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주택시장①]"돈되는 곳만 몰린다"..수도권-지방 디커플링 심화
(서울=뉴스1) 오경묵 기자 = 분양보증 한도 제한과 주택 공급 조절을 골자로 한 8·25 가계부채 관리대책 발표 이후 채 두 달이 되지 않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기로에 섰다.
특히 지역별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권이 오르면 따라 상승하던 예전과 달리 입지와 주택 노후도에 따라 파편화되는 상황이다. 분양시장도 서울·수도권 신도시·세종·부산과 다른 지역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전매제한 대책 없으니"…서울·수도권 등 청약시장 광풍 정부가 지난 8월 25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대책'의 핵심은 분양보증 한도 제한과 주택공급량 조절이다. 아파트 중도금 대출에 대한 보증기관의 보증한도를 기존 100%에서 90%로 줄이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통한 택지공급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과열된 분양시장을 식히기 위해 중도금 대출 강화를 내세웠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택지 공급이 줄어 전체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 수요자들이 대거 움직인 것이다.
중도금 대출제한 직후 분양에 나섰던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3단지 재건축)는 평균 100대 1, 최고 138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대출보증으로 인해 분양가가 예상보다 낮아지자 웃돈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더 몰렸다.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이달 분양한 '고덕 그라시움'에는 1600여가구 분양에 총 3만6017개의 청약통장이 접수됐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5차를 재건축하는 아크로리버뷰는 평균 306대 1로 1순위에서 마감됐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만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마포 한강 아이파크(55.9대 1)·신촌숲 아이파크(74.8대 1)·래미안 퍼스트 장위(16.3대 1)도 무난히 1순위 마감에 성공했다. 다산·동탄 등 수도권 신도시에도 청약자들이 몰렸다.
지방에서는 부산과 세종시 분양시장만 강세였다. 지난달 부산에서 선보인 명륜 자이에는 18만1152명이 청약을 접수했다. 평균 경쟁률은 무려 523.6대 1에 달한다. 지방 민간택지는 전매제한이 없어 당첨만 되면 곧바로 분양권을 팔 수 있다. 청약통장을 사용하더라도 재가입 후 6개월이면 1순위 자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세종시 역시 평균 300대 1이 넘는 단지(세종 리슈빌수자인)가 나왔다. 세종시는 올 7월부터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청약을 할 수 있게 됐다.
분양시장을 조이기 위해 중도금 대출 제한을 꺼내들었지만 전매제한 대책이 없어 정부의 예측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장이 흘러갔다. 분양시장이 과열됐다는 시그널이 나오자 국토부는 불법 전매거래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겠다고 했으나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실수요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기는 했지만 저금리로 인해 투자수요가 쏠려 청약통장을 우선 '던지고' 보는 기조가 형성돼있다"며 "필요에 의해 청약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청약을 하는 이들이 적잖은 걸 보면 어느 정도는 과열된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강남 재건축 시장 과열이 기존 주택 시장으로 전이 확산 분양시장의 열기는 고스란히 기존주택 시장으로 퍼졌다. 주된 상승세는 상승세는 재건축 사업이 임박한 개포주공1단지와 잠실주공5단지 등이 이끌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도 지구단위계획 발표와 분양시장 호황에 힘입어 투자자들이 몰리며 상승기류를 탔다. 완만한 상승폭을 보이던 재건축단지들은 강남권 재건축 분양시장이 팽창을 시작한 8월 이후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다.
지난 8월 말을 기준으로 3.3㎡당 4035만원이었던 잠실주공 5단지는 이달 들어 4521만원까지 뛰었다. 103㎡ 주택형을 기준으로 하면 불과 두 달새에 1억5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압구정 구현대5차도 7월 4847만원에서 이달 5276만원으로 올랐다. 개포주공1단지도 같은기간 7873만원에서 8441만원으로 상승했다.
강남권 재건축발(發) 훈풍은 타 자치구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5개 자치구 중 14개 자치구가 전고점을 돌파했다. 2013년 1월 3.3㎡당 2500만원대였던 서초구는 이달 들어 3.3㎡당 3217만원까지 올랐다. 재건축 분양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래미안 퍼스티지·반포 자이 등 기존 대형 단지의 가격을 끌어올린데다 아크로리버파크 등 신규 입주 아파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마포구·성동구 등도 전고점을 돌파했는데 모두 재건축 사업이 활발한 곳이다. 강남구(3.3㎡당 3505만원)는 전고점(2007년 1월·3.3㎡당 3550만원)을 돌파하지는 못했지만 근접한 상태다. 양천구 역시 고점을 아래에 있지만 목동아파트단지가 있는 목동 지역만 놓고보면 상승세가 뚜렷하다.
반면 재건축·리모델링 이슈가 없는 지역은 가격이 정체된 상황이다. 1기신도시인 분당·평촌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들은 고점 대비 10~20% 가량 가격이 빠졌다. 아파트가 노후화된데다 재건축·리모델링 등 집값을 끌어올릴만한 요인이 없어서다. 판교·광교·다산·동탄 등 2기 신도시가 대안으로 작용한 영향도 있다.
한 전문가는 "분당·평촌·일산 등 1기 신도시는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대체재'가 많았다"며 "최근 시장 상황이 재건축 호재가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들 지역도 재건축이 본격화되는 순간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역 부동산 시장은 냉랭…청약제로 단지도 부산과 세종을 제외한 지방 부동산 시장은 냉랭하다. 지난달 지방에서 분양한 아파트 단지 14곳 중 9곳이 순위내 청약 마감에 실패하고 미달됐다. 금천 렉시움(48가구 모집·1명 청약)·진천 양우내안에 해오르미(270가구 모집·1명 청약)·삼척 도계 새롬아파트(60가구 모집·1명 청약)·보은 신한 헤센(492가구 모집·5명 청약) 등은 청약자 수가 한자리에 그쳤다.
청약자가 아예 없는 '청약 제로(0)' 단지도 있었다. 경기 여주시에서 분양한 우찬셀레스는 69가구 모집에 1명도 청약하지 않는 수모를 당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수도권은 분양만 하면 최소 평균 이상은 할 수 있다"며 "지방은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있어 분양 시기를 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청약 성적이 좋지 않으니 미분양 아파트도 늘어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6만2562가구다. 지난해 8월(3만1698가구)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늘었다. 상승분의 대부분은 지방(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몫이다.
지난해 8월 1만3550가구에 불과했던 지방 미분양은 올 8월 3만5745가구로 늘었다. 경남이 2606가구에서 9369가구로 3.6배 늘었다. 충남(5596가구)·경북(4017가구)·충북(2839가구)도 미분양이 크게 늘었다. 충북과 경북도 3배 이상 증가한 것이고 충남과 전북은 2배 이상 늘었다.
기존 주택의 거래도 크게 줄었다. 올 들어 지방 주택 매매거래는 34만57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2% 감소했고, 최근 5년간 평균치에 비해서도 10.1%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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