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모나드 대통령 / 고명섭

2016. 8. 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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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명섭
논설위원

사드 사태부터 우병우 사태까지 나라가 총체적 난국이다. 이 난국의 한가운데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다 보면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얘기한 모나드(monad)가 떠오른다. 모나드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적 실체인데, 모나드의 전형적인 모습은 ‘지각 능력이 있는 영혼’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요컨대, 살아 있는 사람이 모나드다. 라이프니츠는 이 모나드의 근본 특징으로 폐쇄성과 자족성을 꼽는다. 모나드에는 창문이 없다. 창문이 없으니 안과 밖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막혀 있다면 보통은 답답함과 고립감을 느낄 텐데 모나드는 답답함도 고립감도 느끼지 않는다. 홀로 있어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자족적인 존재가 모나드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모나드 같은 모습이 드러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집권 초기의 ‘통일대박론’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지 이제 우리는 훤히 안다. 대통령의 통일대박 노래는 통일을 향한 현실적인 노력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급변으로 불시에 통일이 닥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기댄 것이었다. 남재준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2015년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고 큰소리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본 것은 남북 갈등의 격화와 북한 체제의 공고화였다. 북한은 2016년 벽두에 제4차 핵실험을 벌인 데 이어 지난 24일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마저 성공했다. 사드 배치 결정이 몰고 온 후폭풍은 더욱 심각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외교장관 회담에서 외교적 겉치레를 다 걷어내고 ‘사드 배치 강행이냐, 한-중 관계 유지냐’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이 지경까지 왔으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할 법도 한데 대통령은 ‘사드는 북한 위협 대비용’이라는 씨도 안 먹히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모나드가 바깥 세계를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가 흐리기는 하지만 거울처럼 세상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사태에 더 어울리는 비유는 거울이 아니라 마법의 유리구슬이다. 이 유리구슬은 주인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구중심처에서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접하면서 스스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광복절 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신조어를 쓴다고 국민을 타박하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온 나라가 우병우 비리 의혹으로 벌집 쑤셔놓은 듯한데 그런 문제에는 눈도 주지 않고 “모두가 스스로 가진 것을 조금씩 내려놓고, 어려운 시기에 콩 한 쪽도 나누며 이겨내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청맹과니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현실은 대통령이 유리구슬로 보는 세상과는 딴판이다. 나라 경제는 골병들어 비탈에 선 지 오래다.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이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나라에서 ‘헬조선’이라도 입에 올려야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모나드형 인간은 무지의 상태에 빠지기 쉽다. 최악의 무지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무지’다. 이 이중의 무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설명해준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서는 소통의 가능성도 경청의 가능성도 나오지 않는다.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무지를 깨려는 노력을 할 텐데, 이중의 무지에 갇혀서는 그런 노력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나드는 파괴될 수는 있어도 변하지는 않는다고 라이프니츠는 말한다. 모나드 대통령은 자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난국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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