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내 집 10채 갖기 운동

이경은 금융부장 2016. 11. 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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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한 채 갖기도 어려운 현실 아니던가. 왜 집을 10채나 가지려고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내게 부동산 전문가 A씨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내 호주머니에 돈이 많지 않아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한 채 값으로 열 채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 자금이 온통 부동산으로만 향하는 것도, 그래서 한 달에 집값이 1억씩 뛰는 것은 정상이 아니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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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테크 시장에서 ‘내 집 10채 갖기 운동'이 열풍이다. 처음 들었을 땐 거액 자산가들의 새로운 축재법인가 싶었는데, 세상에나, 그게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최신 투자법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 집 한 채 갖기도 어려운 현실 아니던가. 왜 집을 10채나 가지려고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내게 부동산 전문가 A씨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10채 정도면 그나마 소박하죠. 요즘 집 투자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100채가 기본입니다. 최근 300채 집주인이 쓴 책도 나와서 인기잖아요. 아파트 200채 모은 30대 젊은이도 책을 냈다죠.”

추억의 게임인 ‘부루마블'에서나 건물을 10채씩 사 봤던 나는, 재벌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수백채씩 집을 사모아 돈을 버는지 궁금했다. 요즘은 로또 1등 당첨금이라고 해봤자 10억 밖에 되지 않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원리는 간단했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있는 전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업계에선 집값과 전세금의 갭(GAP·차액)만큼만 투자하면 된다고 해서 ‘갭 투자’라고 부른다. 요즘처럼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80~90%로 높은 시기가 최고의 타이밍이다.

내 호주머니에 돈이 많지 않아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한 채 값으로 열 채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당 지역에 나와 있는 매물을 싹 거두어들이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집값도 오르게 된다.

시장에서 매물 씨를 말려 버리니 집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되고, 투자자들은 이 틈을 놓칠세라 전세금을 냉큼 매매가만큼 올려버린다. 사실상 매점매석에 기반한 투기 행위여서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여지가 높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앉아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초저금리 시대에 마땅히 돈 굴릴 곳은 없는데 전세가율은 사상 최대 수준이라는 점에 착안한, 어떻게 보면 시대의 흐름을 날카롭게 꿰뚫은 스마트한 투자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피스텔 120여채를 보유해 논란이 됐던 고위 공무원 출신 홍모 변호사도 ‘재테크 성공담'을 책으로 내면 좋을 부동산 고수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부동산을 사재기해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식의 돈벌이 성공담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맥빠지게 한다. 시중 자금이 온통 부동산으로만 향하는 것도, 그래서 한 달에 집값이 1억씩 뛰는 것은 정상이 아니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소득의 형성 과정이 떳떳하지 못하고 일부 계층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사회는,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의 노동 의욕과 기업가 정신을 좀먹어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 소득을 챙기려는 행위를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과도한 빚을 내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부채에 의존해 집을 수십채씩 싹쓸이하면서 매집하는 행위다. 저금리의 달콤함에 취해 은행빚 1억~2억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부채를 짊어지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은행에서 얼마든지 돈도 빌려 주고 대출 이자도 몇 푼 안된다, 지금 당장 아파트를 사모아야 한다"고 외치니 황당하다.

이미 우리나라 가계는 상당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가계신용은 지난 2분기 말에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90%를 찍었다. 지난 6월 말 기준 1257조원 규모였던 가계부채 규모는 연내 1300조원을 뚫고, 내년 말엔 15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와 있다(현대경제연구원).

‘부동산 부채 중독’의 위험을 강하게 경고해야 할 정부는 되레 저금리가 왜곡시킨 부동산 호황을 내심 즐기고 있는 듯하다. 다들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올해 1~7월에 국세청이 거둔 세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0조원 이상 더 걷혔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가 세수 증대에 톡톡히 이바지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올 3분기(7~9월)에 한국 경제는 0.7%(국내총생산 기준, 전분기 대비) 성장하며 선방했는데, 역시 뜨겁게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이 떠받쳐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정부가 더이상 뒷짐지고 구경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이미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들썩대기 시작했다.

부채에 중독되어 ‘내 집 10채가 인생 목표'라는 사람들을 부동산에서 떼어내는 작업이 쉽진 않겠지만, 더 큰 후폭풍을 막으려면 가계와 기업에 강력한 탈출 신호를 보내줘야 한다. 핫머니는 잡되 실수요자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시장 구조를 촘촘히 바꿔나가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도 필요하다. 분양권 전매제한 등을 담은 11·3 부동산 대책이 나오긴 했지만 늦은 감이 있다. 집을 수십채, 수백채씩 보유해서 수익을 올리는 집 장사꾼들에 대해선 세금은 제대로 내고 있는지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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