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결국 후견인 지정..신동빈에 '유리'

이정국 기자 2016. 8. 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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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95) 총괄회장에게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이 필요하다는 법원 판결이 오늘 내려졌습니다.

정신적 문제 탓에 신 총괄회장의 판단·사무처리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으로, 현재 경영권 분쟁 중인 신동주·동빈 두 아들 가운데 차남 신동빈 롯데 회장에 더 유리한 소식이라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이에 불복, 항소하겠다고 밝혀 곧바로 후견이 개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항소 이후 후견이 확정되면 그동안 "아버지(신격호) 뜻"이라며 승계의 당위성을 주장한 신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 대표·최대주주 자리를 내놓고, '독점'해온 신격호 총괄회장의 신병도 넘겨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2013년 도입된 성년후견인제는 질병·장애·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법원이 의사를 대신 결정할 적절한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로, 과거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제도를 대체한 것입니다.

후견 대상의 정신건강 문제 정도에 따라 후견의 종류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 등으로 나뉩니다.

성년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됐다고 판단될 경우, 한정후견은 같은 이유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 지정됩니다.

오늘 가정법원은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성년후견인보다 한단계 낮은 '한정후견' 개시를 결정했지만,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상 문제를 법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구나 한정후견의 경우 법원이 후견인이 대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행위 목록을 정해주는데, 이번 판결문에 따르면 부동산 처분, 재산 관리, 소송 등 중요 행위에 대해 후견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신 총괄회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주요 사무는 거의 없습니다.

후견인 신청자(신격호 총괄회장 여동생 신정숙씨)측 법률대리인은 "한정 후견이라고해도 후견인 대리권 항목이 매우 포괄적이라 사실상 성년후견인에 가까운 결정"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정신건강 문제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법정 권한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당장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 꼭대기에 있는 광윤사의 대표와 최대주주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 지주회사격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를 보유한 한일 롯데그룹의 뿌리이자 지배구조상 핵심기업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그룹 경영권 차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지난해 10월 14일 광윤사는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잇따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등기 이사에서 해임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을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신할 광윤사 새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아울러 이사회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 1주를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넘기는 거래도 승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신동주 전 부회장은 광윤사의 과반 최대주주(50%+1 지분)이자 대표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1월 신동빈 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광윤사 지분 획득과 대표 선임 모두 서면으로 제출된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지만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논란이 있는만큼 효력이 없다"는 취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후견 개시 사실을 참고해 일본 법원이 신동빈 회장의 손을 들어줄 경우, 신 회장은 광윤사 이사로 복귀하는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대표이사직과 과반 최대주주 지위를 모두 잃게 됩니다.

신 전 부회장은 지주회사 롯데홀딩스 주요 주주 가운데 광윤사의 지분(28.1%)을 더 이상 확실한 우호지분으로 내세우기도 어렵게 됩니다.

홀딩스 주총 표 대결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이길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낮아진다는 얘기입니다.

롯데도 신 총괄회장의 후견 개시 결정 직후 "총괄회장에게 법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며 "정상적 의사 결정이 어려운 총괄회장의 건강상태가 그릇되게 이용된 부분들, 사업적 혼란을 초래한 부분을 순차적으로 바로잡아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후견 개시는 '신격호 총괄회장을 누가 보필하느냐', '누가 신 총괄회장의 곁을 지키느냐'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수십년 동안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그룹(비서실)의 수발을 받았으나, 지난해 10월 이후로는 신동주 전 부회장과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16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설립한 SDJ코퍼레이션 인사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을 찾아 자신들이 신 총괄회장을 보필하겠다고 주장하며 집무실 안팎에 자기 사람들을 배치했습니다.

이들은 같은 달 19일 롯데그룹 소속 신격호 총괄회장의 비서실장 이일민 전무까지 해임했습니다.

이 모든 주장과 점거 행위의 근거가 된 것은 신 총괄회장의 친필 서명이 담긴 한 장의 '통고서'였습니다.

통고서에는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 주변에 배치해 놓은 직원들을 즉시 해산 조치하고 CCTV를 전부 철거할 것" 등의 요구 사항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후견 결정으로 일단 이 통고서상 신 총괄회장 자필 서명의 진의나 작성 과정 등이 의심받게 됐습니다.

동시에 법원이 신 총괄회장의 후견인으로 경영권 분쟁 당사자들을 피해 사단법인 '선'이라는 제 3자를 지정했기 때문에, 신 총괄회장의 신병도 향후 이 후견인이 확보하게 됩니다.

신 총괄회장은 현재의 거처(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서 그대로 머물되 관리를 후견인측에서 맡는 형태가 가장 유력합니다.

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측이 '항소'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당장 후견인이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대리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신 전 부회장측 법률대리인과 홍보대행사는 "사건 본인(신격호 총괄회장)이 일관되게 성년후견에 대해 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각종 진료기록과 의사 등 검증자료에서도 판단능력 제약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한정후견 개시 결정에 승복할 수 없고, 즉시 항고 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후견인의 대리권은 판결이 확정돼야만 유효한 만큼 만약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계속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 이후 다시 상고 등의 절차를 밟을 경우 신격호 총괄회장의 후견 개시 최종 결정까지는 6개월 이상 시간이 더 소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롯데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에게 정신건강상 문제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만큼 항소나 상고 등으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일단 신 총괄회장을 제대로 보필할 수 있도록 관할권을 롯데에 넘겨주기를 바란다"고 신동주 전 부회장에 제안했습니다. 

이정국 기자jungkoo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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