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의 노래

2016. 10. 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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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청산별곡 환청기 1

*조선 중기에 묶은 악보집인 <시용향악보>에 청산별곡의 음계와 장단이 전해진다. 이 악보에 따르면 청산별곡은 평조에 3소박 4박자, 즉 8분의 12박자라고 한다. 내림마(Eb)장조 또는 관계조인 다(C)단조인 이 노래는 오르내림이 단아하고 자연스럽다. 마치 산행처럼.

청산별곡. 이 아름답디아름다운 노래는 어떤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표정으로 불렀을까? 음색은 어땠을까?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을 실내, 또는 실외의 공간에서는 어떤 향기가 났을까? 듣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기분을 느끼며 이 노래를 들었을까? 노래하는 사람-음악인들과 듣는 사람-청중은 어떤 분위기의 한 무리를 만들어내며 자신들이 있는 공간에 속속들이 스며들었을 그 소리의 물결을 타고 있었을까?

이 금싸라기 같은 노래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간단한 흥얼거림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두드림이나 손뼉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노래 만들기는 창틈으로 비껴 들이친 빛 속을 유영하는 먼지들을 직조하여 옷을 만드는 일이다. 맨 처음, 텅 빈 곳을 부유하는 실오라기 같은 먼지의 디엔에이(DNA)를 뽑아내듯, 허공 속으로 덧없이 섞여드는 낮은 소리로, 실제로 입속의 혀를 도르르, 굴리며 살어리랏다, 라고 발음했던 그 또는 그녀는 누구였을까? 그 누가 원망스러웠을까? 아니면 누가 그리웠을까? 그 무엇이 슬퍼서, 그 누구에게 버림받아서 독한 마음 먹고 세상을 등지며 스스로 다짐하듯, 청산에 살어리랏다, 라고 발음했을까?

머루랑 다래랑 조개를 먹는 페스코 채식주의자의 식단을 과감히 선택한 그 또는 그녀는 담백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노래의 오심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최초의 그 또는 그녀는 담담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처음의 흥얼거림으로 노래의 몸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또는 그녀는 설렘을 억누르며 아주아주 천천히 노래의 옷이 남김없이 벗겨질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그때 달빛이라도 비쳤을까? 이 아름다운 우리말 발음의 향연을 창조한 사람은 연구되거나 전해진 대로 유랑민들이었을까? 실연당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노장사상에 영향을 받은 고려 후기의 지식인이었을까? 외로운 고려 출신 테러리스트였을까? 삼별초의 단원이었을까? 하긴, 듣기에 따라서는 산에 사는 빨치산이 나라 잃은 슬픔과 은둔 생활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만들고 불렀을 법도 하다.

조선 중기에 묶은 악보집인 <시용향악보>에 청산별곡의 음계와 장단이 전해진다. 이 귀중한 악보가 세월을 견뎌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청산별곡은 평조에 3소박 4박자, 즉 8분의 12박자라고 한다. 오선보로 채보한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내림마(Eb)장조 또는 관계조인 다(C)단조인 이 노래는 오르내림이 단아하고 자연스럽다. 처음에 가운데서 시작해서 올라갔다가, 더 높이 올라간다. 그랬다가 다시 내려오고, 더 내려온다. 천천히 산에 오르는 발걸음하고 비슷하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내는 피리들과 가사에도 등장하는 해금 여럿이 연주한 주선율이 편경과 북 소리와 섞이면 장중한 느낌마저 들 듯하다. 두보의 유명한 절구에 나오는 표현대로 ‘산청화욕연 山靑花欲然’, 자신이 온통 푸르러 그 안에 핀 꽃들이 불붙는 듯 보이게 하는 청산의 무위(無爲). 하지 않고도 하는 그 근엄한 자태가 이럴 법하다.

최근에 나는 안동 청량산에 있는 공민왕의 사당을 가보았다. 평소 공민왕을 동방의 상처 입은 디오니소스로 마음속에 모시던 나는 며칠간을 정처없이 떠돌 수 있는 특별하고도 우연한 기회를 얻어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문득 작심하야 공민왕당에 가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거기서 청산별곡의 환청을 들었다. 그리고 혹시 청산이 청량산은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해 보았다. 청산별곡은 어쩌면 공민왕의 혼백이 지은 노래인지도 모른다. 고려 31대 왕 공민왕은 즉위 후 10년, 그러니까 1361년에 일어난 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깊은 청량산에 들어가 저항과 개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환도하여 신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불의의 변으로 저승으로 가지도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혼백이 되었다. 공민왕이 머물 때 그 기백과 높은 뜻과 인품에 감화를 받은 산성마을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제를 올려 공민왕을 청량산을 지키는 신령으로 모시고 있다. 아직도 그 깊은 산 공민왕당 바로 밑 산성마을에는 민가가 띄엄띄엄 있다. 인기척이 나자 개가 짓고 할머니 한 분은 그 소리도 안 들리는지 양지바른 데 나와 옷에서 뭔가를 자꾸 떼어내고 계셨다.

청량산은 의외로 깊은 산이었다. 쉽게 나올 것 같던 공민왕당은 가도 가도 나오질 않았다. 갈래 길도 많았다. 청량산 축융봉 산성마을을 지나치면 나 있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니 초라할 만큼 아담한 공민왕 사당이 비로소 나왔다.

인적도 끊겨 적막한 깊은 산중에 흰 버섯 한 뿌리가 홀로 피어 있었다. 독인지 꿈인지를 품고 있는 모시적삼 버섯은 썩은 나무뿌리의 호위를 받으며 이슬땀을 흘렸다. 버섯의 하얀 갓이 빙빙 도는 턴테이블 같았다. 돌고 돌며 왕의 맺힌 넋이 가쁜 숨을 넘기기 직전의 시간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었다. 그 장단의 탄력으로 버섯은 옛 왕국을, 사라진 나라를, 온몸이 불에 덴 듯 뜨거운 연인의 나신을, 아름다운 친구들의 무리진 그림자를 노래의 내용으로 담았다. 구부러진 산길들은 이파리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길이 서로 대화하는 내용을 엿들었는데, 그것은 청산별곡의 가사와 비슷했다. 길은 두런두런 낮은 목소리로 지나간 시간을 걸었던 사람들과 공민왕의 말벗이 되어 주고 있었다. 역사의 발자국이 청량산 깊은 계곡 산짐승의 발박자와 겹쳤다. 길은 듣고 있었다. 그 모든 어울림을. 저 절벽에 매달렸던 소나무들의 사연을.

성기완 시인

길은 지금의 나와 더불어 듣는다. 사당의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의 가락을. 가만히 들으니 신음의 간격이 일정하다. 그 사이로 검은 심연이 보인다. 저승이 코앞이다. 넓은 벼루 안에서 공민의 얼이 멱 감는다. 아직도 부릅뜬 두 눈엔 절망의 구슬이 하얗게 박혀 있다. 번민의 나날들을 노래의 힘으로 버텨왔다. 노래는 눈처럼, 버섯처럼 하얗게 내린다. 그렇게 가는 거다. 간절한 기도를 애원에 가깝게 접고 또 접어 문틈으로 겨우 밀어 넣었다. 나의 기도는 블랙홀보다도 더 먼 또는 가까운 더딘 떨리는 빛나는 어여쁜, 공민의 가부좌한 무르팍 위로 톡 떨어졌다. 마침내 큰 달이 뜨고 왕은 노래의 선물을 허락했다. <계속>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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