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자연 이치는 비선형인데.. 이에 역행하는 '금수저·흙수저 세상'

기자 2016. 10. 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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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19) 비선형 동역학과 위상공간

커피 자판기가 있다. 500원을 넣으면 커피 한 잔이 나온다. 500원 동전 두 개면 커피 두 잔을 마실 수 있다. 자판기에 넣는 동전의 숫자가 하나, 둘, 셋, 늘어나면 커피도 마찬가지로 한 잔, 두 잔, 세 잔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넣은 것과 나온 것이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비례해 늘어날 때 이 시스템을 ‘선형’이라 한다. 가로축에는 넣은 돈이 얼마인지, 세로축에는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가 몇 잔인지를 표시해 그래프로 그리면 곧은 선 모양이 되니 ‘선형’이라 할 뿐이다. 100원을 넣으면 한잔이 아닌 1/5잔, 10원을 넣으면 1/50잔의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상상의 자판기에 1원을 넣으면 1/500잔의 커피 몇 방울이 나올 거다. 선형시스템은 이처럼 넣는 양이 적으면 나오는 양도 적은 시스템이다. 마찬가지로 이 상상의 자판기에 500원을 넣었을 때와 501원을 넣었을 때 나오는 커피의 양을 비교하면 눈곱만큼인 1/500잔의 양만큼 차이가 날 거다. 조금 차이가 나는 두 양을 입력으로 넣으면 선형시스템에서 나오는 출력의 양도 조금만 차이 난다.

일차원 공간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상태를 뉴턴의 고전역학의 틀 안에서 기술하려면 딱 두 개의 변수가 필요하다. 바로 물체의 위치와 속도다. 주어진 시간에 물체의 위치와 속도가 얼마인지를 정확히 안다면 미래의 한 시점에서의 위치와 속도는 딱 하나로 유일하게 결정된다. 다른 미래는 없다. 바로 라플라스가 이야기한 고전역학 결정론의 세계다. 이 물체의 상태를 그래프로 표시하려면 가로축에 위치를, 세로축에 속도를 표시하면 된다. 현재 위치 x=3에서 속도 v=2로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상태는 이차원 평면 위의 한 점(3, 2)으로 나타내면 된다. 물체의 운동 상태를 표시하는 이 점을 위상점(phase point), 위상점이 들어있는 공간을 ‘위상공간(phase space)’이라 부른다. 일차원에서 움직이는 물체 하나의 상태를 표시하려면 이처럼 이차원의 위상공간이 필요하다.

만약 물체가 일차원이 아니라 독자와 내가 살고 있는 삼차원의 공간에서 움직이면 어떨까. 삼차원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는 x,y,z 세 값, 속도도 마찬가지로 x, y, z, 세 방향의 값을 각각 알아야 한다. 즉, 모두 여섯 개의 좌표축이 있어야 이 물체의 상태를 오롯이 표현할 수 있게 되어 육차원의 위상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만약 일차원에서 움직이는 두 물체라면 어떨까. 첫 번째 물체의 위치와 속도, 두 번째 물체의 위치와 속도, 모두 네 개의 변수가 필요하니, 일차원에서 움직이는 두 물체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위상공간은 사차원이 된다.

이처럼 위상공간의 차원은 물체가 많아질수록, 공간의 차원이 커질수록 늘어난다. 이제 다음 질문에 독자가 답할 수 있으리라. N개의 입자가 d차원 공간에서 움직이는 경우 위상공간은 몇 차원일까? 각자 생각해 보시길. N개 입자 모두의 한 시점에서의 상태가 위상공간의 딱 한 점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물체의 현 상태로부터 미래의 상태를 결정하니, 위상점은 시간이 지나면 위상공간 안에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게 된다. 뉴턴의 법칙이 결정론적이라는 의미는 위상공간 안에서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운동을 시작하면 궤적은 딱 하나로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위상공간의 두 궤적은 결코 한 점에서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다. 결론을 부정해 모순임을 보이는 방법으로 증명하면 된다. 두 궤적이 위상공간의 한 점에서 만난다고 가정하고, 정확히 이 교점 위에 놓인 위상점을 생각하자. 이 위상점은 두 개의 미래를 가지게 되어 뉴턴의 결정론에 위배된다. 따라서 위상공간 안의 어떤 궤적도 한 점에서 만날 수 없다.

