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된다는 뜻의 기상용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2012년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2007년 <88만원 세대>라는 책으로 청년의 삶을 냉철하게 조명했던 우석훈 박사는 1일치 <경향신문> 칼럼에서 내년에 대공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근거로 그는 큰 사건이 일어난 다음해에 실물지표가 극도로 악화됐다는 실례를 들었다. 국내적으로 1980년 공황은 1979년 대통령 시해 사건이, 세계적으로는 1974년 경제침체가 1973년 중동전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씨 국정농단 파문으로 내년의 공황 가능성은 90% 이상이라는 게 우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닥터 둠’(비관적 경제전망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처하기 한참 전인 올해 초부터 이미 한국 경제의 위기 가능성은 다양한 경로로 제기돼 왔다. 나라 안팎의 경제지표가 지난해 말부터 유독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출·소비·고용 부진에 적금·보험 해약 늘어
그나마 올해 초에는 단골손님 격인 가계부채를 빼고는 주로 외부 원인이 거론됐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다 한국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핵 문제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하반기부터는 강 건너 불이 발등의 불로 번졌다. 내수·수출·생산 부진 등 우리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에 한꺼번에 빨간불이 켜진 탓이다. 여기에다 한진해운·대우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은 부정적인 시각을 더욱 키웠다. 1997년 한보·기아사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도 슬슬 힘을 얻었다. 정부가 “문제없다”며 마냥 여유를 부리기 어려운 상황이 닥친 것이다. 내수 침체에 수출마저 휘청거리면서 올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고, ‘최순실 게이트’의 악영향으로 내년 경제는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관측에 점차 무게가 실리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 4년 경제 지표 엉망
수출·소비·고용 최악 기록 경신중
조선·해운 구조조정 방안도 ‘날림’
문제없다던 관료들도 위기 시인
부총리도 대통령 대면보고 못하는
경제 사령탑 부재도 위기 부추겨
경제뿐 아니라 미 대선·노령화 등
복합 요인으로 경제 위기 닥칠 수도
실제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는 2분기에 견줘 0.7% 증가했다. 이 가운데 건설 투자의 기여도 비중이 무려 0.6%포인트였다. 건설을 빼면 나머지 부문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 지디피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제조업은 마이너스(-1.0%) 성장했다. 제조업의 이런 성장률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7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건설경기에 의존해온 정부가 비판을 받을 만한 대목이다.
정부가 헛발질하고 있는 동안 저금리 시대를 맞아 넘쳐나는 유동성은 주택시장으로 줄곧 밀려들었다. 덕분에 아파트 가격은 폭등하고 집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가계부채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한은 통계를 보면 가계부채는 올 상반기 기준 1257조원이고 연말이면 1500조원이 될 전망이다.
국내외 금융기관들은 특히 한국의 가계부채를 경고하고 있다. 최근 한은이 발표한 ‘시스템적 리스크 서베이’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문제 5가지를 묻는 질문(복수응답 기준)에 국내외 금융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70%)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저성장·저물가 기조 고착화(51%), 미국 금리 정상화(51%), 중국 경기 둔화(48%), 취약업종 구조조정(44%) 등의 순서였다. 올해 4월 발표에서 가계부채(54%)는 3위였다. 또 한은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가계부채의 위험 수준이 9년6개월 만에 ‘주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뜨거운 부동산 경기와 달리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다. 가계의 소비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가계 평균 소비 성향(가처분 소득 대비 소비 지출 비중)은 2011년 1분기 78.2%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하락세를 보이다 올해 2분기에는 70.9%로 떨어졌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디피 대비 민간 소비 비중은 지난해 49.5%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48.3%) 다음으로 최저치다.
수출에도 경고등이 확실히 켜졌다. 10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3.2% 감소하며 9월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지디피의 20%를 차지한다는 삼성전자·현대차의 부진 탓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 여파가 크다. 산업통상자원부 9월 수출 동향에 따르면, 9월 휴대전화 수출액은 18억7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33.8%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제조업 경기는 8월부터 3개월간 바닥을 치고 있다.
고용은 발표 때마다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대졸 실업자 규모는 3분기 기준 사상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선 31만5000명이었고 전체 실업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 역시 처음으로 30%대를 돌파했다. 지난 9월 청년(15~29살) 실업률은 9.4%로 199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가계의 마지막 보루인 보험과 적금 해약이 늘어난 건, 위기의 가장 뚜렷한 징후라 할 만하다. 올해 9월말까지 6개 시중은행에서 해지된 은행 적금 574만건 가운데 45.2%인 259만건이 만기 전에 깬 것이다. 지난해에 견줘 2.6%포인트 상승했다. 중도에 깨면 원금을 손해볼 수 있는 보험 해약도 늘었다. 생명보험사(25곳)와 손해보험사(16곳)가 올해 6월까지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 해지환급금은 14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견줘 7000억원가량 늘었다.
내수·고용·수출 등 모든 경제 부문 지표가 바닥을 찍고 있는데도,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대표적인 예가 8월말 한진해운 법정관리다. 3월부터 정부는 해운업 구조조정 때문에 청와대 서별관에서 여러차례 회의 끝에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상화는커녕 한진해운 배들이 세계 각국의 항구에서 하역을 거부당해 바다를 떠돌며 국제적 물류대란이 벌어졌다.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회사를 구조조정하면서 정부는 이렇다 할 명확한 원칙 없이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정부의 역할과 시장의 원칙을 어떻게 균형있게 자리매김할지 등 구조조정에 필요한 전제조건은 아예 실종됐다. 정부의 허둥대는 모습은 혈세 10조원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 처리에서도 그대로였다.
대외 변수에 따른 위기 증폭 가능성
사태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경제 사령탑인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부처에 있다. 하지만 경제 분야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 역시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는 1일 국회 예결위에서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한 지 한달이 넘었다고 말했다. 즉 부총리가 대통령을 만나지도 않고 그 전날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한진해운 구조조정에는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보유한 엄청난 부동산을 보면 이 정부가 부동산 정책 등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며 “최순실씨 사태로 국정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여야 합의로 거국내각을 꾸려 산적한 경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 교수는 “한국의 경제 상황을 봤을 때 1997년 때처럼 외환에 의한 위기 가능성은 낮다”며 “오히려 한-미, 한-중, 한-일 관계 같은 외교 변수에 따른 경제 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오는 8일(미국시각) 미국 대선 결과로 트럼프가 당선되거나 클린턴이 근소한 차로 당선될 경우, 미·중·일 관계 변화에 따라 환율·무역 문제 등이 불거져 한국에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석훈 박사는 “구조적으로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처럼 엘(L)자형 저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며 “경제 부문 사령탑을 다시 꾸리고 이를 중심으로 연착륙 정책을 계속 내놓아 위기의 가능성을 최대한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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