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근무, 아들의 힘든 병원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

2016. 10. 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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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 계획 초과근무제, 업무프로세스 개선 등 공직사회에 근무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로 인해 공무원의 삶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 재충전 휴가 이후 업무생산성 향상, 삶의 만족도 개선 등 조직과 개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이러한 사례들을 수기 공모전을 통해 소개한다.(편집자 주)

2016년 6월 2일 목요일. 장가계로 가족동반 여행을 떠나다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었다. 6월 2일은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으로 날씨가 화창하고 포근했다. 고향 친구들끼리 해외여행 모임을 만들어 꾸준하게 돈을 갹출해 그동안 모은 적금으로 어렵게 시간을 내서 가족들과 함께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떠났다.

고향 시골 친구들인 우리 친구 4명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대학생과 공익근무하는 2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각자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 부부만이 여행을 함께하게 됐다. 모처럼 휴가를 내서 사무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참으로 즐겁다. 여행일정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하고 현충일과 연계, 최소한의 연가를 사용하도록 스케줄을 잡았다.아무래도 사무실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휴가를 최소화해야 한다.

여행 첫날 장가계에 도착하여 대협곡을 보았고 다음날에는 보봉호, 양가계, 원가계를 방문했는데 산세가 너무나 장엄하고 깍아지른 듯한 산 봉우리들의 멋진 장관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3일째의 천문산과 귀곡잔도, 유리잔도는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다. 그 수려한 자연경관은 살아생전 한번은 꼭 와봐야 할 풍경이다. 같이 하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에 숙소 근처를 산책하면서 군것질을 하는 등의 시간도 참으로 즐거웠다.


6월 5일 여행 마지막날 집에서 온 카톡, 아들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5일 오전, 여행지 1곳을 더 구경하고 바로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하는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까톡. 까톡. 새벽 4시 50분경에 카톡 소리에 핸드폰을 보니 둘째 아들이 보낸 문자다. 형이 교통사고가 나서 대전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와 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긴급하게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연락한다고...

순간 잠이 확 달아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비행기표를 바꿔서 빨리 갈 수 있을까, 아들 상태는 어떨까 하는 생각과 걱정으로 혼란스럽다. 우리 부부는 어떠한 조치나 행동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의 안타까움에 그저 아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할 수 밖에 할 일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당초 일정에 맞춰 청주공항에 5일 오후 5시경에 도착해 7시경에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친 아들은 일단 응급처치와 MRI 등 각종 사진 촬영과 검사를 했고 병실로 옮겨 누워 있었으며 다행히 정신은 멀정했다. 담당의사는 목 뼈가 부러져서 가슴 아래로 감각이 없는 것이 신경이 손상되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오른쪽 다리는 뼈가 3군데가 부러졌다고 설명해 줬다.

특히 부러진 목뼈로 인해 신경이 다친경우에는 하반신에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했다. 걱정이 많이 될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의사가 잘 판단해 수술이 잘 되기만을 빌 뿐... 수술을 위해 월요일 저녁 MRI를 다시 찍고 나서야 다행히 목 척추에 있는 신경이 끊어지지는 않고 다만 신경이 눌린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화요일 담당 교수가 출근하고 의사들이 회의를 하고 나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아들은 4시간여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아들은 계속해서 병원 침대 생활을 해야 했다. 처음 며칠은 대소변이 아예 없었고 소변은 소변줄을 통해서 빼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 공무원이어서 와이프가 먼저 1주일 휴가를 냈다. 여행간다고 지난주 후반 목금요일에 2일의 연가를 사용하고 난 후이고 일도 걱정이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아들을 옆에서 수발해야 했다. 소변줄을 통해서 나온 소변통을 비우고, 물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씻기고... 그 밖의 소소한 보조를 해야만 했다.

