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낡은 도쿄 도심 대혁신한 모리 히로오 日 모리빌딩 부사장
지난 13일 제17회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모리 히로오 모리빌딩 부사장을 만났다. 그는 2012년 작고한 모리 미노루 회장의 사위다. 사업을 승계할 때 사위가 장인의 성을 따르는 일본 기업 전통을 따라 모리 가문의 일원이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도 교류해 한국과도 친근하다.
어렸을 때 모리 부사장은 배를 조종하는 선장이 되는 게 꿈이었다. 기차는 정해진 선로를 따라 움직여야 하지만 배는 드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목적지와 항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지난 3월 기준 자산이 20조원(약 1조8200억엔)에 육박하는 모리빌딩이란 거대한 배의 선장이 됐다.
그는 서울의 가장 훌륭한 자산으로 '한강'을 꼽으며 서울과 경기 수도권을 하나로 묶는 일극집중(一極集中) 발전 전략도 제시했다. 또 서울의 지하도시 개발은 도쿄의 벤치마킹 사례가 될 것이라 평가했다. 다음은 모리 부사장과 일문일답.
―모리빌딩의 도시재생사업은 전면 철거형 재개발과 보존이 적절한 비율로 녹아 있는 것 같다.
▷좋은 것은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정리해 새 시대에 어울리는 재개발을 함으로써 도시를 진화시키려는 게 모리의 철학이다. 일본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 옛말 중에 '슈하리(守破離)'가 있는데 도시 개발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역사적인 것을 지키고(守), 더 뛰어난 것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破), 과거와 현재에서 벗어나(離)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2030년까지 도쿄에 마천루 빌딩이 30개동 이상 건설될 예정이다. 공급과잉 염려는 없나.
▷1960~1970년대 재개발한 건물들이 이미 상당히 오래된 만큼 이제 '재재개발(re―redevelopment)'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최첨단 오피스 공간을 원하는 시장 요구가 있다. 건물 스펙뿐 아니라 빌딩의 이미지, 디자인, 매니지먼트 등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 차별화해야 한다.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는 30~40년 전에도 제기됐고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도쿄에는 사람이 계속 모일 여지가 있고, 디벨로퍼는 사람을 더 끌어들일 수 있도록 도시의 매력을 키워야 한다.
―'재재개발'이 필요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복합업무시설 테넌트(임차인) 기업들이 크게 바뀌고 있다. 유연성(flexibility)이 정말 중요해졌다. 구글재팬은 롯폰기힐스에서 임차 중인 사무실 인테리어를 수시로 바꾼다. 예전엔 기업이 사무실 내장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구글재팬은 사무 공간을 몇 개월 만에 확장하고 벽체를 뜯어내 옮기고 싶어한다. 과거 재개발한 건물을 이런 수요에 맞춰 '재재개발'을 해야 하는 이유다.
▷꼭 필요하다. 수직 개발하면 사람의 이동 부담이 작아지고 그만큼 에너지 효율적이다. 특히 고령화 도시에서는 콤팩트 시티가 바람직하다. 일본 정부는 교외 등 도시 외곽에 고령자가 많이 거주하면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최대한 도시를 압축하려 한다. 고령자들에겐 주택, 슈퍼마켓, 병원, 미술관 등 기능이 모여 이동거리가 짧으면 좋다.
―밀집(dense)과 콤팩트(compact)는 다른가.
▷중층 건물 두 개 지을 것을 합쳐 고층으로 한 동 지으면 토지면적 절반을 아낄 수 있다. 또 그만그만한 높이의 건물들이 들어서면 오픈 스페이스가 작지만 고층으로 한 동을 지으면 설령 옆에 또 하나의 건물이 서더라도 전체적으로 밀집도가 낮아진다. 역사문화 자원을 잘 보존하고 시민들이 공유하도록 인근에 오픈 스페이스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약간 떨어진 곳은 높게 짓는 것도 방법이다. 건물 높이를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난센스다.
―서울은 건물 층수·높이 규제가 강하다. 도심의 경우 건물 높이는 90m 이하로 지어야 한다.
