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달라진 물가..이래도 저래도 압박받은 韓銀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이주열 총재 오는 13일 두 번째 물가설명회…연말 소비자물가상승률 1.5% 이상 반등여부 주목]
#2012년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저녁 약속을 위해 찾은 횟집에서 상에 오른 풋고추를 보고 식당 주인을 불렀다. 그는 “풋고추를 먹지 않으니 가져가라”면서 “앞으로도 원하는 손님에게만 풋고추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박 전 장관이 풋고추를 물린 이유는 단순히 먹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본인부터 소비를 줄여 전년보다 2배 이상 폭등한 가격을 진정시키려는 의도였다.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대에 육박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에는 ‘무과장’, ‘배추국장’ 등 주요 품목별 물가관리 특명을 받은 보직이 따로 존재했다 . ‘고물가’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심심치 않게 ‘금리인상’ 압력을 받았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7%로 역대 최처지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0.8%)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다. 올해에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0%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일반 국민들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임에도 불구하고 ‘저물가’란 수식어가 일상화됐다. 정부는 2013년 이후에는 줄곧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인하’를 바란다. 부동산 경기과열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누증을 걱정하는 한은과 종종 대립각을 연출한다.
이처럼 한은은 고물가 시기에 금리인상을, 저물가 시기에 금리인하를 요구받았다. 상황이 바뀌어도 정부의 통화정책 기대감은 여전한 셈이다. 한은도 그럴 때마다 정부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맞받아쳤다.
다만 2014년 이주열 총재가 부임한 뒤로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완화적 재정·통화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폴리시믹스’(policy-mix, 정책조합)라는 용어가 빈번히 회자될 정도로 정부와 한은은 한동안 ‘한 배’를 탔다.
그러나 최근 거듭된 재정·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 약발이 떨어지자 양 기관 불협화음이 감지된다. 서로 추가 경기부양책의 공을 넘기는 모습이다.
유 부총리는 올해 11조원대 추경예산과 4분기 10조원대 재정보강책 등을 언급하면서 에둘러 금리인하를 바라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총재는 금융안정 리스크를 감안할 때 금리보다 재정역할을 더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 이 총재가 오는 13일 두 번째로 물가설명회 연단에 선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인 물가안정목표를 9개월째 ±0.5%포인트 넘게 벗어난 현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과 향후 물가 방향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총재는 내심 10월 물가설명회가 열리지 않길 바랬다. 우선 낮은 소비자물가상승률 원인의 상당 부분이 국제유가 하락 등 외부적 공급충격 요인으로 한은 입장에서 대응책을 밝히기 쉽지 않아서다. 국민들에게 체감물가와의 괴리현상을 설명하는 것도 직접 통계를 산출하지 않은 한은으로서 난감한 일이다.
올해 한시적인 전기료 누진세 인하가 없었다면 굳이 설명회를 하지 않아도 됐다는 점도 이 총재로서는 두 번째 물가설명회가 달갑지 않은 이유다.
한은에 따르면 누진세 인하로 8~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4%포인트 떨어뜨린 효과가 있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2%. 전기료 인하만 없었다면 1.6%로 물가안정목표제 설명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물가설명회를 앞둔 이 총재의 부담감은 그의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IMF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서 “전기료 인하가 없었다면 10월에 (물가설명회를) 안해도 되는데…”라며 아쉬움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총재의 두 번째 물가설명회에서도 특별한 대책이나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올해 연말부터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대로 오르고 내년부터는 물가안정목표제 수준으로 오를 것이란 기존 물가전망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내부적으로는 국제유가가 산유국 감산 합의로 연말 상승폭이 확대될 경우 이르면 연내 물가상승률이 1.5%를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를 감안하면 10월 물가설명회가 이 총재가 ‘저물가’ 현상을 설명하는 사실상 마지막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유엄식 기자 us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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