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가습기 살균제는 세계적 참사"

2016. 8. 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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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 가습기 살균제 참사 다룬 <빼앗긴 숨> 출간

처음에는 까마귀였다. 제대로 날갯짓을 못하고 뚝 떨어졌다. 다음은 고양이었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 다음이 사람이었다. 경련을 일으키고 고통스러워하다 이유를 모른 채 죽어갔다. 수은에 중독된 어패류를 먹은 것이 원인이었다. 1956년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발생한 ‘미나마타병’ 이야기다.

미나마타병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공해병의 대명사다. 사망자 1784명을 포함 지역주민 2265명이 희생자로 후생성에 공식 집계됐다. 1만명은 정부로부터 피해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칫소사(신일본질소주식회사)로부터 배상을 받았다. 칫소사의 보상 부채의 총합이 약 1억7000만 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공해병’으로 쉽게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이 아픈 데에 공통의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에 이르는 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칫소사에서 바다에 수은을 무단 방류해 오염시킨 것이 원인이었지만 공장 측의 은폐와 지방정부의 비호로 이 사실이 알려지는 데는 몇 년이 걸렸다. 주민들의 부단한 노력과 일본인 아내를 둔 미국인 저널리스트 유진 스미스의 활약, 구마모토대학 호소카와 하지메 교수의 학자적 양심과 끈질긴 노력 덕에 사태의 진실이 드러났다.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룬 책 <빼앗긴 숨>을 출간한 이유다. ‘재앙의 사회화’를 통해 재앙을 넘어서기 위해서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참사”

참사공화국인 한국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드문 케이스다. 미나마타병과도 달리 특정한 장소에서 한날 참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은 소비자이며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다. 수많은 기형아 출생을 야기한 독일의 입덧 완화제 ‘탈리도마이드’ 사태와 유사한 점이 있다. 안 운영위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살생제) 참사”라며 세계적 참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4000명 넘게 피해를 호소하고, 그 중 800명 넘게 사망한 규모부터가 우선 세계적이다. 독성물질과 소비사회라는 현대문명으로 인해 발생한 참사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의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가 대표적으로 타깃이 됐지만 옥시만이 원인이 아니다. 안 운영위원은 참사를 보다 구조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건조한 날씨가 있어야 가습기를 많이 사용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파트라는 집단 거주형태가 보편화돼서 가습기를 많이 사용하게 됐어요. 여기에 피해자들을 면담하다 보면 살균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주의에 대한 맹신도 있고, 이런 조건을 기업들이 이용한 것입니다.”

책에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둘러싼 ‘안’과 ‘밖’의 이야기가 나온다. 문화적 요인이 참사의 토양이 됐지만 책임의 경계를 흐리지 않는다. 싹을 틔운 것은 엄연히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책임이라고 말한다. 물에 희석시켜 가습기에 붓는 방식의 살균제는 농약을 분무기에 넣어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독성학자라면 위험을 모를 수 없다.

“책임은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로 개발한 유공(현 SK케미칼)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우선 이런 위험한 물질을 만들면서 최초 개발자가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흡입독성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독성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제대로 하려면 똑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해야 합니다. 가습기 물에 푼 상태에서 흡입할 때 어떻게 되는지요. 하지만 1994년에 국내에 그런 실험을 할 만한 장치가 없었고, 그래서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에 맡겼는데, 당시 실험용 쥐의 코 끝에 독성 방울을 떨어뜨리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독성실험을 했다고 넘어갔습니다. 그때 제대로 흡입독성실험을 하기만 했어도 이런 막대한 참사의 문은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품을 관리하지 못하고 출시되도록 만든 정부의 책임이 있지요. 설령 당시는 몰랐다 하더라도 문제가 불거지면 국민 안전을 위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책임도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기업이나 정부뿐이 아니다. <빼앗긴 숨>의 첫 장은 언론이 잘못 알린 사실로 시작한다.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홍순종 교수가 2008년 질병관리본부에 환자들의 발병 사실을 알려 역학조사를 시작하게 만든 ‘영웅’이라는 신화에 대해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산부인과 의사들의 요청을 받아 조사를 시작했고, 조사과정에서 2006년 소아과에서도 비슷하게 원인불명의 호흡기 질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아과 의사들은 오히려 참사의 존재를 더 일찍 알릴 수 있었는데 그럴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언뜻 보면 책의 1장으로 선택할 만한 주제일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조성해 물건을 파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라면, 그 기업의 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어 잘못된 불안이나 공포가 확산되게 한 책임이 있습니다. 전 국민이 살균 내지 항균에 중독된 까닭에는 언론의 잘못도 큽니다. 가령 신발 항균제를 홍보하는 기사를 쓰면서 꺼림칙한 무좀 이야기를 건드립니다. 그러나 무좀은 세균이 아니라 곰팡이가 원인이에요. 이런 식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참사의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항균, 살균에 중독은 언론의 잘못도 커”

안 운영위원은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나온 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환경보건 및 산업보건 전공으로 환경보건학 석사,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서울신문> 기자로 출발해 1988년부터 2004년까지 <한겨레신문>에서 사회부장, 보건복지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1988년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를 취재했으며, 전국석면추방네트워크 자문위원 등의 직책을 맡아오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학자로서, 시민운동가로서 환경참사와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다.

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원진레이온은 한국에서 직업병 관련 제도 개선에 크게 기여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직업병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서 공식적으로 76명이 죽었습니다. 석면도 대부분 노인들이고, 특히 석면 배출의 원인이 된 광산 운영자들은 대부분 죽어서 책임소재도 불분명하고, 광산노동자가 아닌 마을주민 피해자들은 보상받을 길도 막막하죠. 결국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윤을 먼저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수렴됩니다. 정치·사회 세력이 그런 시스템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참사의 ‘바깥’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시스템이라면 참사의 ‘안’은 사람이다. 참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빼앗긴 숨>에는 출산박람회에 갔다가 무심코 가습기 살균제를 샘플로 받아와 사용하게 됐고, 이로 인해 아이까지 잃게 된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 손으로 산 물품이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피해자들에게 크게 작용한다. ‘내가 그것만 안 사왔어도’라는 자책은 때로는 가족을 향한 원망으로 향하기도 한다. 가정불화까지 겪는 경우가 많다. 119 구급대 아버지가 아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고, 전직 운동선수도 건강을 잃었다. <빼앗긴 숨>에서는 기존 언론에 보도된 슬픈 사례 대신 슬픔을 최대한 견디며 싸움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는 것, 사람들의 망가진 삶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되돌리고자 사회가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참사를 이겨내는 힘이다. 제목을 ‘빼앗긴 숨’이라 지은 이유기도 하다. “숨쉬는 건 생명의 기본이잖아요. 그 숨을 누가 빼앗아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안 운영위원은 29일 <빼앗긴 숨> 출판기념회를 연다. 지금껏 7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책의 수익금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에 사용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부당한 기업과 무책임한 정부에 맞서 시민들의 힘으로 건강을 지켜낸 사례로 우뚝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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