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오락도 운동도 "우린 집에서 한다"

2016. 9. 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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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은둔형 외톨이’와 달리 사회생활·집생활 적극 즐기는 ‘집콕족’이 사는 법

일과 여가를 같은 장소서 할 수 있도록 꾸민 건축설계사 박하연씨의 서울 서초구 집.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밖보다 집안을 더 좋아하는 ‘집콕족’이라고 해서, 모두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쉼’ 자체에 집중하는 유형도 있지만, 집 밖에서보다 더욱 활발한 시간을 보내는 유형도 있다. 각자 자신에게 최적화된 ‘놀이법’이 있다는 얘기다. 조금씩 다른 집콕족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살펴봤다.

집은 곧 일터…생산형

건축설계사 박하연(37·서울 서초구)씨는 집이 곧 일터다. 따로 사무실을 두지 않고 집을 사무실로 쓴다. 25일 찾은 그의 집은 건축설계사다운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보통 집이라면 커다란 소파가 차지할 거실 한가운데엔 맞춤형 원목 테이블을 놓았다. 일반 사무실의 책상보다 훨씬 커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해 보였다. 웬만한 텔레비전만한 애플 아이맥 피시(PC) 모니터가 있었지만 책상 위는 여유로웠다. 거실 한쪽엔 고급스러운 1인용 가죽 소파를 뒀다.

음악과 영화를 워낙 좋아해, 꽤 돈을 들여 홈시어터 시스템도 마련했다. 스크린은 거실 한쪽의 흰색 벽으로 대신했다. 이곳에서 일을 하다, 자체적으로 정해진 퇴근 시간이 오면 업무를 중단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영화를 본다. 집 안에서 출퇴근이 이뤄지는 것이다.

보통 가정집에서 쓰는 형광등은 거의 켜지 않고, 할로겐 램프만 켜둔다. 집인지 분위기 좋은 카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남편도 그렇고, 어디 나가기보다는 집 안에 원하는 걸 마련해두고 즐기는 편이에요. 건축 현장에 나갈 경우 빼고는 거의 나갈 일이 없어요.” 그에게 집은 직장이자 카페, 영화관이다.

영화 컴퓨터 그래픽 관련 일을 하는 백수아(29·서울 서초구)씨도 집에서 영화를 보며 평소 업무를 구상한다. 특히 영화에서 사용된 컴퓨터 그래픽을 보며, 제작 과정을 상상한다. 컴퓨터 그래픽은 여러 개의 레이어(층)로 이뤄지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것을 머릿속에 그려서 보는 것이다. 여가 시간이 작업의 연장선인 셈이다.

집에서도 일 생각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백씨는 “집 안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불특정 다수를 마주해야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자체가 일종의 ‘소모’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회사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니, 회사 외의 생활에서는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독립적인 공간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업무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지만, 스트레스는 훨씬 덜한 것이다.

피시(PC)방 못지 않은 고성능 컴퓨터로 집 안에서 게임을 즐기는 배준하(29)씨. 배준하씨 제공

“적극적으로 놀자”…엔터테인먼트형

적극적인 투자로 집 밖에서 하는 것 못지않은 유흥을 즐기는 유형도 있다. 배준하(29·경기 파주시)씨는 자신의 방을 피시(PC)방 못지않게 꾸며놓았다. 아니, 컴퓨터 사양으로만 보면 피시방 이상이다. 고성능의 그래픽 카드를 사는 데만 100만원 가까이 썼다. 모니터도 2대다. 사운드카드와 키보드, 마우스까지 전부 프로게이머용이다. 그는 자신의 고성능 피시에서 최근 인기를 끄는 ‘맥스 페인’이나 ‘오버워치’ 같은 타격 게임을 즐겨 한다.

그렇다고 그가 프로게이머는 아니다. 최근까지 스포츠마케팅 회사를 다닌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지금은 다른 회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게임중독일까?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한다. 출근을 하지 않는 요즘에도 매일 아침 7~8시면 일어날 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한다.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사람과는 대결을 절대 하지 않아요. 컴퓨터하고만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만 게임을 하고요.”

