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 '가장 존경받는, 그러나 가장 저평가된' 소방관의 목숨

이유진·최미랑·박광연·최민지 기자 2016. 10. 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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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심을 뒤흔드는 소방차의 사이렌소리는 다급하고도 간절하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중략)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나는 늘 내 마음의 기도를 전했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 김훈,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서문 중에서
지난해 4월3일 부산경찰청이 페이스북에 올린 소방관 사진. 부산경찰청은 부산 연산동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이 새벽 1시부터 이어진 화재진압을 마치고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부산경찰청 페이스북 갈무리

■ 태풍이 앗아간 아들 소방관의 꿈

울산 온산소방서 구조대 소속 강기봉 소방교(29)는 태풍 ‘차바’가 한반도를 강타한 지난 5일 고립된 마을 주민을 구조하기 위해 울주군 청량면 회야댐 정수장 인근 마을로 출동했습니다. 구조대원들이 마을 주택 옥상에 고립된 주민을 구하기 위해 퇴로를 확보하던 중 강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강 대원이 물살에 휩쓸려 갔습니다. 다른 대원들은 전봇대 등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지만, 강 소방교는 다음날 실종 지점에서 강 하류를 따라 약 3㎞ 떨어진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강 소방교의 아버지(62)도 지난해 제주서부소방서에서 소방령으로 정년퇴직했습니다.

지난 5일 태풍 ‘차바’로 고립된 주민들을 구하다 순직한 울산 온산소방서 구조대 소속 고 강기봉 소방교(29)

지난 8일 열린 고 강기봉 소방교의 영결식에선 함께 근무한 동료 소방교가 조사(弔詞)를 낭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명령한다. 강기봉 소방교는 귀소하라. 다시 말한다. 강기봉 귀소하라. 기봉아…”

▶[관련기사]태풍 '차바' 피해]구조 나섰다가…아버지의 길 못 잇고 떠난 소방대원

■ 화재 진압하다가, 벌집 떼어내다가···끊이지 않는 죽음

강풍이 불어닥친 지난 5월4일엔 강원 태백지역 피해현장 연립주택에서 복구작업을 하던 태백소방서 허승민 소방장(45)이 추락했습니다. 지붕구조물에 머리를 맞아 다친 허 소방장은 치료를 받던 중 같은 달 12일 숨졌습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6년 올해에만 2명의 소방대원이 순직했습니다.

▶[관련기사]강풍 피해 복구하던 소방관 순직

지난해 12월3일에는 서해대교 화재현장에 출동했던 이병곤 평택소방서 포승안전센터장(54·지방소방령)이 불 때문에 끊어진 케이블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1990년 소방에 입문한 이 소방관은 화재 진압과 구조·구급 현장을 두루 누빈 베테랑 소방관이었습니다.

▶[관련기사]서해대교 주탑 꼭대기에 불···소방관 1명 사망
▶[관련기사]“서해대교 화재 원인 낙뢰”…국과수 감식결과

지난해 12월 3일 서해대교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고 이병곤 소방경(54)

지난해 9월8일엔 경남 산청소방서 산악구조대 소속 이종태 소방관(47·소방위)이 ‘감나무에 있는 말벌집을 없애달라’는 주민의 요청에 현장에서 벌집을 제거하다 벌에 쏘여 숨졌습니다. 인사혁신처는 말벌퇴치 작업은 위험직무가 아니어서 이 소방관의 사망은 순직이 아닌 ‘공무상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소방관의 유족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승소했습니다. 사망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이 소방관의 죽음은 순직으로 인정될 수 있었습니다.

▶[관련기사]소방관 벌집 제거하다 벌에 쏘여 사망…“솔선수범 안타깝다”

지난 8월2일 폭염속에서 104기 신임소방관들이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소방학교에서 공기호흡기, 방화복, 안전화, 헬멧 등 20kg이 넘는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 매년 평균 6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고 있다

국민안전처가 지난 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직한 소방관은 모두 60명으로 연평균 6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방관이 순직할 당시 근무 유형을 보면 화재 진압이 24명(40%)으로 가장 많았고 구조 19명(28.3%), 구급 3명, 교육·훈련 3명, 기타 13명 등의 순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근무 중 다친 소방공무원도 3241명에 이릅니다. 최근 10년간 순직한 소방공무원은 모두 훈장을 받았으나 부상으로 훈장을 받은 사례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 만성적 인력부족…예견된 인재(人災)

사실 태풍 ‘차바’로 숨진 고 강기봉 소방교는 ‘구조대원’이 아니었습니다. 구급차에 탑승해 긴급 환자들을 응급처치하는 ‘구급대원’이었습니다. 구조 인력이 부족해 긴급 투입됐다가 변을 당한 것입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국가안전처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구조대원은 특수부대 출신이거나 그에 준하는 체력적 특성, 응급구조 자격증을 갖추고 있다”면서 “하지만 강 소방교는 구조대원이 아닌 구급대원으로 구조 현장에 투입됐다”고 말했습니다. 표 의원은 “전국 소방대원 정원대비 1만8000명이 부족하다”며 강 소방교 죽음이 ‘소방인력 부족 때문에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방인력 부족 문제는 통계로도 드러납니다. 지난달 18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2012년 이후 소방력 대비 인원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소방인력이 1만9837명 부족한 것으로 나옵니다. 현행 소방력 기준에 관한 규칙상 현재 필요한 소방 인력은 5만1143명이지만, 지난해 말 소방 인력은 3만1306명(3교대 기준)에 그쳤습니다. 경기(3759명), 경북(2802명), 강원(1697명), 충남(1693명), 경남(1665명) 순으로 부족인력이 많았습니다.

