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큐레이터 1호 김홍기씨 "옷은 시대정신 보이는 '거울'..패션도 사회 위해 무언가 해야"
[경향신문] ㆍ서울시 ‘패션 특강’서 강의
ㆍ노동집약적 패션산업 환경엔 악영향…소비자 선택 중요
ㆍ비싸도 오래 입는 옷 구입 추세…‘슬로 패션’에도 관심을

“패션은 사회 구성원들의 열망을 담아내고, 새로운 배출구를 찾는 이들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젠 패션이 단순히 소비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서울시가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성수동 유니베라강당에서 ‘패션을 통해 세상보기’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특강에 첫 주자로 참여한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인 김홍기씨(42)는 지난 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패션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모순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면서 “옷은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해주는 거울과 같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소셜패션을 만들어갈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이들이 성수동을 기반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작한 ‘성수 소셜패션 프로젝트’는 서울시가 주최하고 성수 사회적경제 패션클러스터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사회적경제 프로그램이다. 사회 문제를 디자인에 반영한 패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거나 버리는 원자재를 줄여 환경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패션 등이 소셜패션의 범주에 속한다.
이번 특강에서 ‘슬로 패션, 속도의 시대와 싸우는 패션’을 주제로 패션산업이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으로서 슬로 패션을 실천하는 방법을 얘기한 김씨는 다음달 4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리는 ‘제1회 성수 소셜패션쇼’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다.
패션 큐레이터라는 용어를 국내에서 처음 사용한 그는 대형 유통업체에서 패션 바이어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패션 공부를 했다. 그러다 돌연 사표를 내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그는 패션을 주제로 한 미술관 전시 기획과 패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강의도 한다. 2005년부터 운영하는 블로그 ‘패션의 제국’에서 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복식사 이야기부터 패션의 역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등 패션의 이면을 다양한 소재로 풀어낸다. 현대미술과 패션을 결합해서 쓴 <샤넬, 미술관에 가다> <하하 미술관> 등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기업형 브랜드가 막강한 자본력과 인프라를 내세워 패션문화와 유행을 장악하는 시대를 그는 어떻게 바라볼까.
“패션의 본질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폭력적인 속성을 바꿀 수 없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노동집약적 성향이 강한 패션산업이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현지의 생산력을 박탈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지요. 하지만 문제는 ‘틀렸으니 관행을 바꾸라’고 얘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벌의 옷을 소비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패션업자들의 태도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는 “패션의 다양한 공급사슬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네거티브 효과를 제대로 봐야 한다”면서 “어느 시대건 생산의 방식이 있고, 그 방식이 현재와 미래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면, 그 영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들 세대만 해도 옷을 구입하는 것이 흔한 소비 행위가 아니었죠. 옷을 직접 수선해서 입고, 물려 입곤 했지요. 지금은 손쉽게 옷을 사고, 아쉬움이나 죄책감 없이 버립니다. 옷과의 정서적 교감이나 옷에 부여했던 개인의 소중한 기억이란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김씨는 “2013년도 통계를 보면 미국인들이 2005년 69벌을 구입했는데 2013년에는 60벌을 사면서 구입 비용은 오히려 늘었다”면서 “조금 적게 사는 대신 비싸지만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사기 시작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소비와 더불어 옷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누가 만들었으며, 만드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관행은 없었는지 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옷장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옷장 속 인문학>(중앙북스)을 출간한 김씨는 “한 사람의 성격, 구체적인 미감, 색채와 형태에 대한 이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담겨 있는 옷장이 옷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윤리적·슬로 패션은 꼭 ‘해라’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방향성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이명희 기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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