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스님의 웃음.. '염화미소' 따로 없네

박경일 기자 2016. 8. 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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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일순 걷히면서 드러난 어메이산 정상의 십방보현보살좌상 앞에서 간쑤성에서 왔다는 승려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높이 48m의 좌상은 순금으로 만든 24만 장의 금박을 입혀 놓았다.
어메이산 중턱의 청음각 가는 길에서 만난 호수. 산자락의 풍경이 수면에 그대로 반영된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청두의 야경. 강물을 가로질러 놓은 다리 지우엔치아오(九眼橋)는 교각이자 건물인데 고급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강가에 세워진 러산대불은 배를 타고 물러서 보거나, 바위를 파내 만든 잔교를 걸어면서 감상한다. 걸어서 봤을 때 크기의 압도감이 훨씬 더하다.

‘유비와 두보의 땅’ 중국 쓰촨성

중국의 서남 내륙의 쓰촨(四川)성. 이곳은 역사와 인물, 그리고 자연과 음식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가득한 두꺼운 책과 같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와 제갈량의 촉나라가 바로 이곳이고, 시성(詩聖) 두보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오래도록 은거했던 땅이기도 합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백두산보다 높은 거대한 어메이(峨眉·아미)산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석불인 ‘러산(樂山)대불’이 거기 있습니다. 강변의 화려한 문루가 그려내는 청두(成都)의 야경으로도, 혀끝이 타는 듯 뜨겁고 매운 요리로도 쓰촨은 알려진 땅입니다.

쓰촨 땅을 두꺼운 책장 넘기듯 여행한다면 기억해야 할 많은 것과 만나게 됩니다. 제갈량 출사표의 뜨거운 문장이나 두보의 눈물 가득 고인 시(詩) 한 수, 혹은 러산대불의 넉넉함이나 어메이산의 깊이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그것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경관을 어메이산 정상에서 만났습니다.

차를 타고, 걸어서, 또 케이블카를 타고 힘겹게 오른 어메이산 정상에서 만난 십방보현보살좌상. 순금을 입혀 번쩍거리는 건물 15층 높이의 거대한 불상 앞에서 붉은 가사를 입고 거기까지 올라온 스님들이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멀리 간쑤(甘肅)성의 오지에서 왔다는 스님들이었습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마저도 한마디 못 했습니다. 서로 아무런 얘기도 나눌 수 없었음에도, 호의를 나누는 방법은 웃음이었습니다. 스님들의 미소와 웃음이 어찌나 순박하고 천진하던지요. 그 웃음은 배워서 흉내 낼 수 없는, 욕심 없는 맑은 삶의 방식에서 나오는 것인 듯했습니다.

# 중국 내륙의 거대한 땅, 쓰촨성의 지붕으로 향하다

중국 대륙의 거대함은 여정을 준비하면서 지도를 펼치고 동선을 그릴 때 비로소 체감하게 된다. 중국의 스물두 개 성(省) 중 하나인 남서 내륙의 쓰촨성. 면적은 남한의 4.8배. 인구는 우리의 배에 육박하는 9000만 명에 달한다. 이 정도 크기와 인구라면 아예 ‘하나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만한 규모의 여행지는 동선이 길어져 일정을 짜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쓰촨성에 명소가 좀 많은가. 삼국지의 무대이기도 하고, 당나라 때 시인 두보의 자취가 있으며, 구자이거우(九寨溝)와 어메이산, 러산대불 같은 명소가 즐비하다. 웬만한 일정의 여행으로는 구석구석을 다 본다는 건 욕심일 따름이다.

쓰촨성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명소는 우리가 흔히 ‘구채구’라고 부르는 구자이거우. 비췻빛 연못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반짝인다는 곳이다.

그러나 쓰촨성의 성도 청두(成都)에서 구자이거우까지는 왕복 스무 시간쯤을 길에서 보내야 하는 탓에 아쉽지만 여정의 목록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첫 목적지로 선택한 곳이 청두에서 남쪽으로 160㎞ 떨어진 ‘어메이산’이었다. 산 이름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아미(峨眉)’다. ‘눈썹 같은 봉우리’이란 뜻일 텐데, 해발 3092m의 높이로 보나, 깊은 산세의 규모로 보면 ‘눈썹’이란 비유는 터무니없다. 산은 높고, 또 크다. 높은 해발고도와 험준한 산세보다 더 묵직한 건 중국에서 어메이산이 누리는 지위다. 어메이산은 중국 5대 명산 중의 하나. 한 번쯤 들어 본 적 있는 나머지 4개의 산의 이름을 우리 식으로 읽어보자. 황산, 무이산, 태산, 노산…. 어메이산은 이런 산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다. 어메이산은 또 중국의 5대 불교 명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 어메이산에서 만난 스님의 맑은 미소

