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경제] 우리 경제에 골든 타임은 남아 있나?
골든타임이라는 말, 우리가 참 많이 듣는 말이죠.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이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다, 또 가계부채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이다. 이런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골든타임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은데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도 그렇죠.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라는 기간 동안 제대로 구조조정을 못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골든타임을 놓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된다는 교훈을 일깨워 준 겁니다.
Q.골든타임이라는 말이 원래는 정해진 시간 내에 딱 한 번의 기회를 의미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경제에서 말하는 골든타임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A. 긴박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초반의 중요한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말하죠. 심장 정지 때 심폐소생술이나 여객기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승객을 탈출시켜야 하는 시간들이 바로 골든타임입니다. 뭔가 대처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는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보통은 정해진 시간 내에 기회는 딱 한 번뿐이죠. 그런데 우리가 경제에서 골든타임을 말할 때는 특정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기회가 모두 사라지는 의미는 아닙니다. 첫 번째 골든타임을 놓쳐도 바뀐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또 다른 골든타임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만 앞서 온 골든타임을 놓칠수록 해결 과정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Q.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런 설명이 이해가 갑니다. 사실 골든타임의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계속 미루다가 결국은 막차까지 놓친 거잖아요.
A. 해운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지난 2009년 초부터 본격화됐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해운사들의 부실 위험이 커지기 시작한 탓입니다. 정부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금융기관들은 해운사들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했습니다. 말 그대로 해운업 구조조정의 첫 번째 골든타임이었죠.
하지만 정작 정부가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졌습니다. 2조원 규모의 선박 펀드를 만들었지만 금리가 통상 금리보다 턱없이 높으니까 이용하겠다는 해운사가 없었던 겁니다. 무용지물이 된 구조조정 정책이었습니다. 거기다 글로벌 해운시장이 일시적 호황을 보이자 정부의 구조조정 얘기는 아예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2009년 초 164개였던 해운 회사가 2010년에는 185개로 늘었으니까 거꾸로 간 구조조정이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반짝 호황’에 눈이 멀어서 해운업 구조조정의 첫 번째 골든타임을 놓친 겁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죠? 반짝 호황이 끝나고 2010년 하반기부터 다시 불황이 시작되면서 해운업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습니다.
Q. 그래서 상황은 악화됐지만 그래도 구조조정을 추진할 시간이 다 지난 건 아니었잖아요.
A. 정부는 2013년에 2차 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국내 4위 대한해운, 그리고 3위 STX팬오션이 잇따라 쓰러지던 상황이었죠. 하지만 대책의 내용은 금융기관을 통해 해운사의 회사채를 사주는 응급처치 수준이었습니다. 해운사들은 구조조정에 나서기보다 이 대책에 기대서 회사채 발행으로 부채비율을 높이며 버티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땜질 구조조정에 매달리다가 두 번째 골든타임도 놓친 겁니다. 해운사 부실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지난해 11월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추진의 주체는 분명히 있었는데 관련 부처는 모두 발뺌만 했고 결국 합병설은 없던 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곧바로 다시 해운사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또 내놓았습니다. 1조4천억 원 규모의 선박 펀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지원 대상 기준을 '부채비율 400% 이하'로 못 박았습니다. 당시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이 850%였고 현대상선은 2000%였습니다. 양대 국적선사에게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대책을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며 내놓았던 겁니다.
수술을 미루고 땜질 처방만 하는 사이에 골든타임의 막차까지 놓쳤고 지금 우리 경제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국내 1위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넘어가며 글로벌 물류대란의 주범이 됐고 2위 현대상선은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국내 해운업의 기반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죠.
Q. 해운업 구조조정의 실패가 골든타임의 교훈을 주는 셈인데요. 이웃 일본에서도 같은 전철을 밟았었죠?
A. 일본도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장기불황을 겪었죠. 관련해서 LG경제연구원에서 낸 보고서가 있습니다. '일본기업 구조조정 20년의 교훈'이라는 보고서인데 이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본 경제는 1990년에 주식시장, 그리고 이듬해 부동산 시장에서 연속적으로 버블이 붕괴되고 1992년에 성장률이 0%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기업과 정부는 이를 통상적인 경기부진 사이클로 간주해서 기존의 경영전략을 고수했습니다. 특히 제조업에서의 과잉설비, 과잉인력, 과잉채무 같은 3대 리스크의 근본적 해결책을 뒤로 미룬 채 원가절감, 경비 삭감 같은 통상적인 불황 대책에만 치중했죠.
금융권에서도 추가 지원을 계속해 부실채권 규모를 늘렸습니다. 최근 국내 국책은행들이 조선·해운 대기업들을 지원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불황이 이어지면서 점차 부실기업들이 늘어났고, 파장이 금융권의 경영 악화로 확산됐습니다. 은행과 증권사까지 쓰러진 겁니다.
일본기업들은 단기적인 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완만하게 이뤄지는 구조조정 방식을 선택했는데, 국가 전체적인 구조조정 기간이 길어지자 소비부진, 경제성장 부진을 벗어나기가 더 어렵게 됐습니다. 골든타임을 놓친 결과가 결국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으로 이어진 겁니다.
Q. 지나고 나서야 되짚어보면 “그때가 골든타임이었구나” 라고 알 수 있지만 지금 구호처럼 사용되는 골든타임은 조금 혼란스러운 면도 있어요?
A. 골든타임이라는 말이 어떤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는 구호로 참 유용하죠. 그래서 생긴 혼란입니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마지막 골든타임을 강조한 게 2014년 10월이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도약하느냐, 정체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렇게 말했었죠. 그리고 2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해운업 구조조정은 실패를 겪었죠. 그럼 골든타임은 지난 건가, 남아있다면 얼마나 남았나? 이런 궁금증이 들죠. 그런데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4월에 ‘8개월 남은 골든타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났죠. 그런가하면 경제부총리는 이달 초 “지금부터 2년이 우리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이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고무줄처럼 이렇게 마음대로 늘렸다 줄일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골든타임이 아니죠. 골든타임이라는 말은 그만큼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인데 이럴 때도 골든타임이고, 저럴 때도 골든타임이다, 그러면 정작 위기에 대한 인식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대응 또한 제대로 될 수가 없죠. 지금 우리경제, 3중, 4중 악재에 겹겹이 둘러싸여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지금이 정말 마지막 골든타임일 수 있는 겁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이 우리 경제 회복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렇게 봤을 때 시급한 과제가 뭘까요?
A. 무엇보다 구조조정의 밑그림이 제대로 마련돼야 합니다. 특히 이 밑그림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유동성 위기가 구조조정의 원인이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처럼 말이죠. 채권단이 빚을 덜어주고 신규 자금을 지원해주는 재무적 구조조정으로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글로벌 경제 상황, 산업 경쟁력 같은 구조조정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구조조정의 밑그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 때도 산업적 측면에 대한 고려보다는 과거처럼 여전히 금융위 중심으로 유동성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다 보니 파장이 커졌다 이런 비판도 나왔었죠.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도 정부가 글로벌 산업 재편에 대한 고민도 없이 구조조정에 임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죠. 예를 들어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면 앞으로 조선업을 어떻게 이끌지, 공급과잉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문제에 대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조선 뿐 아니라 다른 산업분야도 마찬가지죠. 밑그림이 제대로 그려져야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차茶경제: 차(茶) 한잔의 여유. 향기로운 차를 음미하듯 차병준 SBS 논설위원의 친절하고 품격있는 경제 해설을 만나 보세요.
* 기획 : 차병준 / 구성 : 윤영현 / 그래픽 : 임수연
차병준 기자cb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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