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大공제회 7000억 적자.. 군인공제회, 3700억 투자한 땅이 공원 터로
국내 6개 주요 공제회가 관리 부실과 자산운용 실패로 최근 3년간 약 7000억원에 달하는 누적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공제회들의 총자산은 50조원, 회원 수는 전국 135만명에 달한다.
본지가 2013~2015년 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 행정공제회 등 6개 공제회의 경영 공시를 분석한 결과, 3년간 적자액이 총 6982억원에 달했다. 특히 군인공제회와 행정공제회의 경우, 적자액이 각각 2000억원이 넘었다. 지난해엔 교직원공제회(1085억원)를 제외한 5개 공제회가 모두 손실을 봤고, 이 5개 공제회의 작년 합계 손실만 3524억원이었다.
6개 공제회의 지난해 자산운용 수익률은 평균 3.8%로 집계됐다. 1년 만기 은행 정기예금 금리(약 1.4%)보다 높지만,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4.6%)에 못 미쳤다. 군인공제회처럼 수익률이 1%대까지 떨어진 곳도 있었다.
각 공제회는 국내외 부동산 경기 호조 덕에 대체투자(주식·채권 이외의 자산에 대한 투자)에서 수익률을 끌어올렸지만, 회원들에게 4%가 넘는 퇴직급여 지급률을 약속하면서 적자 폭이 커졌다. 수입보다 지출이 커 거의 매년 적자에 허덕이는 구조다.
공제회 운용 부실은 회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공제회의 경우, 자금 운용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을 때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부실을 메워주도록 돼 있다. 운용 부실이 전 국민의 혈세 부담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체 투자로 쌓아올린 수익률… '쓰러질 듯 위태로운 탑'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엔 군인공제회가 "2만5000여평 부지 위에 공동주택·오피스텔·상가 복합단지를 개발하겠다"며 2005년에 사들인 땅이 있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통해 총 3791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일대가 공원화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성남시가 사업시행자 지정을 거부해 사업이 '올 스톱'된 것이다. 공터로 남은 이 땅은 현재 임시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군인공제회가 지금까지 회수한 금액은 불과 385억원으로, 결국 공원이 될 부지에 회원 납입금 3406억원을 쏟아부은 셈이 됐다.
군인공제회가 2003년부터 작년까지 부동산 PF 사업 등에 투자해 원금도 못 찾은 사업은 10여건에 이르고, 회수 못 한 금액만 1조6000억원에 달한다. 2008년 이후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침체, 잘못된 투자 계획에 따른 사업 지연 탓이다.
최근 연 1%대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각 공제회는 부동산 등 대체 투자 비중을 크게 높이고 있다. 교직원공제회의 경우, 전체 자산 가운데 대체 투자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26.1%(5조9647억원)에서 올 6월 현재 36.3%(10조972억원)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수익률 5%를 달성하게 해준 대체 투자의 높은 수익률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국내 대체 투자(7%), 해외 대체 투자(8%) 수익률이 국내 주식·채권(4%), 해외 주식(-7.1%)에 비해 훨씬 높다. 이 밖에 행정공제회(46.8%), 경찰공제회(47.6%) 등 다른 공제회도 대체 투자 비중이 전체 투자의 50%에 육박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쏠림 현상'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국내외 부동산 경기 호조 덕분에 지금은 대체 투자로 체면치레를 하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 없이 '묻지 마 몰방 투자'를 하다가 향후 부동산 경기 침체나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큰 화살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조성일 중앙대 교수는 "공제회들이 오랜 기간 해온 부동산 투자에 자신을 갖고 비중을 늘리고 있는데, 부동산 등 대체 투자의 경우 주식·채권 투자에 비해 회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라며 "몇 년씩 거액이 묶이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리스크(위험)를 충분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부랴부랴 낮춘 급여율… "투자 전문성 확보가 관건"
그간 공제회의 큰 부담은 높은 퇴직급여 지급률이었다. 돈은 못 버는데, 회원들에게 은행 정기예금 금리의 약 3배인 4%대 급여율을 약속하면서 재정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올 초만 해도 주요 공제회의 급여율은 4%대였다. 그러다 군인공제회가 올 4월 급여율을 평균 4.0%에서 3.26%로 낮췄고, 7월엔 행정공제회가 연 4.08%에서 3.40%로, 경찰공제회가 연 4.37%에서 3.42%까지 낮췄다. 교직원공제회도 급여율을 4.32%에서 3.60%로 내렸다. 조합원들 눈치를 보느라 시중 금리를 감안하지 않은 급여율을 유지해왔고, 운용 부실로 떠밀리다시피 급여율을 낮추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제회 대책을 보면 늘 한 발씩 늦는 감이 있는데, 조합원들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운용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투자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소통을 활발히 해 조합원 신뢰를 얻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최근엔 뒤늦게나마 CIO(최고투자책임자)로 자산운용 전문 인력을 영입하는 경우가 늘었다. 지난 4일 경찰공제회 첫 민간 출신 CIO가 된 이도윤 전 삼성자산운용 채권본부장, 우리자산운용 운용 총괄 전무 출신인 장동헌 행정공제회 CIO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지적이다. 임원 가운데 금융·투자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이가 드물다. 공제회는 공무원이 취업 제한을 받지 않는 공직유관단체인 데다, 인사권이 관할 부처에 있다. 결국 경찰공제회는 경찰, 소방공제회는 소방, 군인공제회는 군인, 행정공제회는 관료 출신이 사실상 이사장 자리 등을 독식하는 구조다. 만성 적자 속에도 임원진 연봉과 성과급은 높은 인상률을 보이고 있다.
소방공제회의 경우 소방관 퇴직급여율은 2013년 5.1%에서 3.33%까지 낮아졌는데, 이사장 연봉은 연 7.4%씩 올랐다.
이사장 등이 투자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이 공제회 내 자산 운용의 주요 사항을 심의할 자산운용위원회 등을 두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 했지만,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기금 운용역이 외부 위원, 조합원들과 토론하면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제회
같은 이해관계로 모인 사람들이 자금을 내서 운영하는 조합. 기본적으로 회원 납입금을 운용해 퇴직급여 등을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제회는 회원 수가 73만명을 넘는 교직원공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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