집은 배씨가 ‘전문성’을 기르는 곳이기도 하다. 1주일에 3~4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게임방송을 직접 진행한 지가 어느새 1년이 됐다. 예전엔 게임 개발회사인 넥슨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한 적도 있고, 앞으로도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게 장기적인 꿈이라 차근차근 준비를 해온 것이다.

“왜 집이 더 좋냐고요? 모든 게 저한테 최적화돼 있잖아요. 피시방보다 컴퓨터 사양이 더 좋으니 나갈 이유도 없고요. 집은 제게 가장 좋은 놀이터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그가 오락에 투자하는 이유다.

끊임없이 ‘꼼지락’…부지런형

스마트폰 앱 개발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노혜란(25·서울 강남구)씨는 집에 오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가만히 앉아 쉬는 게 답답하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는 등의 야외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업무 특성상 외근도 많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까닭에 퇴근 뒤엔 집 안에서 보내고 싶어요.” 사람 만나는 일이 지치기도 할 터, 집에 혼자 있으면서 휴식을 취한다는 얘기다.

노씨는 주중 저녁엔 거의 한밤이 다 돼서야 퇴근한다. 집에 들어오기 전엔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한두 캔 산다. 처음엔 호기심에 외국 맥주를 마셨는데 요즘엔 ‘클라우드’를 주로 마신단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가성비가 좋다. 보통 평일엔 그렇게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든다.

주말엔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난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최근 소도구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유튜브 등에서 영상을 찾아보고 독학을 했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 학원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운동을 하고 나선 요즘 새롭게 빠진 취미인 ‘커피’를 마신다. 물론 커피도 혼자 터득했다. “인터넷에 정보가 많아 굳이 따로 나가 배워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요.” 다양한 원두를 사서 직접 갈아 핸드드립으로 마시는데, 케냐에이에이(AA), 이르가체페, 에티오피아 원두를 좋아한다.

커피를 마신 뒤엔 음식을 해 먹는다. 예전엔 주로 배달을 시켰는데 요즘엔 요리책을 보고 직접 해 먹는 걸 즐긴다. 그 뒤엔 밀린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맥주도 곁들인다. 남은 시간엔 밀린 집안일도 한다.

“가만있진 못해요. 뭔가 계속하는데 시간이 금방 가요. 그런데 정말 편해요. 히키코모리요? 신경 안 써요. 제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꼭 클럽에서 놀아야 노는 건가요.” 노씨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쉬는 게 남는 것”…잉여형

아무것도 안하는 ‘잉여형’도 집콕족의 한 사례다. 평소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푸는 쪽이다. 특별하게 적극적인 취미 생활 없이, 소파에 누워 있거나 음악을 듣는 등 정적인 쉼으로 하루를 보낸다.

“쉬어야 다음날 일을 하죠.” 대기업 회사원 정윤수(40·경기 성남시)씨는 휴일엔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쪽이다. 최근 임신한 아내의 거동이 불편한 탓도 있지만, 부부 모두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좀 달라질지 모르지만, 저희 부부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무조건 쉬자는 쪽이에요.”

원래 정씨 부부도 주말엔 야외 활동을 즐기는 쪽이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부대끼는 사람들과 교통체증에 ‘왜 이렇게 주말을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야외 활동할 때보다 집 안에서 하루 종일 쉬고 출근하면 훨씬 피로가 덜하더라고요. 오히려 업무도 잘되고요. 경제적인 이점도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남는 거다’로 합의가 됐어요.”

아내가 임신하기 전엔 정씨 부부는 쉬는 날엔 밥도 잘 안 해 먹었다. “몸 움직이는 걸 최대한으로 줄여요. 디톡스 개념으로 곡물로 된 선식을 물에 타 먹거나 과일 몇 조각으로 밥을 대신하죠. 어디 나가서 외식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라니까요. 이건 히키코모리가 아니에요.” 정씨가 자신있게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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