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경제] 저금리의 역습..'부동산' 경고음
경제의 거품이 쌓이고 붕괴되는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망각한다. 그리고 또 욕망에 사로잡혀 같은 오류를 수없이 반복한다.
요즘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은 합리적일 것 같은 인간의 경제적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하게 이뤄지는지, 어리석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최근 수도권의 웬만한 분양시장에는 최소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사람들로 넘쳐난다. 당첨되면 억대의 프리미엄(시세차익)이 예사로 오간다. 부동산 열풍을 넘어 광풍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 반복되는 10년 주기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와 많이 닮아있다. 참여정부 5년간 집값은 무려 63.6%가 뛰었다. 미친 듯 오르는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는 세법과 부동산 관련법을 고쳐가며 온갖 대책을 쏟아냈지만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당시 집값 급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에 위기를 느낀 노 대통령은 집값이 다시는 폭등하는 일이 없도록 “대못을 박겠다”며 정부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정책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사이 시장은 정부대책을 비웃으며 임기 말까지 결코 급등세가 꺾이지 않았다.
집값 급등의 원인은 공급부족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집값이 급락하자 이후 수년간 주택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급등도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주택은 수요공급의 탄력성이 약하다. 즉 집을 지어 공급하는 데는 적어도 2~3년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요 변화에 공급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잉공급과 공급부족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여기에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인 ‘선 분양 후 입주’ 제도도 과도한 수급불균형을 초래하는 데 일조한다.
참여정부 때 부동산가격은 급등했지만 그 덕분에 분양물량도 크게 늘어나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입주물량이 쏟아졌다. 공급부족에서 공급초과로 시장상황이 역전됐다. 반면 참여정부 때 만든 각종 부동산규제로 수요는 오히려 억제되자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고 집값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전망도 순식간에 변했다. 참여정부 말기에 버블세븐(강남, 목동 등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수도권 7개 지역) 지역은 평당 3천만원을 넘길 것이란 낙관적 전망이 팽배했지만 불과 1~2년 새 “앞으로 집값의 대세 상승은 다시는 없을 것”이란 비관으로 바뀌었다.
집값이 급등할 때 거품이 끼는 것처럼 집값이 떨어질 때도 똑 같이 시장의 심리는 과도하게 반응한다. 2007년을 정점으로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주택경기는 동면 상태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집값 하락이 문제가 되자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경기 회복을 위해 다시 규제를 풀었다. 그러나 공급물량이 쏟아지는데다 집값은 계속 떨어졌고, 집을 사면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정부는 경기부양 차원에서도 부동산 심리를 되살리고자 노력했지만 한번 얼어붙은 심리를 다시 녹이기는 쉽지 않았다. 분양을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 주택공급은 급격히 감소했다.
◇ 저금리의 역습
지난해 대구, 부산 등 지역에서 시작돼 서울로 상륙한 부동산 열풍은 세 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지난 수년간 공급부족에 따른 수급불균형에다 사상 최저로 떨어진 금리,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집값이 10년만에 동면에서 깨어나 다시 상승 국면으로 진입하자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과열로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부동산시장에 보여주는 소비자들의 행태는 합리적 판단을 상실한 것으로 거품경제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정부는 부동산 과열을 식히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은 애써 외면한다. 집값이 계속 더 오를 것으로 확신하면서 낙관적 전망 외에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최근엔 가계부채 억제 대책으로 각종 주택대출상품의 총액을 줄이겠다고 하자 서민들의 내집 마련 기회를 박탈한다고 아우성이다. 집값이 오를 것이란 시장의 확신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거품, 즉 시장의 실패가 쌓이고 있다.
그러나 내년 말부터 공급과잉 현상을 빚게 될 것이란 점은 예견되고 있다. 주택경기 호조에 힘입어 올 상반기에만 주택 착공건수가 29만9천여건이다. 공급과잉 논란을 빚었던 지난해 상반기(28만9천건)보다도 만 여건이나 많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착공건수가 70만 가구를 초과할 것으로 분석된다. 2011년 42만4천건, 2012년 48만건, 2013년 42만9천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은 물량이다. 반면 멸실주택과 가구 수 증가 등을 고려한 추가 주택 수요는 매년 20만 가구 안팎에 불과하다.
착공에서 입주까지 2~3년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말 이후 과잉공급에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1970년부터 10년 주기로 집값 급등과 침체가 반복된다는 ‘부동산 10년 주기설’의 패턴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거품이 심해질수록 붕괴 시의 고통도 크다. 여윳돈을 충분히 가진 사람은 문제가 없겠지만 집값 상승에 불안감을 느껴, 또는 차익을 노리고 무리하게 주택구입에 나서는 사람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 예정된 수순
분명한 건 지금의 부동산 열풍의 근저에는 초저금리가 자리 잡고 있다. 저금리로 전세값이 오르니 주택매입으로 전환하는 가구가 늘어나고, 구입수요가 많아지니까 집값은 또 오르고 있다. 여기에 저금리를 이용한 투기세력도 가세하고 있다. 어쩌면 은행 융자 등을 무리하게 해서 집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결정에는 투기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늘어난 유동성은 먼저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가 자산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자산가치가 상승하면 소비가 늘어나고 이것이 투자를 촉진하게 되면 실물 경기가 좋아지게 되는 데 이것이 이른바 ‘부의 효과’이다. 물론 최근 통화정책이 직면한 딜레마는 돈이 자산시장에서만 맴돌 뿐 실물경기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진작 효과보다는 가계부채 급증과 자산시장 거품의 부작용이 더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항상 그렇듯 거품은 지속될 수 없으며 어느 순간 고통을 수반하면서 꺼지게 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과열, 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가계부채 급증은 이른바 저금리에 따른 부작용이고, 이로 인해 누적된 거품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머지않아 반드시 꺼질 수밖에 없다.
우선 내년부터 분양된 아파트의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집값과 전세값은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지난 수년간 분양된 물량을 감안하면 그것이 일시적이던, 상당한 기간에 걸쳐지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이 경우 큰 폭의 가격 하락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더구나 급증한 가계부채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도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또한 지금의 초저금리가 언제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12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시차는 있겠지만 우리나라도 금리인상 압박을 받게 된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아니더라도 가계부채 급증 등 저금리 부작용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을 억제하는 정책이 강화될 개연성이 크다.
공급확대에 자금유입까지 억제된다면 주택가격의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다.
더 근본적으로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동성만으로 결코 거품이 지탱될 수는 없다. 우리경제가 부진에서 벗어나 빠른 회복세를 탄다면 그나마 충격이 완화되겠지만 세계적으로 장기 저성장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경기는 싸이클을 그린다. 이유는 경제주체들이 시장을 매개로 내리는 결정이 항상 합리적인 것이 아니어서 과열과 급랭을 오가며 거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시장의 실패가 있는 것이다. 재정과 통화를 통해 이뤄지는 거시정책도 이 같은 시장 실패의 최소화, 즉 경기 사이클의 진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10년 주기로 큰 진폭을 그리며 반복되는 부동산 시장의 경기 흐름은 끝없는 탐욕과 무지로 인해 내리게 되는 인간의 한계 때문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과연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경기가 사이클을 그린다는 것은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는 것인데 같은 우를 또 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CBS노컷뉴스 감일근 기자] stephan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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