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짤 vs 고양이짤│① 당신은 개짤파입니까 고양이짤파입니까

아이즈 ize 글 위근우, 최지은 | 디자인 정명희 2016. 9. 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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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위근우, 최지은 | 디자인 정명희

개짤, 고맙다! 
온다 리쿠의 단편 ‘충고’는 다음과 같은 편지로 시작된다. “안녕하세오 신세 만아오 주인님 산책 공놀이 늘 고맙스이다.” 소위 ‘세오체’를 유행시킨 소설 속 반려견 존의 이 편지를 지배하는 정서는 두 가지다. 주인에 대한 애정, 그리고 주인에게 경고와 자기 사연을 오가며 전달하는 산만함. SNS를 통해 공유되는 개의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이하 개짤)에서 느껴지는 정서도 이와 거의 동일하다(‘충고’와 짝을 이루는 ‘협력’에서 고양이는 “사료 별로 사실은 시러 매일 닥가슴살로”라며 투정을 부렸다는 것은 굳이 문제 삼지 않겠다). 한 개짤에 나오는 강아지는 공과 나뭇잎, 개미 등 온갖 것들에 산만하게 정신을 빼앗기다가 이 장면을 화면에 담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뛰어간다. 털이 북슬북슬한 강아지는 그 자체로 귀여운 피사체지만, 개짤이 특별한 건 세상에 대한 개의 충만한 호기심이 사람에게 와 닿는 접점의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이 피사체로서 더 예쁘냐는 건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고양이가 개보다 더 포토제닉한 건 사실이다. 타고난 유연성과 균형감각으로 포즈를 잡고 도도한 표정까지 짓는 고양이는 숙련된 모델과도 같다. 간혹 털이 풍성한 종이 그나마 강아지일 때나 고양이 특유의 찹쌀떡 되기를 흉내 낼 수 있을 뿐이다. 숙련된 모델로서의 고양이는 보는 이의 시선을 ‘짤’의 프레임 안으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에 반해 개짤 속의 개는 그 특유의 산만함으로 끊임없이 프레임 바깥으로 튀어나오려 한다. 호기심, 관심받고 싶은 마음, 놀고 싶은 마음에 시선은 여기저기로 뻗어나가고, 고양이에 비해 스스로 잘 통제되지 않는 스텝은 엉키기 일쑤다. 이 ‘바보 멍뭉이’는 조용히 관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심심해오, 놀아주오, 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개의 산만한 움직임은 심장이 뛰는 생명체의 팔딱팔딱함을 프레임 바깥으로 뿜어낸다. 개짤을 보는 건 좀 더 놀이에 가까운 경험이다. ‘동물짤’은 언제나 우리를 위로해주지만, 개짤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더욱 큰 위로가 된다.

개짤을 보는 것이, 아무리 신나게 헐떡이는 개의 혓바닥을 보는 경우라 해도 종국에는 어떤 애틋함을 남기는 건 그래서다. 함께 호흡하는 기분을 느끼지만 1분이 채 되지 않는 영상은 금방 끝난다. 많은 경우 방방 뛰거나 쫄랑대는 모습을 일정 분량으로 잘라낸 개짤은 하나의 영상물로 딱 떨어지게 완결되지 않는다. 개짤의 열린 결말은 영상이 끝난 이후에 더 많은 감정을 불러온다. 저토록 좋아하는데 더 놀아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보고 더 놀고 싶다는 아쉬움이, 저 영상이 끝나고 카메라를 쥔 주인이 개와 재밌게 놀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남는다. 개들의 랜선 삼촌이 되어 사료 값이라도 주인에게 가끔 부쳐주고 싶은 강한 유대감. 물론 여전히 개짤이 더 우월하거나 매력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여간해선 쉽게 나아지지 않는 우리의 삶에서, 고기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야구를 보는 것처럼 개짤을 보는 건 일상을 지탱해주는 작지만 효과적인 즐거움이다. 개짤에 가장 어울리는 형용사는 그래서 ‘예쁘다’, ‘귀엽다’가 아닌 ‘고맙다’다.
글. 위근우

고양이짤, 모두가 포토제닉!
특별히 고양이짤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다. 휴대폰에 내 사진보다 고양이 사진이 열세 배 정도 많고 휴대폰과 노트북 바탕화면에서는 뾰족한 앞니를 드러낸 고양이가 포효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쩌다 보니 지울 시간이 없었던 것뿐이다. 좁은 아파트에 사는 고양이 알레르기 환자에겐 모니터 속 고양이가 낙이라 트위터의 @EmrgencyKittens이나 @cat_bot_kr@Number10cat 같은 계정을 보는 족족 팔로우하기는 했어도 따로 고양이 리스트를 만들어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텀블러에서 #catsofig(cats of instagram의 약자)을 눌러보다 거기 딸린 #kedi가 터키어로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냥… 우연이다. 

다만 바스테트(고양이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고대 이집트의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고양이는 세상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동물이라는 진리를. 물론 인간에게 과분할 만큼 우호적이고 씩씩한 개들이 온몸으로 부딪혀오는 애정 표현을 포착한 짤들은 정말 사랑스럽고 종종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귀여움의 총체를 동물로 빚어놓은 듯한 레서판다나 사막여우는 모니터를 뚫고 들어가 한 번만 쓰다듬어보고 싶을 만큼 경이롭다. 그러나 개와 함께 인간의 생활 영역을 가장 널리 공유하고 자신이 ‘선택한’ 인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인간 따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태도로 살아가는 고양이의 매력은 종과 생김새를 떠나서 언제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늘씬하고 유연한 골격, 품위 있는 포즈,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고양이의 눈동자는 프로포션과 다양한 표정까지 훌륭한 모델로서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자신을 돌봐주는 집사의 목덜미나 키보드 위, 쌀독 안까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뚱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고양이의 당당함 혹은 뻔뻔함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낱 인간 주제에 만물의 영장인 양 착각하지 말고 겸허하게, 내일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오늘 한 캔의 닭 가슴살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토록 도도한 생명체들이 가끔 보여주는 놀라운 멍청, 아니 빈틈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고양이짤(한 연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지구 상의 인터넷에 올라온 고양이 이미지는 65억 장을 넘어섰다)이 여전히 지루하지 않은 이유다. 무분별하게 흡입한 캣닢에 만취해 해롱대고, 창틀로 멋지게 뛰어올랐다가 착지에 실패해 추락하고, 옷걸이 테두리에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어찌할 바를 몰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억지로 목욕을 당하는 바람에 물에 빠진 요다 선생 같은 애처로운 꼴로 이 원수는 결코 잊지 않겠다는 듯 애써 위엄 있게 카메라를 쏘아보는 고양이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저장하지 않을 수… 이게 아닌데.

1964년 출간된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의 저자, 고양이 ‘치자’는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친절히 설명한 바 있다. “고양이가 인간 세계로 들어가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접수하다’보다 좋은 표현은 없을 거야.” 고양이가 인간의 오프라인 세계뿐 아니라 온라인까지 접수해버리는 데는 그 후 5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이면서 무해한 정복자가 고양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있을까? 있다면, 그건 다 개소리다냥!
글.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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