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부동산 전망] 아파트 잔금 못내는 사람들

김노향 기자 2016. 10. 1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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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규제 도미노에 ‘미입주사태’ 재현 우려


2008년 10월 준공을 마치고 새 주민의 입주를 기다리던 한 대단지아파트. 단지 곳곳에 시행사와 시공사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달 전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확산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길이 한국 땅에도 뻗쳤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이 폭락하자 2~3년 전 아파트를 고가에 분양받은 투자자들이 잔금 납부를 거부하거나 대출을 거절당해 대규모 ‘미입주사태’가 일어난 것. 요즘 부동산시장에서는 9년 전의 아파트 미입주사태가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의 미분양아파트를 홍보하는 현수막. /사진=머니투데이 DB

◆미분양보다 무서운 미입주

미입주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기존 분양자들이 아파트값 하락에 반발해 입주를 거부하는 경우다. 분양 이후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분양회사들이 남은 집을 싸게 내놓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기존 분양자와 아파트값이 떨어진 후 미분양분을 매수한 계약자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다.

두번째는 은행에서 담보가치를 낮게 평가해 대출한도를 줄이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계약자는 분양 당시 1차 계약금과 중간에 2차 중도금, 입주 전 3차 잔금을 지불하거나 2~3차를 한꺼번에 낸다. 그런데 그 사이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잔금 납부를 위한 대출에 차질이 빚어진다. 계약서상 아파트값이 3억원이라도 은행이 담보가치를 2억원으로 감정하면 대출한도가 떨어진다. 부족한 돈을 따로 마련하지 못하면 사실상 대출을 거절당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아파트 잔금을 치르지 못한 채 입주해 사는 경우도 있지만 2008년 당시 서울 강남의 재건축시장에서는 추가분담금을 못 낸 조합원 매물이 쌓이거나 일대 부동산에서 ‘급전세’ 또는 ‘급매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내년 아파트 입주물량은 최근 19년 만에 가장 많을 전망이다. 부동산114는 올해 입주물량이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합해 32만1886가구, 내년엔 41만5586가구라고 예상했다. 내후년엔 43만2672가구다.

2017~2018년 아파트의 입주물량 합계는 76만1012가구로 예상된다. 2007~2008년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면서 건설사들이 신규분양을 앞당겨 인허가가 급증했는데 당시 입주물량이 63만4224가구였다. 2017~2018년은 이때보다 12만6788가구(19.9%) 더 많다. 윤지해 부동산114 연구원은 “내년에는 공급과잉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사전 대응과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경우 동탄2신도시, 위례신도시, 미사강변도시, 시흥 배곧신도시 등지에 10만249가구의 입주가 예정됐다. 지역별로는 ▲경남 3만4544가구 ▲서울 2만6178가구 ▲충남 2만3301가구 ▲경북 2만1831가구 ▲대구 1만8622가구 ▲인천 1만7252가구 ▲부산 1만7118가구 순이다. 부동산시장 관계자는 “미분양은 집값 하락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건설사의 손해가 더 큰 반면 미입주사태는 시장에 즉시 충격을 줄 수 있는 요인”이라며 “미입주사태가 벌어지면 매물이 쏟아지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 중인데 실제 금리가 인상되면 집주인들이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한꺼번에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 아파트. /사진=머니투데이 DB

◆주택담보대출, 금융시장 위험요인

입주 시점에 이르러 많은 계약자가 잔금을 치르지 못하거나 대출을 거절당해 집을 한꺼번에 내놓을 경우 집값 하락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런 부동산 폭락이 가계부채와 국내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대출을 받았더라도 집값이 하락해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은행이 금리를 올리거나 원금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 차주가 이자를 연체하거나 원금상환을 못하면 은행이 집을 강제처분하는 것도 가능하다.

금융위기가 지난 후인 2012년에는 집값 시세가 분양가보다 떨어졌다는 이유로 아파트 주민들이 대출이자 납부를 거부하거나 집단소송을 제기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때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연체율은 1.56%를 기록했고 일부는 5%를 넘는 곳도 있었다.

2012년 4월 금융감독원의 ‘집단대출 관련 분쟁현황’을 보면 중도금대출 분쟁이 진행 중인 아파트단지의 대출금액은 2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분양자들은 소송 등을 통해 공사부실과 과장광고를 빌미로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그러나 건설사 입장에서는 자금회수 압박 탓에 계약을 해지하기가 어려웠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가계부채 문제는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과 연관이 있다”며 “부동산시장이 휘청이면 연체율 상승의 원인이 되고 채무불이행자 양산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집단대출이 이뤄진 아파트단지 가운데 분양가가 주변 시세 대비 30% 이상 높은 곳이 58.7%라고 밝혔다. 이런 고분양가 아파트의 상당수는 미분양 상태라 집값이 하락할수록 집단분쟁이나 대량연체를 추가로 발생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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