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은의 바(Bar)람 불어 좋은 날] 번잡스러운 건배 없는 고즈넉한 '혼술', 지금은 '혼바' 시대

손기은 GQ코리아 에디터 2016. 10. 2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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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바’ 100% 즐기려면? 바텐더와의 대화를 쑥스러워 하지 마라집에서 가까운 게 최고… 작은 동네바·골목바를 찾아라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태원 ‘웜홀 인 버뮤다’. 이태원 ‘더 버뮤다’ 3층에 숨겨진 소규모 바로,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바 자리에 앉아 ‘혼술’하기 좋은 곳이다./사진 제공=손기은

혼자 바를 찾아 위스키나 칵테일을 마시는 일을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혼바’가 아닐까? ‘혼바’를 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혼자 가서 바텐더와 대화할 준비는 되었나? 작고 조용한 바를 골랐나? 그리고 ‘혼바’의 로망을 실현할 ‘동네바’를 찾았나?

◆ 권커니 잣거니, 건배사도 없는 고즈넉한 ‘혼술'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tvN 드라마 ‘혼술남녀’를 챙겨본다. 매 회마다 술이 가득 찬 잔을 클로즈업하고, 그 술에 어울리는 안주와 그 요리 소리까지 생생하게 촬영하는 드라마라니! 한 시간 내내 주인공과 건배를 하는 기분으로 TV 앞에서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시기 일쑤다.

‘혼술’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혼자 술 마시는 일이 더욱 신나는 일이 되었지만, 사실 ‘혼술’은 위스키 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다. 바는 원래 혼자 가서 술 마시기 참 좋은 공간이다. 혼자 가야 더 온전히 즐길 수 있고, 혼자 가야 바텐더도 더 환영한다. 어둑하게 깔리는 조명이나 둥둥 울리는 음악소리가 여럿이 함께 대화하기에는 영 불편하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쏠게!”라고 호기롭게 말하기에는 가격대가 좀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소규모 바 방화동 ‘더웨스트햄릿’

그러니 혼자 바에 가는 게 두려워 괜히 여러 사람을 우르르 이끌고 바에 간다면, 그 바의 매력을 온전히 다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바 앞에서 머뭇거리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어색함의 장벽을 이마로 꽝 깨친 뒤, 바텐더 바로 앞에 앉아 술을 마시다 보면, 누군가 시간 맞춰 함께 술 마시러 가는 게 더 어색한 순간이 올 테니. 혼자서 바를 완벽히 즐기기 위해선 이런 ‘용기’ 외에도 몇 가지 챙겨야 할 요소들이 있다.

◆ ‘혼바’라도 바텐더와의 대화는 선선하게

바의 가장 화려한 꽃은 바텐더다. 바텐더와 대화하는 게 어쩐지 두렵고 쑥스럽다면, 그 바를 백퍼센트 즐길 수가 없다. 바에 앉아서 바텐더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들으며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휴대폰만 만지작거릴 계획이라면, 굳이 그 공간에 앉아서 그 칵테일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

‘혼술남녀’의 진정한 ‘혼술러 진정석’ 교수는 요리에 술을 곁들이며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다. 하루종일 강의를 해야 하는 학원 강사라 주변의 소리를 차단한 채 혼자 조용히 술에만 집중하는 ‘나만의 힐링타임’을 즐긴다. 하지만 만약 진정석이 칵테일 바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면, 나는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 그 이어폰을 슬며시 뽑아주겠다.

아담한 크기로 혼자 술 먹기 좋은 해방촌 ‘트웰브’

‘혼바’는 혼자 바에 가서 술 마시는 걸 뜻하긴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 방탄유리를 두르듯 완전히 혼자 되라는 뜻은 아니다. 바텐더와 시시콜콜 속 깊은 이야기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바텐더로부터 좋은 술을 추천 받고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여유를 가지라는 뜻이다.

이런 식의 대화, 즉 ‘스몰 토크’는 바텐더들도 늘 훈련하는 일 중 하나다. 손님과의 ‘스몰 토크’를 거북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바텐더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손님이 만족할만한 술을 추천할 수 있고, 손님의 성향에 맞춰 칵테일을 제조할 수 있다.

만약 혼자 바에 갔는데 바텐더가 당신 앞을 머쓱하게 서성인다면 눈길을 주며 먼저 대화의 대문을 열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의무는 아니다. 철저히 혼자 있고 싶다면, 그냥 그러고 싶다고 대답해주면 될 일이다.

