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주택시장④]경기침체 vs 거품후유증..딜레마 빠진 국토부
(세종=뉴스1) 김희준 기자,진희정 기자 = 국토교통부가 과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서울 강남권 주택시장에 규제책을 두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호가로 거품이 낀 시장을 우려하면서도 자칫 경기침체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진 까닭이다.
여기에 주택 물량을 조절해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8·25대책의 의도 자체가 폐착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장 침체우려에 적극개입 망설이는 국토부 앞서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위험(risk)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투자 목적의 과도한 수요 등에 의한 과열현상이 이어질 경우 단계적·선별적 시장 안정시책을 강구해나갈 방침"이라며 "지역별 주택시장의 차별화가 뚜렷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각 지역의 시장 상황에 대한 맞춤형 처방이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강남권의 투기과열지구 지정, 분양권 전매제한 등 언론을 통해 다양한 규제방안 등이 언급됐지만 국토부는 그때마다 당장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했다. 기획재정부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하며 시장 개입에 미적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급과잉 리스크 속 지방 주택시장 타격 우려도 정부의 이같은 신중론은 부동산 규제가 공급과잉 리스크와 겹칠 경우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과 2018년 전국의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임대 포함)을 각각 37만3360가구, 39만5913가구로 추산된다. 2012~2016년 5년간 연평균 입주 물량(23만8225가구)을 10만가구 이상 웃도는 규모다. 당장 내년부터 공급과잉에 따른 집값 하락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 시점에서 강력한 시장규제는 이같은 리스크를 더욱 키우게 되는 셈이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이에 대해 "지금 상황을 보면 과도한 분양공급으로 (수년 뒤)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면밀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강호인 장관의 시장규제 발언은 당장 대책을 내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투기과열조짐이 선을 넘으면 개입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내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의 투기과열을 잡기 위해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이는 지방 주택시장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부담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9월까지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전년동기대비 0.33%에 그쳤다. 이는 상승세를 보인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에 비해 지방의 집값이 0.48%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규제책을 내놓을 경우 강남권보다 지방의 매매수요 타격이 더욱 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美 기준금리 인상 앞둔 시점, 시장규제 적기 아니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기엔 시기를 이미 놓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주택시장이 고점을 찍으면서 현재 조정기를 앞두고 있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책까지 나오면 내년 주택공급과잉과 맞물리면서 시장의 침체가 명약관화하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 114센터장은 "연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시되고 있다"며 "현재 주택시장은 저금리 기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면 유동성 장세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미 기준금리 인상의 부담을 견디기 위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금융권 금리가 올라가 대출부담이 큰 서민들을 중심으로 '하우스푸어'우려가 재현될 수 있다.
그만큼 주택시장도 냉각되기 때문에 결국 현 시점에서 정부의 규제책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건설경기에 기댄 경제성장률도 규제신중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건설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작년 1분기 0.1%포인트에서 올해 1분기 1.2%포인트, 2분기 1.7%포인트로 확대되고 있다.
올해 전년동기대비 2분기 국내 경제 성장률 3.3%의 절반 이상을 건설투자가 떠받치고 있는 양상이다. 수출과 내수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건설경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주택시장의 활황은 버릴 수 없는 카드다.
관세청에 따르면 월별 수출액은 작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역대 최장인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다가 8월 2.6% 증가로 반전했다. 그러나 갤럭시7 문제가 불거지면서 9월에 다시 -5.9%로 곤두박질쳤다. 9월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량도 1년 전보다 10.9% 감소했다. 현대차 파업에다 개소세 인하조치가 끝난 직후인 7월부터 3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토부가 시장규제에 신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 당정협의를 통해 경제정책을 조율해야하는 정부 입장에선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경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택규제책을 내야한다는 부담도 상존한다.
◇ 강남권 투기과열, 주택시장 거품 가능성 여전 이같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거품양상을 보이고 있는 주택시장을 마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 국토부의 가장 큰 딜레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값은 이미 3.3㎡당 1877만원(10월7일 기준)으로 전 고점인 2010년 3월 1848만원을 넘어섰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서초, 마포 등 14곳의 집값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탔다.
특히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재건축 아파트값은 이달 현재 3.3㎡당 평균 4000만원을 넘어섰고 개포지구 등은 3.3㎡당 8000만원을 웃도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선 강남권의 투기열풍이 전체 주택시장 전반의 과열을 부추길 우려도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국토부가 주택시장 규제에 나선다면 강남권 등 과열지역을 중심으로 한 선별적 규제가 가장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정책실장은 "부동산 투기계층을 타깃으로 한 30개월 이상 재당첨 금지 등의 제도는 현시점에서 유용하다"며 "이 경우 미국의 금리인상 리스크와도 겹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 주택과 건설시장에 치우친 경제성장률은 경기에 따른 리스크가 큰 만큼 구조조정 차원에서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가계부채 대책을 위해 에둘러 주택시장을 조율한 8·25대책 자체의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가계부채가 목적이였다면 보금자리론이나 중도금 대출 규제를 먼저 실시하고 부동산 물량을 조절했거나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강화 등의 강력한 정책을 펼쳤다면 국토부가 지금과 같은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h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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