▷초고층 개발이 한창인 도쿄역 인근 마루노우치도 한때 인근 황궁 때문에 건물 높이를 규제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기자 도쿄도에서 높이 규제를 풀었다. 건물을 높게 짓는 대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저층부에 상업·문화시설을 만들어 가로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일본에서는 용적률에 의해 높이가 결정되는데 공공기여로 인센티브를 받으면 용적률이 늘어 넓은 용지에서는 초고층 개발이 가능하다. 도쿄도청 높이 250~260m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민간 사업자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룰이 있는 정도다.
―한국에서는 서울의 기능을 다른 지역으로 나눠주는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 정부도 '지방창생'이라는 말을 쓰는데 개인적 의견은 지금은 이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 생각한다. 도시를 발전시킴으로써 사람들이 모이고 다양성이 생기며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그래서 더욱 사람이 모이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글로벌 도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일극집중(一極集中)'은 성숙된 국가에서 필요하다. 서울에 직장이 있고 경기도에 집이 있어 분리돼 있다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식포럼에서 지적했는데 이 정도 크기라면 서울과 경기도를 한 덩어리(하나의 도시)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과 경기도 간 출퇴근 시스템을 발전시켜 연계성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도시세션에서 서울과 도쿄는 비슷한 문제와 도전에 직면해 있고, 이는 곧 두 도시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협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와 서울은 매력적이지만 다소 폐쇄적이다. 도쿄는 파리나 런던에 비해 문화 시설이 부족하고 문화 교류 빈도도 떨어진다. 서울도 도쿄와 다르지 않다. 두 도시는 가장 큰 사회 문제인 저출산·고령화를 겪고 있다. 그동안 서울이 도쿄의 개발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도쿄가 서울을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 같다. 성공한 도시 개발 사례를 서로 적극 공유하면 도시가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도쿄가 서울에서 벤치마킹할 사례가 있나.
▷지하공간 활용이다. 서울에는 영동대로 지하도시 건설을 비롯해 다양한 지하공간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서울은 지하공간 개발을 용적률에 포함시키지 않는 데 있는 것 같다. 서울은 지하공간을 용적률에 포함시키지 않는 몇 안 되는 도시다. 도쿄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 모리빌딩의 개발 철학은 '슈하리'
모리빌딩은 2014년 6월 도쿄 미나토구 도라노몬 일대에 247m(52층)의 초고층 복합빌딩 도라노몬힐스를 준공했다. 미드타운타워(248m) 다음으로 높은 데다 2020년 도쿄올림픽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수도환상 2호선 도로를 뚫고 그 위에 건물을 짓는 파격적 개발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모리빌딩은 도라노몬힐스 양옆에 2019년 준공을 목표로 주거시설인 '도라노몬힐스 레지던스(56층)'와 업무시설인 '도라노몬힐스 비즈니스타워(36층)'를 각각 짓는다. 맞은편에는 2022년까지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는 형태로 '도라노몬힐스 스테이션 타워(가칭)'를 건립할 계획이다.
모리 히로오 부사장은 "롯폰기힐스와 같은 초고층 복합단지가 조성된다"며 "요즘엔 롯폰기힐스처럼 원샷 개발이 쉽지 않아 도라노몬힐스는 도시가 서서히 진화하듯 단계적으로 개발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도라노몬힐스 빌딩 4개동 연면적은 80만㎡(24만평)다. 축구장 111배 크기의 매력적인 공간이 도심 한복판에 탄생한다. 인근 롯폰기힐스와 함께 '24시간 깨어 있는 콤팩트시티'를 구현한 재개발 사례가 될 것이다. 모리빌딩은 도라노몬힐스 주변을 포함해 미나토구에서 향후 10년간 총 1조엔(약 10조원) 규모 재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 He is…
△1961년 도쿄 출생 △1986년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일본흥업은행 입사 △1995년 모리빌딩 입사 △2003년 모리빌딩 상무 △2005년 상하이 월드 파이낸스센터 인베스트먼트 회장 △2011년 모리빌딩 운영사업본부 전무 △2013년~ 모리빌딩 부사장
[김기정 기자 / 임영신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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