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재정 역할 다했다?..한은 기준금리 2%p 내릴 동안 정부지출은 불면

CBS노컷뉴스 감일근 기자 2016. 10. 1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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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유일호 경제부총리
거시정책의 양대 축인 재정과 통화당국의 두 수장이 경기부양의 책임을 서로 상대에게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8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국내 통화정책은 이미 충분히 완화적이며, 금융안정 리스크를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경기부양을 위해 취할 수 있는 통화정책 여력, 즉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의미다.

같은 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1.25%로 아직 '룸(금리인하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또 10일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가용한 재정 정책은 모두 동원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부총리는 "우리나라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낮은 건 사실이고, 그래서 이미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고 있다"며 "더 확장적으로 하기엔 재정 적자도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 정책은 쓸 만큼 다 쓴 것"이라며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했고 본예산도 확장적으로 편성해 제출했으며 10조원 규모의 재정 보강도 이미 발표했다"고 말했다.

재정과 통화정책의 두 수장이 경기회복을 위해 자기 부서에서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고 상대의 정책 여력은 남아 있다면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 누구 주장이 맞나?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을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재정과 통화 모두 경기부양을 위해 나름대로역할을 해왔다. 통화당국인 한은은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재정당국인 기재부는 수차례 추경을 편성하는 등 재정확대 정책을 취해왔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통화정책의 경우 지난 2012년 이후 지금까지 한은의 기준금리는 3.25%에서 1.25%로 2%포인트나 떨어졌다. 한은이 0.25%포인트씩 모두 8차례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한 결과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낮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정부는 2013년과 2015년, 2016년 세 차례 추경을 편성하며 경기부양을 지원했다. 그러나 실제 GDP에서 차지하는 정부지출 비중은 오히려 감소했다. 2012~2015년까지 GDP 대비 정부지출(총지출 및 순융자)은 평균 21.1%로 직전 4년간(2008~2011년) 평균인 21.3%보다 0.2%포인트 낮다. 재정지출의 절대액은 증가했지만 경제성장률을 감안한 실질적인 재정지출은 감소했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의 10년 평균치(21.1%)와 비교하면 같은 수준이다

재정지출비중은 2006년 이후 매년 21% 안팎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 이는 정부가 중기재정건전성 목표에 따라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중을 40% 이내에서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즉 추경을 편성했지만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다음해 재정을 긴축적으로 편성하는 등 일정버ㅁ위에서 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부 재정을 확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대신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린데 따른 부작용은 심화되고 있다.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 버블(거품)도 현실화되고 있다. 금리인하에 우호적이던 한 금융권 고위인사도 “최근의 부동산 시장은 버블단계로 진입했다”며 저금리 부작용을 우려했다. 통화정책의 여력이 거의 임계점에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미국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도 통화정책의 여력을 제한한다. 세계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 여력을 남겨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준금리가 이미 심리적 하한에 근접한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릴 때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작용만 더 키울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원론적으로도 경기과열에는 ‘통화정책’, 경기부양에는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나 일본, EU 등의 국가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 등 통화정책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들은 과도한 국가부채로 재정정책의 여력이 이미 소진됐고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사진=자료사진)
◇ 상대적으로 큰 재정정책 여력

통화정책과는 달리 재정정책은 높은 재정건전성 만큼 상대적으로 여력이 큰 편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1%로 OECD 회원국 평균 115.2%에 비해 크게 낮다. 정부 부채가 낮다는 것은 재정지출을 늘릴 여력이 높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IMF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재정정책 여력이 큰 국가로 평가했다. 라가르드 IMF 총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회의 기간에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재정정책을 더 과감히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정부가 재정정책에 소극적인 것은 재정건전성 때문이다. 2011년 GDP 대비 31.6%였던 우리나라의 국가 부채비율은 지난해 37.9%로 증가했고, 올해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은 재정상태가 좋더라도 부채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더구나 재정의 급격한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고령화와 복지수요 증가 등의 변수도 잠복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금리를 또 낮춘다면 금융안정 문제와 함께 가계부채 문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경기부양을 위해 치러야 하는 부담을 가계에 떠넘기는 셈이 된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인 구조개혁을 추진하되 당장 경기가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양책이 필요하다면 상대적으로 정책 여력이 큰 재정정책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준표 연구위원은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재정을 푸는 것이 옳으냐 하는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경기가 단기적으로 더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재정의 역할이 강조돼야 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맞다“고 말한다.

특히 통화정책에 비해 재정정책만이 갖는 장점도 있다.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통화정책의 특성으로 인해 자산버블 등 저금리 부작용이 커지는 상황에서 특정 분야를 표적으로 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 재정정책의 경우 경기부양 효과도 거두면서 잠재성장력 제고 등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도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면 세수 감소로 재정건전성도 악화된다는 점에서 재정확대를 통해 성장기반을 확충할 수만 있다면 장기적으로 오히려 도움이 된다.

다만, 재정정책을 확대하되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성공적인 재정정책을 위해서는 최근 거의 매년 반복되는 추경처럼 즉흥적적이고, 예산 낭비적인 방식이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장기 전략을 세워 계획성 있게 재정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를테면 우리경제의 시급한 현안인 ‘구조조정’, ‘신성장산업 육성’, ‘고령화대책’ 등에 대한 계획을 세워 예산을 체계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영준 연구위원은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바이오, 부품소재, 고부가, 첨단 기술산업에 대한 세제를 지원하고 국가차원의 연구개발 프로젝트 발굴 및 지원 등으로 기업의 혁신과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상시구조조정이 촉발할 수 있는 고용환경의 악화에 대비해 실업자 금융지원, 재취업 창업교육 및 지원 등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재정지출을 확대해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둔화 압력을 완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여력을 잘 활용해 단기적으로 경기도 부양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볼 시점이다.

[CBS노컷뉴스 감일근 기자] stephan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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