6월 13일 유연근무를 신청하다

아들은 앞으로 한참을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처지가 됐다. 혼자서는 꼼짝할 수 없다. 시골에 할머니가 계셨으나 연로하셔 병원 간호를 하기에는 너무 허약하시다. 그렇다고 계속 사무실을 비우고 연가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간병인을 두기로 했다. 간병인은 24시간 아들 옆에서 간병을 했고 토요일 하루 휴가를 줬다.

간병인이 있더라도 누워있는 아들을 만나러 우리는 매일같이 병원을 들렀다. 우리집과 직장이 세종에 있어 대전에 있는 병원까지 가는데는 1시간여가 걸렸고 퇴근을 하고 가면 병원에 얼마 머물지 못했다. 그래서 부부공무원인 나와 와이프는 유연근무를 신청하기로 했다.
 
1시간 먼저 출근해서 일하고 1시간 먼저 퇴근하는 8시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시차출퇴근제를 신청했다. 다행히 우리 사무실은 유연근무를 활성화하기 위해 조직성과 평가에도 반영하는 등 유연근무를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유연근무제를 사용할 수 있었다. 또 내가 작년에는 주말부부로 있으면서 금요일 유연근무를 자주 사용해 봐서 그 근무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공무원인 와이프의 사무실은 유연근무를 신청한다고 했더니 아직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다들 의아해 했다고 한다. 지방은 아직 유연근무제가 그렇게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는 않는 듯 했다.

보통 사람은 무엇을 처음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렵움이 있다. 와이프는 다행이 아들이 병원에 있다는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로 유연근무를 신청해서 허락을 받았다. 다만 1달 단위로 신청하라고 해서 1달을 신청하게 되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와이프는 사무실에서 처음 유연근무를 사용하게 되었고 유연근무의 좋은 점을 알리게 된 것이다.

우리 둘은 오후 5시가 되면 각자 사무실에서 나와서 매일 병원으로 향했다. 사무실과 집이 모두 세종에 있고 병원은 대전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로 1시간 거리로 출근 전에 병원에 잠깐 들를 수도 없고 해서 오후 시간대에 보다 많은 시간을 아들과 함께 보낼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해서 병원으로 가야 했다.

특히 병원가는 길목인 유성근처 길은 퇴근차량이 몰려 유난히 막히기 때문에 1시간 일찍가는 것이 시간 확보에 무척 유리하다. 유연근무로 인해 확보한 1시간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병원에서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6월 18일 토요일 오후 병원에서

병원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오후 4시의 햇빛은 무척이나 나를 후덥지근하게 했다. 9층의 이 병실에는 할머니와 그를 간호하는 아들이 있고 아들은 침대에서 누워 핸드폰으로 지나간 TV프로를 누워서 보고 있다. 

조금 전 젊디 젊은 의사가 파란색 의사복을 입고 하얀색 옷을 입은 간호사와 함께 와서 아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갔다. 젊은 의사는 익숙한 행동으로 와서는 기브스 한 왼쪽 다리의 붕대를 풀더니 미리 낸 구멍으로 꼬맨 상처를 소독했다. 보호자인 나는 옆에서 다리를 들어주고 하면서 가볍게 보조하며 상처가 어떤지 살펴본다. 보는 마음으로도 진심으로 상처를 꿰맨 자리가 아파 보인다. 
 
다리를 치료한 후, 수술한 목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아들을 누워있는 채로 왼쪽으로 돌려 세웠다. 얼마 전까지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제법 혼자 몸을 옆으로 젖힐 수 있나 보다. 의사는 목의 보조대를 풀고 상처를 소독했다.

이제는 보호자인 나도 의사에게 “어떠세요?”하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의사도 상태가 어떻다던가 나아진다던가 하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소독을 할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상처를 보면 안다. 대충 어느 정도인지를...

오늘 오전에는 소변 줄을 뺐다고 한다. 교통사고 후 이곳 병원으로 실려온 이후 수술하고 내내 끼고 있던 소변줄을 지난 일요일에 뺀 이후 스스로 오줌을 눌 수 가 없어서 다시 소변 줄을 찼고 오늘 아침 소변 줄을 다시 뺐다.

