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숲 속 반찬가게.. "엄마손맛에 情 얹어 팔아요"
1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내정로 금호시장 지하 먹거리 코너에서 상인들이 반찬을 비롯한 각종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1992년 분당신도시 조성과 함께 문을 연 금호시장은 166개 점포로 구성돼 반찬을 비롯해 분식 과일 채소 등 다양한 식품과 공산품을 갖추고 있다. 성남=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 “‘시장표 손맛’ 자신 있어요”
박진식 금호시장 상인회장(50)은 “시장이 형성된 지 20여 년이 흐르면서 2대, 3대째 점포를 꾸리거나 시장에서 일군 성공 덕택에 자녀를 모두 대학 교육까지 마치고 시집 장가 보낸 상인도 많다. 분당에서 가장 역사가 긴 시장이라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24년 전 “김밥 하나는 자신 있다”는 생각을 갖고 금호시장 지하 1층에 ‘금호김밥’을 열었던 양영옥 씨(62·여). 개업 당시 학생이던 1남 1녀가 모두 어엿한 공무원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금호시장과 마주한 분당고등학교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 때 먹을 간식 김밥을 마는 양 씨는 “손님 앞에서 정성 들여 김밥을 한 줄 한 줄 말았던 게 오늘까지 왔다”며 웃었다.
2014년부터 돌고래시장 상인회를 이끌고 있는 박영신 회장(53·여)은 “예전 동네 곳곳마다 있었던 기름집, 방앗간 등의 추억을 갖고 아파트에 입주한 분당신도시 첫 세대에게 돌고래시장을 비롯한 전통시장은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 위기감…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1990년대 시장은 호황이었다. 금호시장 지하 1층에 반찬을 사러 온 주부들, 지상 1층에서 필요한 공산품을 산 뒤 2층 식당가에서 외식을 즐기는 가족 단위 손님이 날마다 넘쳤다. 박진식 회장은 “‘분당에서 없는 물건이 없는 곳’이라는 입소문에 주차장은 항상 만차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잇달아 분당에 자리를 잡으며 손님들의 발걸음은 줄었다. ‘곧 나아지겠지’ 하며 손님을 기다렸지만 1990년대 초반 건설돼 노후한 시장보다 깨끗하고 세련된 환경에서 쇼핑을 즐기려는 소비자의 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상인들도 떠나갔다. 금호시장은 지난해 초 1층 98개 매장 중 11개가 빈 것이 결정적이었다. 돌고래시장도 한정된 공간에 상인들이 물건을 쌓으며 비좁아진 통로, 기준 없이 어지럽게 설치된 된 간판을 보며 떠난 손님을 붙잡기 위해 상인들이 머리를 맞댔다. 두 시장은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결론을 내고 골목형 시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 조금씩 시작하는 변화 “기대해 주세요”
시장은 희망을 꿈꾼다. 품질과 쾌적한 쇼핑환경은 물론이고 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웃의 정’을 선물할 계획이다. 금호시장이 이달 초 진행한 ‘금호행복나래가요제’와 돌고래시장이 이달 초까지 5차례 꾸린 ‘안녕 돌고래 영화제’는 상인과 손님이 거래관계가 아닌 ‘이웃’으로 하나 되는 계기가 됐다.
환경 정비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두 시장은 최근 시장을 상징하는 새 로고를 상인과 시민 투표로 확정했다. 이를 기본 방향으로 간판, 안내시설물 등을 정비해 마트 부럽지 않은 쾌적한 쇼핑 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금호시장과 돌고래시장이 최근 시장 주차장 진입로 환경을 개선해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만든 것도 계획의 일환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두 시장에서만 맛보고 구입할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을 제공하고 젊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
금호시장 지하 먹을거리 매장에 6개월 전 자리를 잡은 ‘돈가스브라더스’는 이곳의 ‘청년점포 1호점’이다.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던 조성일 씨(39)와 여경현 씨(30)가 “우리만의 점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금호시장을 찾아 지금은 줄서지 않으면 먹기 힘든 맛집을 일궜다. 즉석 캔 포장 젓갈로 유명한 김혜영 씨(54·여)도 독자 캐릭터를 개발하고 포장용기를 직접 만들어 손맛 가득한 젓갈을 전국 각지로 보낸다. 김 씨는 “전통시장이라고 안 되는 건 없다. 시장에서만 맛보고 즐길 수 있었던 걸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남=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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