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카스테라·펑리수.. 한국인의 '입친구' 되다

이수연 기자 2016. 11.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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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대한민국 강타한 대만 간식 누가크래커·밀크티·과일맥주.. 어르신들도 좋아해 수요층 늘자 백화점·마트·대형서점·편의점까지 침투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30분. 현대백화점 판교점 문이 열리자 1층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이 멈춰 선 곳은 지하 1층 식품관 ‘대만 락카스테라’. 노란 티셔츠 입은 직원들이 카스텔라를 바삐 구워내는 매장 앞에 순식간에 30~40명 이 줄을 섰다. 이곳뿐 아니다. 서울 서교동 ‘단수이 대왕 카스테라’, 부산 남포동 ‘대왕 카스테라’, 제주 서귀포 ‘단수이 카스테라’도 손님들 붐비기는 마찬가지. 이 집들은 모두 대만 단수이 지역에서 파는 카스텔라를 선보인다.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맛을 낸다. 부드럽고 담백하다. 달지 않아 노인들도 좋아한다.

카스텔라뿐 아니다. 야채크래커 사이 누가사탕이 들어 있는 ‘누가크래커’, 파인애플 파이 ‘펑리수’, 깊고 진한 풍미의 ‘3시15분 밀크티’도 인기다. 모두 대만에서 건너온 간식들. 백화점, 마트는 물론 편의점까지 속속 침투하며 디저트 업계 이슈로 떠올랐다.

'꽃할배'에서 시작된 대만 열풍

대만은 미국 CNN에서 세계 미식가들의 성지(聖地)로 1위를 차지할 만큼 식도락가들의 천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년 전 여름, tvN '꽃보다 할배' 대만편이 방송된 이후 '먹방'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대만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줄 서서 먹었던 싸고 맛있는 카스텔라와 달고 짠 크래커를 잊지 못한다. 선물용 간식으로 한 보따리 사서 트렁크에 꾸역꾸역 집어넣었고, 그렇게 대만의 맛이 전파됐다.

'단수이 카스테라'와 '누가크래커'가 대표적이다. '누가크래커'는 대만 여행을 계획할 때 '예약 필수 대만 간식'으로 통한다. 야채크래커 사이 달걀 흰자를 거품 내 시럽과 섞은 '누가(nougat)' 캔디가 들어 있어 꾸덕한 맛이 특징이다. '엿'처럼 씹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가크래커 중에서도 대만 동먼시장 노점상인이 판매하는 '시장표 과자' 미미누가크래커는 국내 정식 통관이 힘들어 대만 여행 시 꼭 사오는 '필수 아이템'이 됐다. "이곳에 가면 한국인이 90%" "골목 안쪽에 있어 찾기 힘든데 일단 발견하면 죄다 한국 사람"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10개 구입하면 1개를 무료로 증정하고, 누가크래커가 담긴 박스 뒷면에는 한국어로 "1년 동안 응원해주시는 모든 한국 친구들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까지 적혀 있다. '대만 맛집 우리는 먹으러 대만 간다'를 펴낸 배문화(31)씨는 "대만 레스토랑,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들은 저렴하지만 식재료가 훌륭해 국내 시장에서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된다"며 "대만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맞게 점차 변하고 있는 것도 인기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백화점부터 편의점까지 진출

배씨의 말처럼 대만 간식은 신선함과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 디저트는 '스몰 럭셔리'라 불릴 만큼 작고 값비싼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만 간식은 반대다. 단수이카스텔라를 현지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내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락 카스테라'는 서너 명 먹을 수 있는 크기의 카스텔라가 단돈 6000~7000원이다. 달걀 58개를 넣어 초대형으로 한 판 구워낸 다음 10등분해 판매한다. 빵 반죽부터 오븐에서 구워져 나오기까지 70분이 걸릴 만큼 공정이 길다. '1인 1개 판매'로 제한을 둬 줄 서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 락카스테라를 사기 위해 인천에서 일부러 왔다는 최봉수(27)씨는 "오늘이 두 번째다. 평일에 왔는데도 1시간 30분을 기다려서 '오리지널' 맛을 먹었다. 이번엔 '치즈'맛이 궁금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판교동에 사는 김석진(63)씨는 "딸이 사와 먹어봤는데 맛있고 가격도 싸서 좋았다. 한 개 사도 온 가족이 나눠 먹기 충분하니 요즘 젊은 친구들 말마따나 가성비 좋은 디저트"라고 말했다. 현재 락카스테라는 매일 450~500개씩 팔려나간다.

수요층이 늘자 국내 백화점 식품관, 대형서점, 편의점 등에서도 다양한 브랜드의 대만 간식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는 지난달 21~27일 대만 상품전을 열었다. 본래 행사는 3일 진행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일주일 더 기간을 늘렸다. 주부 이은혜(43)씨는 "대만 여행을 두 번 정도 다녀왔는데 그때의 맛이 생각나 종종 누가크래커를 사먹는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자 맛이 아니고, 누가의 단맛과 야채크래커의 짠맛이 '단짠단짠' 조화를 이뤄 먹다 보면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일명 화장품 밀크티, 펑리수를 아십니까?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 13일부터 버터, 밀가루, 달걀 등을 구운 바삭한 쿠키 안에 쫀득한 파인애플 잼이 들어간 대만 브랜드 '치아더'의 '펑리수'를 판매한다. 편의점 CU에서도 이달 3일부터 대만 '유키'의 누가크래커를 직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인기 밀크티 티백 '3시 15분 밀크티'와 화장품 용기 같은 세련되고 예쁜 통에 담겨 '화장품 밀크티'로 불리는 '비피도'의 '더 심플 밀크티'는 출시 직후 품귀 현상마저 일어났다. 지난해 6월 이마트에서 피코크 대만 간식 시리즈로 출시한 호떡과 전병은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 10만개를 돌파했다. 폭발적인 반응에 이마트는 지난 6월 대만 현지에서 만든 피코크 팥호떡도 내놓았다. 홈플러스도 지난 9월 대만 상품전을 열었다. 박선미 홈플러스 홍보팀 주임은 "고객들 반응이 좋아 대만 인기 과일맥주인 망고맥주도 들여왔다"고 말했다.

락카스테라가 들어오기 전까지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최고 인기 디저트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였다. 월평균 6억원 매출을 올렸지만 요즘은 대만 락카스테라 고객 몰이에 주춤거리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대만 간식의 인기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박소영 현대백화점 베이커리 담당 바이어는 "기존 디저트들이 30~40대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에 비해 락카스테라는 남녀노소, 특히 노년층에게 인기가 높다"며 "일본 '몽슈슈'처럼 대만 대표 간식 락카스테라도 스테디셀러 디저트 브랜드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경민 신세계백화점 식품담당 바이어 역시 "미식가들은 일본·미국 등 세계 각국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는다"면서 "앞으로는 대만처럼 아직 덜 친숙한 나라의 이색 디저트를 찾는 사람들이 더욱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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