혼자 대소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오늘 아침 소변줄을 빼고 오후 1시경까지 혼자 오줌을 누려고 부던히도 노력했으나 오줌을 누지 못하고 배만 빵빵한 고통을 참다가 할 수 없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강제로 소변을 봐야 했다. 오후 1시경 오줌을 강제로 배출한 이후 약 5시간이 흘렀다. 저녁식사가 나왔으나 오줌을 해결하고 먹겠다고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고통을 참으며.

6월 19일 오줌 쌌어요!

‘지금 오줌 쌌어요.ㅎㅎ’ 새벽 5시 19분에 와이프한테서 카톡이 왔다. 오늘이 일요일이었으나 아침 일찍 서울로 출장을 가야했던 나는 카톡을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카톡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혼자 싼거야?
예. 200정도 봤어요.
정말? 다행이다. 잘 됐네.

오줌을 스스로 혼자 힘으로 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어제 아침 병원에서 오줌줄을 빼고 그렇게 힘들어 하며 못 누다 오늘 새벽에 혼자 오줌을 누었단다. 처음 200CC. 그리 많은 양은 아니나 이제는 됐다 하는 생각으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점심때 전화해보니 3번 정도 소변을 스스로 보고 3번째는 양도 제법 됐다고 한다. 이제는 대변을 약 없이 보고 침대가 아닌 화장실로 가서 대소변을 보는 날을 기다린다. 그래도 걱정은 덜 된다. 대소변만 해결되면 수술한 다리는 시간이 지나면 붙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7월 6일 그냥 서 있기

아들이 화장실을 가려면 나와 와이프는 아들을 휄체어에 태우고 2층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본다. 저녁에 사람이 없어서 한가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보거나 하는 것은 나와 와이프가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대소변을 본다. 그게 편안한가 보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유연근무로 번 1시간을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나와 와이프는 계속해서 1시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일찍퇴근하는 유연근무제 근무로 5시에 퇴근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비알티를 타고 반석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탄 다음 정부대전청사역에서 내려서 병원으로 간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하면 아들은 이미 병원에서 나오는 저녁을 먹은 후이다.

오늘은 아들을 휄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했다. 보통 병원 주변으로도 산책을 하나 요즘은 장마로 계속 비가 내리고 있어 주로 1층에서 돌아다니거나 1층 커피숍을 들어가거나 지하 1층을 돌거나 한다. 어느 정도 돌다가 휄체어 이용자가 사용하기 편한 2층의 넓직한 화장실에 들어간다. 나와 와이프가 아들을 도와서 휄체어에서 화장실 변기에 옮겨 앉힌다.

침대에 누워서는 소변도 그렇지만 대변은 영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처 처음 몇번만 관장이나 약을 넣고 변을 봤으나 지금은 이렇게 화장실에서 힘들게 앉아서 변을 본다. 지금은 2일 또는 3일 정도에 변을 본다. 그래도 이 정도로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는 게 천만다행이다. 지금은 그냥 서 있기도 어렵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혼자서도 서 있고 그리고 조금씩 걸을 것이리라.

8월 23일

아들이 아직도 병원에 있다. 그러나 매주, 아니 매일매일 조금씩 아들은 몸이 좋아진다. 아들이 병원에 있음에도 가족이 지치지 않고 웃음을 유지한 채 병원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몸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휄체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비록 아직도 목발을 의지하고 걷고 있지만 이제 좀 더 연습하고 시간이 지나면 목발 없이도 걷게 될 것이다.

9월 23일, 사고 4달 후

이제 아들은 목발없이도 어느정도 걸을 정도로 몸이 나아졌다. 한달전 집과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하고 있고 다음주면 지금의 병원도 퇴원해 통원치료를 하려고 한다.

아들이 많이 아픈 병원 생활 초반에 1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유연근무는 나와 와이프 그리고 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1시간이 매일매일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고 그 같이 있는 시간 속에서 힘든 병원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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