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중계, 더 느리고 더 낮고 더 무기력하게

아이즈 ize 글 위근우 2016. 8.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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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위근우

이번 2016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단 중 여성 선수의 비율은 45%, 역대 올림픽 중 최대 비율이다. 한국 선수단의 경우 남성 102명, 여성 101명으로 거의 동일하다. 복싱 여성 출전으로 모든 종목에 대한 여성 출전이 이뤄진 2012 런던 올림픽 이후에도 올림픽에서의 성평등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물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트위터 유저 ‘주단(@J00_D4N)’의 주도로 아카이빙되며 공론화된 것처럼, 이번 올림픽에서 지상파 중계진의 여성 차별적인 발언은 끊이질 않는다. 몽골 유도 선수인 문크바트에 대해 “보기엔 야들야들한데 상당히 경기를 억세게 치르는 선수”라거나, 펜싱 에페 선수에게 “여자 선수가 철로 된 장비를 다루는 걸 보니 인상적”이라는 말에는 여성을 낮춰 보는 태도가 깔려 있다. “저렇게 웃으니 미인대회에 출전한 것 같”다는 식의 외모에 대한 품평도 마찬가지다.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점에서 이미 비윤리적이지만, 또한 한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스페셜리스트들의 전문성을 얕잡아본다는 점에서 더더욱 불합리하다.

여성이 이룬 성과를 후려치는 것은 여성혐오의 흔한 양태다. 스포츠 중계에서의 여성 비하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13년 한국언론재단에서 발간한 ‘여성 스포츠관련 언론보도 분석연구’에 따르면 런던 올림픽 기간에도 여성 선수에 대한 보도 비율은 26.7%에 그쳤고 그마저도 기보배, 손연재, 김연경 등 몇몇 스타플레이어에 편중되었다. ‘미녀스타’, ‘미녀궁사’ 등의 외모 풍평 역시 있었으며, ‘신데렐라’, ‘꽃사슴’ 등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것을 한국 언론의 낮은 젠더 감수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외 미디어 역시 여성 선수의 성취를 종종 폄하한다. BBC에선 여자 유도 52㎏급 결승전에 대해 해설자가 ‘캣파이트’라는 발언을 했다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미국 수영선수 케이티 러데키를 여자 마이클 펠프스라고 소개했다. 진짜 유도는 남자 유도이고 여자 유도는 ‘캣파이트’이며, 뛰어난 여자 선수는 뛰어난 유사 남자 선수가 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명백히 남성 중심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근대 스포츠의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을 타자화 하는 서사와 궤를 같이 한다.

출발에서부터 남성성의 획득을 목적으로 했던 19세기 말의 근대 스포츠는 경쟁과 기록, 승리를 제일 높은 가치로 추구한다. 해당 가치들이 정말 남성만의 전유물이냐는 것과는 별개로, 당시 스포츠는 남성만을 위한 놀이로 설계되었다.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여성의 올림픽 참가에 대해 여성의 매력을 파괴하고 스포츠를 격하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올림픽 표어인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는 근대 스포츠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 관점에서 여성 선수에 대한 폄하는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 올림픽 표어를 기준으로 한다면 다수의 종목에서 여성 선수의 그것은 덜 빠르고 덜 높고 덜 힘찬 것이 된다. 즉 여자 유도가 아니라 이류 유도가, 여자 육상이 아니라 이류 육상이, 여자 수영이 아니라 이류 수영이 된다. 강한 여자가 아니라 여자치고는 강한 것이 되는 세계. 차이는 무시하고 하나의 객관적 지표로 평가하는 것이 정정당당한 것이라는 이 담론은 언뜻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이러한 기준 자체가 남성 중심적으로, 좀 더 정확히는 서양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맥락이 은폐되어 있다.

런던 올림픽에서 이뤄진 형식적 성평등이 위대한 성취임에도 형식적 차원을 넘어선 성평등 담론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미국의 법학자 데보라 로드는 [정의와 젠더(Justice And Gender)]에서 “젠더 불평등은 남성이 가진 기회의 부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연관된 기능과 자질의 가치폄하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복싱이 허용되기까지, 남성이 가진 기회를 여성에게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젠 여성의 스포츠가 남자 스포츠의 부족한 버전이 아닌 그 자체의 가치가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다. 가령 여자 배구 최고의 공격수인 김연경에 대해 사람들은 부족한 김요한이 아닌,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스포츠 스타로 받아들이고 열광한다. 또 다른 방식으로 여자 스포츠와 여자 선수의 가치를 발굴할 수도 있다.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영옥 원장은 과거 ‘성편향적 스포츠와 여성주의적 대안’이라는 논문에서 “여성종목 스포츠에 대한 남성중심적 해석이 바로 잡힌다면 여성 스포츠는 그 자체로 여성의 신체 능력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장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남성중심적인 담론 너머에서 스포츠의 새로운 의의를 찾아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16일 여자부 5000m 달리기 예선에서, 앞에서 넘어진 뉴질랜드 선수 때문에 함께 넘어진 미국 선수가 상대방을 일으켜 세워주고, 또 자신 때문에 부상을 당한 미국 선수를 일으켜 세우고 결승선에서 기다린 뉴질랜드 선수의 우정은 기록의 공정함과는 또 다른 의미의 스포츠 정신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언제나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앞서의 성차별적인 올림픽 중계는 그래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동시에 구태의연하다. 변화의 흐름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관점으로 현재를 읽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리우 올림픽의 경우 역대 가장 높은 여성 선수 참가율을 보이는 동시에, 영국 선수단에서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 2명이 여자부에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최초의 여자 비치발리볼 팀이 자신의 뜻으로 히잡을 쓰고 경기한 것이 이슈가 되자 그동안 노출을 당연히 한 여자 비치발리볼 복장 규정이 성차별적이라는 논의도 시작되었다. 과거의 올림픽이 정해진 규칙 안에서의 기록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여성들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의문시되지 않았던 남성 중심적인 올림픽의 권위가 도전받는 순간들을 목격하고 있다. 그 순간을 담아내는 주류 미디어의 언어가 “남편의 사랑의 힘” 따위의 빈곤한 수준이라는 건 민망한 일이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힘차게’ 세상을 읽진 못할지언정, 눈앞의 변화도 따라가지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올림픽에 가장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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