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20조 껑충'..쥐어짜기 논란으로 불똥
올해 정부의 세수(稅收) 성적표만큼은 ‘A’를 줘도 무방할 것 같다.
국세청이 올 7월까지 거둔 세금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조원 넘게 늘었다.
8일 국세청의 국정감사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세청 소관 세수는 총 150조원. 지난해 같은 기간(129조9000억원)보다 20조1000억원 늘었다.
좋은 성적을 낸 정부지만 밝은 표정만 지을 수 없는 분위기다.
“경기도 어려운데 너무 쥐어짠 것 아니냐?”라는 싸늘한 여론 탓이다.
당장 7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감에서도 20조원 이상 늘어난 세수의 배경으로 무리한 세정(稅政)을 지목하는 의원들이 적잖았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이런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정부는 더 곤혹스럽다.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도전했던 5선 중진 정병국 의원은 “올해 세수진도율이 최근 5년 중 가장 좋은 실적이라고 하는데 한 편에서는 국세청이 쥐어짠다고 한다”며 “경기가 좋은 상태서 세수가 늘었다면 좋은 징조인데 아니니까 현장에서 아우성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에서는 기업변호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비정기 세무조사의 석연찮은 증가세를 추궁했다. 이 의원은 “영세 자영업자가 어려운데 개인사업자 세무조사 실적을 봤더니 정기 세무조사에 비해 비정기 세무조사가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며 “비정기 세무조사 증가가 세수확보 때문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전남 지사 출신의 국민의당 박준영 의원은 “최근 어떤 사업자를 만났는데 본사를 대구에서 서울로 이전했다고 했다”며 “그는 대구에서는 온갖 시달림을 당했는데 서울로 회사를 옮겼더니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방에 있으면 까딱 잘못하면 세무조사를 받는데 서울에 있으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기재위 소속 야당 의원들의 국감용 보도자료에도 무리한 세무조사의 문제점을 구체적 수치로 꼬집는 내용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기도 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윤호중 의원의 국감자료를 보면 박근혜정부 이후 국세청이 세금을 잘못 부과해서 납세자에게 돌려준 과오납 환급금이 12조가 넘는다. 2015년에만 6조 2590억원으로 평소보다 2배가 넘는 환급금이 발생했다.
이 자료에서 자세히 봐야하는 것은 과오납 환급 유형이다. 지난해 납세자가 세금부과가 잘못됐다고 요청해서 받은 경정청구 환급금이 2조8196억원으로 가장 크다. 국세청의 조세결정이 잘못됐다며 납세자가 조세소송을 통해 돌려받은 불복 환급금도 2조4989억원에 달했다. 윤 의원은 이를 근거로 “현정부가 지하경제양성화 목표 등 실적을 정해놓고 무리하게 세금을 걷는 조세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쥐어짜기 논란은 되돌아보면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부터 있었다.
경제부총리를 한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정권 초반 원내대표 시절인 2013년 6월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전방위적인 세무조사와 과잉규제에 대한 우려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을 정도다.
박근혜정부의 초기 세정은 확실히 이명박정부와 달랐다.
국세청과 기재부에 따르면 법인사업자 세무조사 건수는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4689건)과 2012년(4549건)에 견줘 현 정부 초기인 2013년 5128건, 2014년 5443건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도 5577건에 달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걸고 지하경제 양성화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박근혜정부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정책 드라이브를 건 셈이다. 하지만 세금 문제는 역시 민감했다. 강한 역풍 속에 국세청 스스로도 2014년 규제개혁 추진단을 가동해 ‘10대 세정개선 과제’를 선정하고 첫 번째 과제로 불복과정에 이르는 무리한 세무조사를 지양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4.13 총선에서 여당이 패한 뒤에는 ‘마른수건 쥐어짜기식’ 세수 확충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여권 전반에 퍼졌다.
제20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나온 발언이 단적이다.
기재부 출신의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4월 세금 수입이 전년 동기보다 18조원 증가했다”며 “선거 기간에 웬 세금을 그렇게 걷었는지, 집권당을 욕보일 일이 있느냐”고 따졌다. 이 의원은 회의에 나온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선거 때는 음주 단속도 덜하고 불법주차 과태료도 덜 떼는 게 상식인데 선거를 망치려고 작정했다”고 몰아세웠다.
경제전문가인 같은 당 이혜훈 의원도 “박근혜정부 들어 마른 수건 쥐어짜기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한편으로는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린다는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무리하게 세금을 거뒀다”고 비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도 기자와 만나 사견임을 전제로 “세금을 올리고 선거에서 이긴 정권은 없다. 지난 선거에서 진 이유 중에 하나가 담배세를 올렸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국세청은 이런 쥐어짜기 논란이 사실을 왜곡한 비논리적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국감 답변에서 “국세청이 230조원 세수 중 세무조사를 통해 거둬들인 세수는 7조~8조원에 불과하다”며 “세무조사를 통해서 부족한 세수를 조달한다는 전제는 우리나라 세수 규모가 너무 커서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비정기 세무조사가 영세 자영업자에 집중된다는 지적에도 “비정기조사의 경우 조사대상 납세자 대부분이 신고를 안하고 매출을 누락시키는 경우”라고 강조했다.
세수 증가의 배경도 세무조사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보탠다.
국세청은 “올해 세수 증가는 작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4.9% 성장하고 법인 영업실적이 개선된데다 민간소비가 증가하는 등 긍정적 경제요인에 기인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비과세·감면 정비와 미신고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 제도 시행 등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더 논리적이라고 강조한다. 일부 세제전문가들도 “세율을 전혀 만지지 않았고 기업 사정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데 법인세가 늘었다는 것은 사실상의 증세인 비과세·감면 축소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동조한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외국과 견줘 우리 상황을 진단해보자.
박근혜정부가 쥐어짜기에 나섰다고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과 견줘보면 우리 세무조사 강도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다.
가천대 대학원 회계세무학과 박해실 박사가 2015년 6월에 발표한 ‘현행 세무조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미국의 2009년도 세무조사비율은 총 납세자수 대비 법인은 약 1.78%, 개인은 약 1.10%로 나타났다. 일본은 총 납세자 대비 법인의 조사비율은 5.2%, 개인은 3.09%에 달한다. 한국은 그러나 2010년 가동업체 수 대비 법인은 1.0%, 개인은 0.1% 수준이다.
선진국보다 지하경제 규모가 큰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되레 세무조사는 더 강하게 해야 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쥐어짜기 논란의 이면에 있는 세금과 정치의 숙명적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강원택 교수 등 9명의 정치학자가 2007년에 펴낸 ‘세금과 선거’에 따르면 근대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주요 사건의 배경에는 세금 문제가 어김없이 포함돼 있다. 1789년 루이 16세는 재정 문제로 170년 만에 삼부회를 소집했고, 이는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 영국 정부의 차세(茶稅,Tea Act) 제정에 반대해 일어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당장 내달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도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탈세 논란이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한국도 독재 시절에는 세금 이슈가 철저히 무시돼 왔으나 2006년 반전이 이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회적 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증세 대 감세’ 논쟁이 불붙었고, 종합부동산세가 ‘세금 폭탄’ 이슈로 비화하면서 그 이후 세금 이슈는 선거 때마다 주요 쟁점이 됐다.
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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