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대책 진단①] 지갑 닫게 하는 '숨은 빚'이 진짜 문제

김현주 2016. 8. 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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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어, 국내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5일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는 그동안 정부 대책과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잡히지 않는 가계부채 급증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부채는 1257조3000억원으로 2분기(4∼6월)에만 33조6000억원 늘었다. 특히 은행보다 새마을금고·저축은행·상호금융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가계부채, 민간소비 위축…금융 안정에 위협

가계부채는 민간소비를 위축시키고 금융안정을 흔들 수 있는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정부와 한은이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진단할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올해 2분기에도 은행권의 대출수요가 비은행권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가계대출 증가액 32조9000억원 가운데 예금은행 대출은 17조4000억원이고, 나머지 15조5000억원은 비은행권에서 빌린 금액이다.

특히 상호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상호금융·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10조4000억원으로 작년 2분기(5조원)의 2배를 뛰어넘었다. 올해 상반기 비은행권 전체의 대출 증가액은 24조400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8조6000억원)의 2.8배 수준이다.

정부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올해 2월 수도권에 도입한 데 이어 5월에는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대출 증가세는 둔화됐지만 비은행권 대출은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비은행권은 상대적으로 이자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가계부채의 질이 악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소득심사 허술, 집단대출 급증세도 문제

소득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집단대출의 급증세도 문제로 꼽힌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차주 개인의 상환능력을 심사하지 않고 중도금과 잔금 등을 빌려주는 은행 대출상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집단대출 잔액은 121조8000억원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11조6000억원 늘었다. 집단대출은 올해 상반기 은행 주택담보대출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가계부채 총량의 증가 속도도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다. 올 상반기 가계신용 증가액은 54조200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46조2000억원)보다 17.3%(8조원)나 많다. 이런 속도가 하반기에도 이어진다면 연말에는 13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가계대출은 1분기에 연말 상여금, 주택거래 감소 등의 영향으로 증가세가 둔화하고, 연간 기준으로는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더 많이 늘어나는 계절성을 보인다. 더구나 '숨은 가계 빚'으로 불리는 자영업자 대출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훨씬 늘어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251조6000억원이다. 작년 7월(226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1년 동안 25조2000억원 불었다.

◆자영업자 대출, 대부분 생계 목적으로 빌린 돈

자영업자 대출에는 가계가 생계 목적으로 빌린 돈이 많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할 경우 넓은 의미의 가계부채는 150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빚을 늘린 주체는 가계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증가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2014년 8월 내수 진작을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완화했다. 한은도 2014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p 내렸다. 금리가 갈수록 낮아지고 부동산 규제까지 완화되면서 너도나도 집을 사려고 대출에 나선 것이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다양한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우선 현재 가계부채 총량만으로 민간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소득층 △자영업자 △다수의 금융기관에서 빌린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원리금(이자와 원금) 상환부담으로 지갑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6년 2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1분기 이후 최저치다.

나아가 가계부채는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한은은 가계부채 대부분이 소득자산분위 및 신용등급에서 상위계층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부채 보유가구의 금융자산은 금융부채의 1.5배나 되고 총자산은 총부채의 4.4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은 작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 하강 등으로 가계대출이 부실화할 경우 금융기관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가계부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관계 당국이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점은 심각하다. 지난해 한은은 신용정보회사인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100만명의 금융권 대출 정보를 받아 가계부채 DB를 구축했다.

◆가계부채 상환여력 파악 어려워…관련 통계 시급히 보완해야

그러나 이 자료는 대출받은 가계의 소득 및 자산 정보가 빠져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가계의 상환 능력을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현재 가계부채 증가 속도나 총량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지난해 19대 국회 당시 정희수 기획재정위원장은 한은이 금융사·세무당국·신용정보집중기관 등으로부터 대출자의 부채·소득·자산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국세청이 개인정보 공유에 난색을 보이는 등 관계기관 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통계자료를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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