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말고 옛 주소 불러주세요"..4천억들인 도로명주소 야식배달에 걸림돌?

강수윤 2016. 8. 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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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강수윤 기자 = #1.안산 단원구에 사는 김모(44)씨는 지난주말 올림픽을 보다가 오후 11시께 배가 고파졌다. 김씨는 치킨을 주문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치킨집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김씨가 사는 지역에 있는 프랜차이즈점으로 연결시켜주기 위해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다. 김씨는 새 도로명주소를 불렀으나 담당직원은 옛날 주소(지번주소)를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2. 서울 방배동에 사는 임모(60)씨는 홈쇼핑으로 얼마전 미용기기를 주문했다. 배송 당일 예정시간까지 택배가 도착하지 않자 임씨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뒤 택배기사는 전화를 걸어 새 도로명 주소가 익숙치 않아 헤매고 있다며 지번주소를 가르쳐달라고 임씨에게 재차 물었다. 임씨가 옛 주소를 가르쳐주자 택배기사는 5분만에 도착했다.

2014년 1월부터 전국에서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돼 2년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는 기존 지번 주소가 썼던 동·리, 아파트 이름 대신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건물번호를 사용하는 새 주소 체계다. 현재 지번주소와 병행 표기가 가능하다.

공공기관에서는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실생활에서 여전히 지번주소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집이나 족발 등 동네배달 음식점, 프랜차이즈점에서도 도로명 주소보다 지번주소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시민들의 길찾기 이용도 저조하다.

실제 온라인 설문조사사이트 패널나우가 지난 4월 만 14세이상 남녀 1만48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번 주소방식이 더 편하다는 응답이 5397명으로 조사대상자의 36.1%를 차지했다. 정부의 홍보활동에도 불구하고 10명중 4명가량은 여전히 지번주소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또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변환해주는 시스템을 이용할 때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변환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도로명주소를 지번주소로 변환해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택배기사와 배달업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에대해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도로명주소는 사람의 머리에서 인위적으로 계산해서 나온 것이라 분석을 해서 찾아가면 되지만 일상적으로 주소는 분석해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지번주소를 완전히 잊어야 도로명주소가 정착될 수 있다.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써왔고 알고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시해온 상태에서 지우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도로명 주소가 정착되려면 한 세대는 걸려야 한다. 어릴때부터 체험해야 성인이 되서 자연스럽게 주소를 쓸 수 있다"면서 "옛날에는 우편물이나 편지를 많이 보내 주소를 기억하기 쉽지만 요즘에는 주소를 쓰지 않아도 목적지를 찾을 수 있어 내면화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행자부도 도로명주소 시스템의 문제라기 보다 새로운 주소보다 익숙한 옛 주소가 편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큰 업체들은 도로명 주소 시스템이 대부분 반영돼 있으나 주문을 받는 직원들이 지역을 잘 아니까 옛 주소를 묻는 경우가 있다"면서 "일을 처음 시작한 택배기사나 집배원들은 도로명 주소로 지역이 쉽게 익혀지고 위치찾기가 편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지역과 동네를 잘아는 택배기사들은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얘기하면 어디인지 감이 안와 주소를 검색해 지도를 찾는 절차가 필요해 되묻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익숙하게 사용해왔던 지번주소와 달리 길고 복잡한 표기법도 새로운 주소로 기억해야 하는 심리적 거부감과 도로명주소의 정착을 더디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거지가 도로를 따라 형성된 영국의 경우 도로명 주소 표기법이 짧고 특정장소와 거리가 일치한다.

지난 2014년부터 전면 시행된 도로명 주소 활성화를 위해 투입된 예산은 4000억원에 이른다. 정부의 노력에도 도로명주소 정착 시간이 지체되자 각 시·도에서는 도로명 주소의 정착을 위해 홍보에 힘쓰고 있다.

행자부는 공공기관과 주소사용이 많은 민간기업 웹사이트에 대한 맞춤형 기술지원과 웹사이트 초기 제작부터 도로명주소를 정확히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을 포함해 주소사용이 많은 쇼핑몰·택배 등 2만여 개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주소활용 실태를 심층 분석하고 사이트 별 검색불편사항 개선 가이드를 제공하는 등 맞춤형 컨설팅을 실시한다.

도로명주소의 민간활용을 높이기 위해 도로명주소 안내도를 인터넷(www.juso.go.kr)으로도 제공하고 각종 웹사이트에서 최신의 주소정보를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지원도 확대한다.

행자부 관계자는 "도로명서비스 제공 개발자들이 도로명주소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검색하는 방법이 편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들에게 안내지도와 표준포맷을 보급하고 설명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도로명 주소를 정착시키려면 정부가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조 교수는 "도로명주소 도입 과정에서 혼란이 생겨 2개 주소를 동시에 쓰고 있는데 정부가 이 제도를 정착시키려면 강제성을 띌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가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서 도입한 제도라면 훨씬 더 강제성을 부여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sho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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