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쓰룸] '보성고' 학생 110명 독도에 가다

디지털뉴스부 2016. 8. 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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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밤 11시가 지난 야심한 밤. 서울 보성고등학교 교정에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빛도 없는 교정에 모인 학생들은 100여 명.

선생님이 학생들의 명단을 들고 이름을 부르며 출석을 확인하느라 한동안 교정은 떠들썩했다. 이윽고 관광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출발한 시간은 자정이 지난 0시 30분. 4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북 울진의 후포항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학교에 모여 새벽 이른 시간에 울진까지 달려온 건은 독도에 들어가는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후포항에서 울릉도를 거쳐 독도에 들어가는 배는 오전 8시 20분에 출발한다.

보성고는 개교 110주년을 맞아 학생과 교사, 졸업생 110명으로 이뤄진 '민족 보성 독도 탐방대'를 결성했다. 이를 위해 7월 26일 국회에서 독도아카데미와 함께 독도 탐방 발대식도 열었다.

7월 26일 국회의원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민족 보성 개교 110주년 기념 나라사랑 국토사랑 독도 대탐방’ 발대식


보성고가 이렇게 독도 탐방대를 결성한 것은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성고는 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1906년 고종황제의 명으로 설립된 학교다. 고종황제는 興學敎 以扶國家(흥학교 이부국가 : 학교를 세워 나라를 떠받치다.)의 기치로 '널리 사람됨을 이루라'는 뜻의 普成(보성)이란 교명을 내렸다.

이 명을 받은 탁지부대신 이용익 선생이 주도해 보성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이용익 선생이 숨지고 학교 운영이 어려워지자 3.1 독립운동의 민족대표 중 한 분이었던 천도교 3대 교주 의암 손병희 선생이 학교를 인수해 전통이 이어졌다. 3.1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가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천도교가 운영하던 출판사였던 보성사에서 인쇄됐다. 보성사는 당시 보성학교 자리에 있었다.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옛 박동)에 있던 보성고등학교의 옛 교사 모습. 일제시대인 1918년에 찍은 사진으로, 문패를 보면 보성전문학교, 보성학교, 보성초등학교, 보성사(출판사)가 한 자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성고 학생들은 이른 아침 식사를 한 뒤 독도에서 할 퍼포먼스 연습을 마쳤다. 드디어 울릉도로 가는 쾌속선에 탑승해 8시 20분에 출발했다.

배는 생각보다 컸다. 많은 관광객도 보성고 학생들과 울릉도로 향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배는 거친 파도에 출렁거렸다. '과연 독도에 들어갈 수 있을까?' 불안감을 스멀스멀 밀려왔다. 거친 파도에 배가 지체돼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울릉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경.

학생들은 소풍이라도 온 듯 울릉도 선착장 대합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먹었다. 식사 후 드디어 독도행 배에 올랐다. 울진 후포항에서 울릉도로 타고 왔던 그 배였다. 울릉도에서 더 많은 관광객이 탑승해 배는 꽉 찼다.

독도로 가는 쾌속선에서 내리는 보성고 학생들


독도로 가는 길, 파도는 여전히 높았다. 바람이 거세 뱃가에 매달린 깃발이 거세게 휘날렸다. 여기까지 와서 독도에 발도 못 딛고 돌아가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렸을 때 배 안이 웅성거렸다. 마침내 저 멀리 독도가 점으로 다가왔다. 배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독도는 목을 뒤로 쭉 빼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기운이 넘쳤다.

동해의 망당대해에 독도는 우뚝 솟아 있었다. 등대가 있고 경비대원이 거주하는 동도에는 해안 침식에 의한 굴과 화산섬의 특징인 주상절리가 발달해있었다. 동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98.6m)는 조선시대 기록에 의해 우산봉이라고 불린다.

독도 전경. 왼쪽으로 보이는 높은 곳이 서도이고, 멀리 경비대가 정상에 들어선 곳이 동도이다.


동도는 우리나라 최동단에서 우리 영토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동도가 외로울까 봐 150m 떨어진 곳에 형님처럼 서 있는 서도. 대한봉(해발 168.5m)이 우뚝 솟아 있어 가파른 경사에 절해고도란 말이 실감 나는 웅장한 풍채를 간직했다. 서도에는 김성도·김신열 부부가 1991년부터 거주하면서 독도를 지키고 있다.

서도의 모습, 해발 168.5 미터의 대한봉 밑에 김성도.김신영 부부가 사는 주택 모습이 보인다.


파도에 흔들리며 배가 동도 선착장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선착장에 늘어선 해양경찰들이 우리에게 경례했다. 배를 대도 좋다는 신호였다. 만약 파도가 심해 접안이 불가능하면 경찰들은 손을 흔든다고 한다.

처음으로 독도에 받을 내딛는 우리는 감격했다. 독도의 땅은 정갈했고, 주변의 바다는 바닥이 다 비출 정도로 투명했다. 독도의 땅을 만지고 바닷물에 손을 적시는 학생들이 많았다.

보성고 독도 탐방대는 독도 선착장에서 개교 110주년 퍼포먼스를 했다. 우리는 "민족 보성 개교 110주년! 독도는 우리 땅! 흥학교 이부국가(興學敎 以扶國家)!"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보성의 건아들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아직도 야욕을 노리고 있는 일본을 향해 반드시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나갈 것을 결의했다. 이어 보성 교우회에서 준비해 온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했다.

독도에서 개교 110주년을 맞은 학생과 교우회원, 교직원들이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모금 행사를 했다.


정재영 보성고 교우회 회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서 독도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보성고 2학년 김동규 학생은 "독도라고 하면 사진으로만 봤었던 추상적인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직접 독도를 보면서 생생하게 독도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형송 보성고 교감은 "1956년 8월 보성 대선배들이 독도를 탐방한 이래 60년 만의 탐방에 교우회장을 비롯한 교우회 선배들과 재학 중인 후배들이 보성 역사와 전통의 가치 계승을 다짐했다는 점과 독도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동북아역사 문화재단의 독도아카데미와 함께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고 말했다.

보성고 학생들은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귀에 박히도록 '독도는 우리 땅'이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그 외침은 그저 멀리서 들리는 딴 세상의 얘기처럼 여길 뿐, 독도를 제대로 아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2016년 8월 19일, 나라를 부흥하기 위해 세워졌던 보성고등학교가 개교 110주년을 맞아 110명의 정예 학생이 독도를 체험하러 나섰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교실에서 공부 한자 더하는 것보다, 민족 보성고는 우리 국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체험을 하며 개교 110주년을 기념했다.

독도에 머문 시간은 약 30여 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멀어져 가는 독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독도는 서기 512년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으로 복속한 뒤 천5백 년 동안을 동해의 거친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기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보성고 학생들은 떠나지만, 독도는 언제까지나 제자리를 지키며 영원히 우리 땅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보성고 1학년 서현수 tjgustn2000@naver.com
보성고 1학년 이상근 sangk0809@naver.com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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