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로 몰려가는 농업법인들
설립 땐 법인세ㆍ등록세 면제
토지매매시 취득세 전액감면 악용
오피스텔ㆍ리조트 등 편법 운영
부당 사업 1880개소 해산키로
실제 운영되는 곳 47%에 불과
절반 이상이 휴업 등 유령법인
충남 서산의 A농업회사법인은 지난해 7월 논 1,129㎡를 1억3,500만원에 사들인 뒤,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았다. 하지만 증명서 발급 후 곧장 3억원에 팔아 1억6,500만원의 차익을 거뒀다. 이후로도 7월 한 달 간 5차례 농지매매를 통해 4억8,100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전북 부안군의 B농업회사법인도 작년 7월부터 6개월 간 농업경영 목적으로 3개 필지(2,166㎡)를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00일 가량 보유하다가 매도해 6,600만원의 매매차익을 거뒀다. 이들은 법인설립 당시 법인세, 등록면허세를 면제받은 데 이어 농업법인이라는 이유로 토지 매매 시 취득세도 전액 감면 받았다.
경쟁력 있는 농업경영체 육성을 위해 도입된 농업법인제도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부동산 투기에 악용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등록된 농업법인의 절반 이상이 실체가 없는 유령법인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월부터 5개월간 ‘2016년 농업법인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전국 농업법인 5만2,293개소 중 실제 운영이 되고 있는 곳은 2만4,825개소로 전체의 47.4%에 그쳤다고 밝혔다.
운영 준비, 임시휴업, 휴업, 폐업 등으로 운영되지 않는 곳이 35%(1만8,235개소)였고, 어디에 있는 지 소재 파악조차 불가능한 곳도 17.3%(9,097개소)에 달했다.
농업법인제도는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에 기반해 1990년 도입됐다. 정부는 법인설립 활성화를 위해, 영농조합법인은 인원 요건(농업인 5인 이상), 농업회사법인은 출자비율 요건(농업인 출자비율 10% 이상)만 충족하면 법인설립을 허용하고, 각종 세제혜택과 함께 보조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허술한 관리감독 탓에 설립요건을 충족하지 않거나 사업 범위를 위반한 채 정부 지원만 받고 있는 농업법인이 난립해 있는 상태다. 특히 법인설립 2년 이내에 영농을 위해 취득한 부동산은 취득세가 면제되고, 농업인이 법인에 농지, 초지 출자 시 양도소득세 등이 면제되는 점을 악용한 부동산 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감사원이 2013년 1월부터 작년 7월까지 농지매수 건수가 25건 이상인 농업법인 중 매도건수 상위 20개 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농업경영 목적으로 매수한 776개 필지(141만6,470㎡) 중 767개 필지(104만9,292㎡)를 다시 팔았다. 농업법인이 법에서 정한 사업범위를 벗어나 오피스텔 임대업을 하거나 골프연습장, 리조트 등을 운영하는 경우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그간 이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건, 실태조사를 통해 위법사항이 적발된다 해도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작년 7월 관련법을 개정해 과태료 부과 근거를 마련하고, 목적 외 사업을 영위한 경우에는 해산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실태조사에서 조사대상의 10%에 해당하는 5,288개소가 설립요건 미충족으로 시정명령을 받았고, 목적 외 사업을 영위한 법인 1,880개소가 해산명령청구를 받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앞으로 이런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감시ㆍ감독을 대폭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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