청두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평원을 달리는 내내 길 뒤쪽으로 구름에 휩싸인 푸르스름한 산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어메이산이었다. 평원 위로 우뚝 솟은 어마어마한 산의 높이와 규모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어메이산은 차를 타고 올랐다. 걸어서 오르자니 산행 코스가 워낙 긴 데다 중국의 산들이 그렇듯 그 긴 등산로가 내내 길고 지루한 계단 길이다. 매표소 입구에서 출발한 셔틀버스는 49㎞의 산길을 1시간 30분 동안 달렸다. 그렇게 닿은 곳이 케이블카 하부 정류소가 있는 레이동핑(雷洞坪)이었다.

쓰촨에는 ‘하늘이 맑아 해가 드러나면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다는 뜻이다. 어메이산도 1년에 비 내리는 날이 250일쯤 되고, 산정은 늘 안개로 뒤덮여 있다. 산 중턱에서부터 시작한 빗줄기가 굵어지고 안개는 짙어졌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산정을 향해 걷는데, 비가 그치고 일순 안개가 걷히면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상이 신비스럽게 드러났다. 사면십방보현보살좌상이다. 보현보살상의 높이는 자그마치 48m. 무게는 600t에 달한다. 순금으로 번쩍이는 불상은 금박 23만 장을 입혀 치장한 것이란다. 금박 1장의 가격이 60위안(9940원)이라니, 금박을 붙이는 데만 22억8600만 원이 든 셈이다.

천문학적인 돈으로 지어진 금박 입힌 거대한 불상의 위용보다 더 마음을 붙잡은 건, 기도하는 신도들 틈에 붉은 누추한 가사를 입은, 맑은 눈망울의 스님들이었다. 말을 붙여봤지만 영어도, 중국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돌아온 건 웃음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맑고 순하게 웃을 수 있을까. 종교가 가닿고자 하는 맑은 마음이 그 미소 속에 있었다.

# 산중호수·청음각에서 물을 보고 듣다

어메이산은 높기도 하거니와 크기도 워낙 커서 곳곳에 빼어난 경관과 수많은 절집이 숨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두 개의 물길이 합수하는 자리에 세운 암자 ‘청인꺼(淸音閣)’였다. ‘맑을 청(淸)’에 ‘소리 음(音)’. 우리 식으로 읽으면 ‘청음각’이라 이름 붙인 건 두 물이 만나 쏟아내는 물소리 때문이리라.

우셰강(五顯岡) 매표소에서 산허리를 끼고 이어진 흙길을 따라 청음각까지 가는 길은 여간 운치 있는 게 아니다. 발아래로 안개에 휩싸인 협곡이 내려다보이다가 이내 자그마한 호수와 마주쳤다. 대숲이 우거진 산중 계곡에 난데없이 나타난 호수 풍경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마치 무협지 속의 경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호수 상류는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물빛이 맑았는데, 그 물을 출렁다리로 건너자 이내 두 물길이 만나는 자리에 정자가 있었다. 처마 끝을 날렵하게 쳐든 정자와 그 앞을 흐르는 물길은 ‘어메이산 10경(景)’ 중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청음각은 정자 뒤편에 있다. 물소리로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청음각은 당나라 때인 977년 창건된 암자다.

청음각까지 발을 들여놓는다면 산정까지 이어지는 전 구간의 등산로를 다 밟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길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완주코스는 자그마치 70㎞ 남짓. 당일치기는 불가능하고 빠르게 걷는다 해도 이틀 이상은 잡아야 한다.

# 거대한 석불에서 본 1000년의 시간

쓰촨성에는 어메이산 말고도 규모로 입을 딱 벌리게 만드는 또 한 곳이 있으니 바로 ‘러산(樂山)대불’이다. 어메이산에서 동쪽으로 45㎞ 남짓, 러산시를 감고 흘러가는 민강(岷江)과 대두하(大渡河), 그리고 칭이강(靑衣江)의 세 갈래 물길이 만나는 강변에 솟은 산의 서쪽 암벽을 통째로 깎아 새긴 마애불이 바로 러산대불이다. 높이가 71m로 앉아있는 불상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어깨너비만 28m에 달하고 얼굴너비가 10m, 귀 크기가 7m다. 폭 8.5m의 발등에는 100명이 모여 앉을 수 있을 정도다.