▶[관련기사] “소방 인력, 정부 기준보다 2만명 부족”
▶[관련기사] ‘1인 소방서’ 전국 59곳…전남지역에 31곳 집중

영화 ‘타워’의 한 장면

■ 소방장비 부족·노후화 문제도 심각

소방장비의 부족·노후화 역시 소방관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입니다. 일선 소방서에 배치된 공기충전기 10대 중 6대가 낡아 소방관들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기충전기는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의 ‘생명줄’ 역할을 하는 공기호흡기에 공기를 충전하는 장비입니다. 지난 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전국 소방서의 공기충전기 1147대 중 61%인 696대가 내구연한(6년)을 초과했다는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특히 수도권 지역은 공기충전기 418대 중 322대(77%)가 노후화돼 가장 심각했습니다.

소방차는 5대 중 1대 가량이 낡아 소방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펌프차·물탱크차·사다리차 등 주력소방차 총 4571대 중 948대(20.74%)가 사용 연한이 지난 노후차량이라고 연합뉴스가 지난달 보도했습니다. 창원(43.75%), 강원(34.22%), 인천(30.39%) 순으로 소방차 노후율이 높았습니다.

지난 3월 국민안전처는 전국적으로 전체 구조장비의 15% 가량이 노후화됐다는 조사결과도 발표했습니다. 다만 “노후율이 21.5%에 달하던 장갑·헬멧 등 개인장비는 새 장비로 완전히 교체했다”고 밝혔습니다.

▶[관련기사] 진선미 의원 “소방관 공기충전기 61% 노후화…소방관 건강 위협”
▶[관련기사] 소방차 5대 중 1대는 ‘노후’…소방관 공상 매년 늘어

소방서 주간조가 화재진압 도구로 썼던 산소통과 진압복 등을 한쪽에 걸어 놓은 모습/경향DB

■ 문제는 부족한 예산

부족한 소방예산은 소방 장비와 소방관 처우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소방공무원은 지방자치단체에 속한‘지방직 공무원’입니다. 각 지자체가 지역의 소방 예산을 책임지고 편성합니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6년도 지자체 예산 및 재정자립도 현황’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2.5%에 불과합니다. 재정 형편이 열악한 지자체들은 소방 분야에 충분한 예산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은 소방직을‘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해 국가가 소방예산을 담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들은 소방관들에게 초과근무수당도 제대로 지급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액수가 1900여 억원에 달합니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 받은‘소방공무원 초과수당 미지급 현황’ 자료를 보면, 소방관들에게 지급해야 할 초과근무수당 미지급액은 1902억원에 달합니다. 올해 7월말 기준으로 3만2417명의 소방관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현재 105건의 소송이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지역 소방본부별로 보면 서울(560억), 경기(508억), 인천(317억), 대구(209억) 순으로 미지급 금액이 많습니다.

▶[관련기사] 소방관들이 못 받은 초과근무수당 1900억 넘어

■ 적은 ‘그들 안에도’ 있다

소방관들을 위협하는 것은 부족한 인력이나 낡은 장비뿐만이 아닙니다. 소방관들은 ‘내 안의 살인자’ 우울증과도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민안전처와 지방자치단체 소방본부에 따르면 전체 소방관의 10.8%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소방관 10명 중 1명은 상시적으로 무기력감과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일반인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2.4%)보다 4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발생하는 비율도 일반인보다 10배 이상 많았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전쟁이나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질환입니다. 당연히 일상 생활과 업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전국 소방관 4만여명을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진행한 결과 6.3%인 2468명이 이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인의 경우 0.6%만이 이 질환을 겪습니다. 전문가들은 24시간 비상대기 하는 근무환경과 사고현장의 압박감·긴장감 등을 소방관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자살한 소방관의 수(35명)가 같은 시기 순직한 소방관(33명)보다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관련기사] 소방관 10명 중 1명이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일반인의 10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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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존경받는, 그러나 가장 저평가된 직업

지난 10일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은 대학생 614명에게 가장 존경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응답자 절반 이상(51.6%)이 소방관·구급대원을 꼽았습니다. 대학생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저평가된 직업(복수응답)으로도 소방관·구급대원(60.2%)을 가장 많이 선택했습니다. 가장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이에 걸맞은 대우는 받지 못하는 직업. 조사 결과가 뼈아픈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11월1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51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전시관 관람을 하면서 방화복 지퍼를 올려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같은 ‘책임’ 다른 ‘무게’

헌법 제7조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이 목숨을 내놓으며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 같은 ‘공무원’인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과 지위를 남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자녀를 보다 편한 곳에 보내기 위한 ‘물밑의 노력’도 흔한 것 같습니다. 지난달 18일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은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고 있는 4급 이상 고위공직자 아들 145명 가운데 70%인 101명이 국가기관·공공기관·지자체에 근무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기관은 사회복무요원 근무지 중 비교적 육체 노동이 적고 단순 행정업무가 많은 곳입니다. 일반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57%정도가 이들 기관에 배치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사회복지시설이나 소방·지하철·보훈병원 등 복무 예정자가 대체로 기피하는 시설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습니다. 고위공직자 자녀 가운데 처음에는 사회복지시설로 배정됐다가 곧 공공기관으로 재배치된 사례도 여럿 있었습니다. 연일 끊이지 않는 판사, 검사, 고위공무원의 비리 또한 소방관들의 어깨에 얹힌 책임의 무게를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소설가 김훈은 목숨을 건 소방관들의 노력을 ‘인간의 희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희망’이 꺼지지 않도록, 한시 빨리 소방관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강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 김훈,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서문 중에서

<이유진·최미랑·박광연·최민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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