입력한 양이 조금 차이 나면 출력된 양도 조금만 차이 나는 것이 바로 선형시스템이라는 것을 돌이켜 보면, 고전역학계의 선형성은, 시작이 조금 차이 날 때 결과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가까이 출발한 두 궤적은 시간이 지나도 서로 멀리 벗어나지 않으므로 선형시스템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처음 시작한 위상공간 안의 위상점 위치를 정확히 모르더라도 고전역학으로 예측한 미래가 많이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태양, 지구, 달처럼 천체가 3개인 경우의 역학 문제가 바로 ‘삼체문제’다. 19세기 말 포앙카레는 삼체문제를 깊이 연구하다,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로 말미암아 엄청나게 다른 최종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삼체문제는 선형시스템이 아닌 ‘비선형시스템’이다.

포앙카레의 발견은, 두 위상점을 아무리 가까운 위치에서 출발시켜도 결국 두 궤적 사이의 거리가 아주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비선형시스템의 예측불가능성이다. 초기 위상점의 위치를 아무런 오차 없이 무한한 정확도로 측정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어쩔 수 없는 초기의 작은 오차로 말미암아 위상공간 안에서 미래 궤적의 불확정성이 아주 커질 수 있다는 거다. 궤적이 결정론적으로 유일하게 결정되어 눈앞에 놓여있다 해도, 이 궤적을 위상점이 따라가려면 정확히 궤적 위에 우리가 위상점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아주 약간만 삐끗하면 미래에 완전히 다른 옆길로 샐 수 있다는 뜻이다. 결정되어 있음과 예측가능성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선형동역학은 명확히 보여준다.

세상에는 포앙카레의 삼체문제와 같은 비선형시스템이 정말 많다. 종이 위에 두 점을 찍고 둘을 잇는 직선을 그려보라. 두 점을 잇는 모양 중 똑바른 직선은 딱 하나만 있지만, 구불구불 곡선으로는 얼마든지 다르게 두 점을 연결할 수 있다. 마찬가지다. 사실 자연에는 선형이 아닌 비선형시스템이 무수히 더 많다. 그럼에도 비선형동역학은 표준적인 대학 교과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여러 교과목에서 대부분 선형시스템만 배우니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자연현상의 대부분이 선형이라 오해하곤 한다. 또, 교과서에 나오는 한 줌도 안 되는 답 있는 문제들만 풀어보고는 자연현상의 대부분을 물리학자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다. 안 풀리는 문제를 가르치긴 어려우니 교과서에 비선형시스템이 드물 뿐이다.

자연에는 해석적으로 풀리지 않는 비선형시스템이 선형시스템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자. 수많은 종의 동물에 대해 연구하는 동물학을 코끼리학과 비코끼리학의 둘로 나누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비선형동역학이 따로 있다는 것은 마치 비코끼리학이라는 동물학이 따로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학자들은 장난스럽게 비유한다. 자연은 원래 비선형적이다. 선형성의 예외가 아주 드물게 있을 뿐이다.

비선형시스템은 수식의 형태로 깔끔하게 답을 적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위상공간을 이용해 시간 변화를 시각화하는 것이 직관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시간이 흐르면 궤적이 위상공간 안의 유한한 부피 안으로 수렴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최종적으로 궤적이 끌려 들어가는 어떤 구조를 ‘끌개(attractor)’라 부른다. 궤적이 결국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경우에는 끌개의 차원이 0차원이다. 궤적이 점이 아니라 원처럼 폐곡선의 모양이 될 때도 있다. 1차원 끌개다. 비선형시스템이 보여주는 끌개 중에는 아주 이상한 모양도 있다. 하도 이상해 그 이름도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다. 이때, 처음 위상점의 위치가 어디든 관계없이 궤적은 결국 위상공간 안의 유한한 부피 안에 들어 있는 이상한 끌개를 향해 말 그대로 끌려 들어온다. 그런데 이상한 끌개는 0차원의 점도 아니고 1차원 원모양 닫힌곡선도 아니어서 새로운 궤적을 계속 그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된다. 유한한 위상공간의 부피 안에 무한히 긴 궤적이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그런 모습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무한히 긴 궤적은 자신과도 결코 만나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 될지 여러분이 상상해 보실 수 있겠는가. 정말 이상한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김범준의 과학이야기’ 11회(문화일보 3월 9일자) 에서 이미 비슷한 프랙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비선형시스템의 운동을 위상공간 안에서 시각화하면 프랙탈이 될 때가 많다. 처음 마음은 먹었지만 이번 글에서도 결국 기상학자 로렌즈 이야기는 시작도 못 했다. 비선형성이 지배하는 세상사에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도 세상이 비선형이라 가능한 얘기다. 그렇다면 금수저가 금수저를, 흙수저가 흙수저를 물려주는 우리 사회는 선형이려나.(문화일보 9월 28일자 25면 18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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