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셀과 브레이크 동시에 밟는 무개념 국회의원"
◆ 공무원 바로 세우기 ① / 국회에 시달리는 공무원들 ◆
최근 국회에 불려갔다 온 기획재정부 A국장의 푸념이다. 그는 야당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동시에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게 답답하다는 내용의 얘기를 십 분 넘게 했다. 경기를 살리겠다며 액셀러레이터 격인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면서도 경기에 브레이크가 될 '법인세 인상'까지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엉터리 운전수라는 뜻이다.
"공무원은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별별 얘기를 다 들어가면서 설득하는 수밖에 없어요. 젊은 시절에는 나도 '나라 미래를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었는데 요즘 후배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죠."
푸념이 길다며 말을 마치던 그의 마지막 얘기가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로 시작하는 공무원 헌장과 묘하게 오버랩됐다. A국장 말처럼 요즘 공무원들은 '자랑스러움'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가장 큰 원인은 매일경제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 국회 정치인에게 있다. 포퓰리즘으로 정부가 만든 정책을 뒤집고 정부가 치밀하게 만든 법을 엉터리로 바꾸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상반기 정국을 뒤흔든 '연말정산 파동'이다.
지난해 1월 초 국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자기 주변에서 벌어진 연말정산 사례 몇 가지를 예로 들며 "연말정산 세법개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서민·중산층에 세금폭탄이 됐다는 것이다. 불에 기름을 끼얹듯 일부 시민단체가 극단적 사례를 들며 이에 동조했고 언론에서는 '토해내는 세금만 200만원' '13월의 울화통 연말정산' 같은 자극적 보도에 열중했다. 급기야 한 주 뒤 정부가 '연말정산 종합대책단'을 발족했고 두 달여 동안 근로자 1619만명에 대한 연말정산 자료를 전수 분석했다.
작년 4월 초 나온 최종 분석 결과는 '허무개그' 수준이었다. 정부가 세법개정 당시 예상한 숫자가 그대로 나온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극단적 사례'에 불과한 게 명백히 드러났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말정산 파동은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휘둘리면 정부 행정력이 크게 낭비되면서 바람직한 정책 방향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며 "앞으로도 몇 년간은 면세자 문제를 건드릴 용기 있는 공무원은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회 권력이 세지다 보니 정부 논리는 먹히지 않은 채 법안이 엉뚱하게 뒤집히고 별다른 이유 없이 입법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말 국회가 정부안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보유 기간에 상관없이 비사업용 토지에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도록 세법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상반기 양도세 폭탄 우려 때문에 토지 거래량이 뚝 떨어졌다. 울산시의 일본계 비즈니스호텔 유치도 땅 주인이 양도세에 놀라 토지 매각을 거부해 사실상 무산됐다. 정부는 이 같은 부작용 때문에 올해 보유기간에 따라 양도세를 차등해 매기는 개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똑같은 일을 두 번 한 셈이다.
한 야당 의원이 "개인정보 보호가 불충분하다"는 주장을 하고 수정안을 내놓지 않고 버텼다는 게 고용부 공무원들의 증언이다.
당시 관련 업무를 맡았던 B국장은 "의원 한 명의 반대로 법안이 방치되면서 2년 넘게 효율적인 예산 집행이 방해됐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선 "우리가 의원·보좌관의 하수인인가"라는 자조도 흘러나온다. 달라진 국회와 정부의 위상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입법고시 경쟁률은 늘 200대1이 넘어 행정고시의 4~5배 수준에 이르렀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한 사무관은 "예전 같으면 부처에 찾아와서 민원할 일을 이젠 국회 상임위 담당 의원 보좌관을 찾아가는 사례가 많다"며 "세종시 근무가 서울보다 못한 상황에서 중앙행정부처 공무원들이 자부심을 잃고 있으니 입법고시 인기가 행시에 비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김인수 팀장 / 조시영 차장 / 고재만 기자 / 문일호 기자 / 서동철 기자 / 문지웅 기자 / 김규식 기자 / 백상경 기자 / 정석환 기자 / 윤진호 기자 / 최희석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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