인도에서 전래된 최초의 부처형상을 한 석불은 바위틈으로 낸 잔교를 따라 오르내리며 볼 수도 있고, 강에 띄운 배 위에서 볼 수도 있다. 어느 쪽에서도 보든지 불상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지만 배 위에서 마주 보는 것보다는, 대불을 본존불로 삼은 사찰의 누각을 지나 좁고 가파른 석벽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위에서, 또 아래서 석불을 보는 것이 감동이 훨씬 더 크다.

러산대불은 당나라 때 한 승려가 배가 안전하게 다니길 기원해 조성한 석불로 713년에 공사를 시작해 완성까지 90년이 걸렸다. 조각 당시에는 금빛으로 칠했고, 13층 높이의 목조누각으로 덮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장식이 다 지워진 채 바위의 붉은색만 남았다. 장식을 다 벗어던진 거대한 석불 앞에서 어메이산 산정의 화려한 보현보살보다 더 크고 높은 믿음을 보게 되는 것은, 러산대불이 지나온 1000년이 넘는 시간 때문이리라.

# 청두의 무후사… 제갈량이 빛나는 곳

‘삼국지’를 허구의 소설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많지만, 진나라의 학자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는 중국 위·촉·오나라의 정사(正史)다.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실존인물이다. 사실 우리가 ‘삼국지’로 알고 있는 건 진수의 삼국지가 아니라 훗날 나관중이 꾸며낸 이야기로 살을 붙여 낸 ‘삼국지연의’다.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는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와 제갈량이 다스리던 옛 촉나라 땅이다. 삼국지 무대의 중심인 셈이다. 그래서 청두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관광지도 삼국지와 관련된 무후사다. 무후사는 유비의 묘를 건설하면서 조성된 사당이었다가 훗날 제갈량의 묘와 합쳐진 곳이다.

무후사에서 의외였던 것은 청두 주민들이 유비보다 제갈량을 더 높이 받들고 있다는 것. 무후사란 이름부터가 제갈량의 시호에서 따온 것이다. 명색이 황제인데 유비는 아예 관심 밖이다.

무후사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벽에 새겨진 제갈량의 출사표였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명문 중의 명문. 벽의 글씨는 후대에 쓰인 것이라는데, 앞부분은 차분한 글씨였다가 제갈량이 죽은 유비를 떠올리고 승리를 다짐하는 대목에서는 힘찬 획에 격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글씨의 획으로 글을 지은 이의 마음의 흔들림을 드러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 청두, 화려하고 뜨거운 욕망의 도시

무후사 뒤쪽은 촉나라의 옛 시장을 재현한 금리(錦里) 고가다. 비단을 주로 거래했다고 해서 ‘비단 금(錦)’자를 썼다. 이곳에는 노점부터 고급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 옷가게 등이 몰려 있다. 550m 남짓의 금리거리에는 어찌나 관광객이 많은지 걷는다기보다는 ‘떠밀려 간다’는 표현이 걸맞았다.

무후사와 함께 둘러볼 곳이 바로 두보초당이다. 당나라 때 시인 두보의 명성이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청두의 두보초당은 벼슬에서 물러난 두보가 3년 9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고난와 실의 속에서 살았던 두보는 이곳에서도 아들이 굶어 죽을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일까. 두보초당에 세운 두보 동상은 꼿꼿한 자태였으되 비쩍 여윈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여윈 모습으로 그는 여기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1400여 수의 시 중에서 800여 수를 지었다.

시인의 삶은 청두에서 더없이 궁핍했으나, 지금 청두는 밤이면 눈부신 야경으로 화려하기 짝이 없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남흐어(南河)의 강 위로 걸린 교각이자 레스토랑 건물인 안순랑치아오(安順廊橋)의 야경은 눈이 부실 정도였고, 강변을 끼고 들어선 레스토랑과 술집들은 밤늦도록 흥청거렸다. 유비와 제갈량의 나라 촉의 강성과 멸망도, 두보의 시퍼렇게 날이 선 현실비판의 시 구절도 이제 와서는 화려한 욕망의 도시의 불빛 아래 다 부질없는 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청두·어메이산시·러산시(중국 쓰촨성)=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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