◆ 바가 작고 조용할수록 ‘혼바’족 많고 ‘혼술’ 맛도 살아나

영화 ‘르 아브르’ 포스터

‘혼바’는 어느 바에서나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크기가 아담하고 조용한 바라야 마음이 더 편하다. 작은 규모의 바에서는 보통 3인 이상의 단체 손님을 잘 받지 않는다. 우연히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합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셋, 넷이 모이면 시끄러워지고 혼자 오는 손님들이 방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의 바일수록 혼자 온 손님이 더 환영 받는다. 특히 오너 바텐더가 혼자 바를 지키고 있는 작은 바는 한번에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손님 수가 6~7명 정도에 불과하다.

해방촌에 자리잡은 ‘트웰브’나 이태원에 있는 ‘12 chairs’ 같은 곳은 크기가 아담해 혼자 가서 술 마시기 적합한 크기의 공간이다. 가로수길에서 조용히, 묵묵히 영업 중인 위스키 바 ‘dram’ 역시 최대 정원이 7명에 불과한 작은 공간이다. 이태원 ‘더 버뮤다’ 3층에 숨겨진 또 다른 바 ‘웜홀 인 버뮤다’ 역시 예약한 손님만 받는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바 자리에 앉아 ‘혼술’하기 좋다. 서울의 왼쪽 끝자락 방화동에 ‘더웨스트햄릿’도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고 최대 8명까지만 손님을 받는다. 중심가에서는 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위스키와 칵테일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은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가서 ‘혼술’을 마신다.

◆ 내실 있는 동네바, 골목바는 ‘혼바’족의 로망

작고 아담한 바가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집에서 가까운 바만큼 ‘혼바’의 우위에 놓긴 힘들다. ‘혼바’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집 근처,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찾을 수 있는 바를 물색해두는 것이 좋다. 어쩐지 집에 바로 들어가기 울적할 때, 배가 고픈 건 아니지만 문득 술이 고플 때,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조금 틀어 방문할 수 있는 좋은 바가 있다면 최고로 행복한 동네에 사는 셈이다.

충성도 높은 단골이 많은 복정동 ‘바인하우스’

‘혼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영화 ‘르 아브르’가 떠오른다. 주인공 마르셀이 하루종일 손님들의 구두를 닦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구두닦이 도구함을 풀어두고 바로 가는 곳이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바다.

친구 같은 주인이 따라주는 화이트 와인 한잔을 마시고 한 숨 돌린 뒤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향한다. 이 영화가 개봉한 것이 2011년인데, 아직까지도 ‘동네 바’에서 ‘혼술’하는 이유와 즐거움을 이렇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르셀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던 그 바처럼, 내가 사는 곳의 좋은 ‘동네 바’를 찾아야 ‘혼바’가 비로소 완성될 것 같다.

최근엔 서울 중심가가 아닌 외곽에도 좋은 바들이 많이 보인다. 위스키와 스피리츠를 다양하게 갖추고, 정성스레 만든 칵테일을 내놓는 곳이 꽤 많아졌다. 그 중에선 ‘재야의 고수’와 같은 바텐더들도 눈에 띈다. 성남시 수성구 복정동에 있는 ‘바인하우스’는 지난 2007년에 문을 연 곳이다. 충성도가 높은 동네 단골 손님은 물론, 서울과 타 지역에까지 단골을 두루 두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김병건 바텐더는 “위스키 세 병만 갖다 놓고도 손님이 끊이지 않게 하는, 손님들과 진짜 소통하는 바텐더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바람만큼 혼자 바에 앉아 바텐더와 대화하며 칵테일을 마시면 시간 가는 것을 잊게 된다. 다행히 그의 작은 바에는 신기하고 재미난 술들이 각각의 사연과 함께 꽉꽉 채워져 있으니 손님이 끊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최근엔 분당에 위스키 바가 문을 더 열었고, 서울의 위쪽 끝인 수유동에도 ‘낫심플’이라는 이름의 바가 성업 중이다. 인천, 부천, 천안, 군산, 대구, 춘천 등지에도 서울 부러울 것 없는 바들이 제각각의 스타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작은 동네로, 더 좁은 골목까지 바 문화가 퍼져나간다면, ‘혼술’하는 마음이 한없이 풍성해질 것 같다. ‘혼바’로 하루를 위로하는 날들도 점점 더 많아질 테다. ‘혼바’하기 딱 좋은 계절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 손기은은 남성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GQ KOREA’에서 음식과 술을 담당하는 피처 에디터로 9년 째 일하고 있다. 이제 막 문을 연 레스토랑의 셰프부터 재야의 술꾼과 재래시장의 할머니까지 모두 취재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요즘은 제대로 만든 칵테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바와 바를 넘나드는 중이다. 바람이 불면 술을 마신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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