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독립 못하고 안하고..'자립심' 상실한 캥거루족 사회

정호선 기자 2016. 10.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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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절반 이상, 30대 절반이 '나는 캥거루족'..취업난-주거비 탓, 부모 노후에도 부담


성인이 돼 독립할 때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의존하고 따로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부릅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성인남녀 1천61명을 대상으로 캥거루족 체감 정도를 조사한 결과가 눈에 띕니다. 자신을 캥거루족이라 생각하는 응답자가 지난해 같은 조사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 '경제적' 도움 뿐 아니라 '인지적' 의존도 높아

'스스로 캥거루족이라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6.1%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응답률은 37.5%였습니다. 20대 응답자의 59.3%, 30대 중에서도 43.8%가 자신을 캥거루족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캥거루족이라 생각하는 이유 중에는 '경제적으로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62%로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경제적으로도, 인지적으로도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19.7%),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14.1%) 등이 있었습니다. 즉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뿐 아니라 혼자서는 불안하고, 독립된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인지적 의존도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이유, 예상하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거비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취업도 어려운데다, 취업을 한다고 해도 사회초년생이 월셋집이라도 마련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들게 마련입니다.

처음엔 눈치도 보이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 주거비 걱정도 없고 청소, 빨래, 집안일 모두 해결되고 편하기 그지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독립할 생각이 오히려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20%는 독립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고공행진하는 집값 부담 때문에 독립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캥거루족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 여러 사회적 문제가 여기에 집약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청년 실업입니다. 취직이 어려우니 스스로 소득을 올리는 기간이 늦어지고 경제기반이 약하다 보니 자연히 독립도 지연됩니다. 청년실업과 함께 초혼 연령이 지속적으로 늦어진 것도 원인입니다. 일례로 서울 인구의 20.3%를 차지하는 25~34세 청장년층은 10명 중 7명(68.2%)이 미혼입니다.

결혼을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고, 서두를 여유도 없다는 인식은 초혼 연령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연결됐는데, 2014년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각각 32.8세, 27.3세로 2000년의 29.7세, 27.3세에 비해 3세 정도 높아졌습니다. 초혼 연령이 늦어지는 건 저출산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됩니다.

● '캥거루족' 부모 세대 안정적 노후를 해치는 최대 위협요인

젊은 계층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들의 삶의 질이 급전직하 한다는 것도 큰 걱정거립니다. 독립하지 못하고 주변에 맴도는 자식을 곁에서 보는 부모의 심정은 안타깝습니다. 혹시 내가 뭘 잘못 키워서 취직을 못하고, 결혼을 못하고, 뭔가 부족한 걸까, 속상하고 복잡한 심정이라고 토로합니다. 게다가 빠듯한 살림살이에 넉넉치 않은 은퇴자금을 가지고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부모로서는 캥거루족 자녀가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안정적인 노후를 해치는 최대 위협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50대 삶의 만족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걸로 나타나는 것도 이런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일종의 '끼인 세대'인 50대는 위 세대도 봉양해야 되고 아래 세대도 이끌고 키워야 하는 불안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계속 손을 벌립니다. 

이미 평생 일을 해왔는데 퇴직을 앞둔 상황에서 다시 고민과 짐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결혼해서도 부모에 얹혀살거나, 결혼도 포기한 채 집에 머무르고 있는 자식들을 부양하느라 자신들의 노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 현상이 부동산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캥거루족이 늘면서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의 중대형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지난해 12만3159건을 기록, 전년 11만2208건에 비해 1만951건(9.7%) 늘었는데, 2013년 8만7292건과 비교하면 3만5867건(41%)이 급증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캥거루족 증가가 중대형 아파트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2월 발표한 '가족 변화에 따른 결혼출산형태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세대 가구 중 25세 이상 미혼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은 1985년 9.1%에서 2010년 26.4%로 무려 17.3%포인트 급증했습니다. 또 부모세대와 함께 사는 기혼자 부부 역시 1985년 0.55%에서 2010년 2.1%로 280%이상 늘었습니다.

이런 캥거루족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 경기침체로 18~34세 청년 3명 중 1명이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의존하고 있다는 미국의 조사결과가 이를 보여줍니다. 미국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는 '대학졸업 후 최고 5년 정도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부끄럽다거나 이상하지 않다'고 응답할 만큼 미국 젊은 세대들의 사고방식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다시 부모에게 돌아온다 해서 '부메랑 키즈'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유럽 국가들도 캥거루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유로존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후 시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 가격을 급상승시켰고 집값이 오르면서 청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돼 캥커루족이 크게 늘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 부모에게서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것으로 유명한 북유럽의 전통이 변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20~30대 캥거루족이 30~4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한다며 '기생독신'이란 신조어도 탄생했습니다.

또 한가지 씁쓸한 것은 캥거루족들 사이에서도 양극화(?)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일명 '엄카족'인데, 부모님 댁에서 살면서 엄마 카드로 여유 있게 소비를 하는 '차원이 다른' 캥거루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SNS에는 이들에 대한 풍자, 지원받지 못하는 열악한 캥거루족들의 자기 신세 한탄, 박탈감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캥거루족 급증 현상은 사회 구조 탓이 큽니다. 엄청난 교육비를 들여 대학교육까지 받아도 취직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고, 노동 시장은 점점 더 좁아집니다. 결국 일자리 창출은 청년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부모세대를 위해서도 중요한 입니다.

● 의존적인 캥거루족, 청년들 도전의식 저하로 귀결

캥거루족의 양산은 결국 청년들의 도전의식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귀결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헬리콥터 맘'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을 부모가 일거수일투족 관리하면서 혹시나 자립심, 독립심이 결여된 성인을 만드는 건 아닌지, 부모들의 관여도가 유리하게 작용하는 입시 제도도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별 가구의 고민을 넘어서서 그 숫자가 무시할 수 없이 늘어난다는건 사회문제로 접근해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 집 자식이 취직도 안하고 결혼도 안하고 문제야.."라는 식의 푸념 정도에 머물러서는는 캥거루족의 증가 이면에 깔린 복잡한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해 낼 단초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호선 기자ho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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