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끈적 무더위, 벌컥벌컥 진토닉

2016. 8. 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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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날씨가 덥다. 정말 덥다. 지난 일기예보를 보니 무려 5월부터 폭염주의보가 심심찮게 발효된 것 같다. 최근엔 습기까지 더해져 정말 ‘찜통’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30도를 넘는 날씨에 건물 구조상 창문도 못 열고 에너지 절약 시책인지 뭔지 때문에 에어컨도 속 시원하게 못 틀고 일해야 하는 우리네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힘내시라 건배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더울 땐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생각나는데, 보통 롱 드링크(long drink. 큰 잔에 탄산수 등을 섞어, 마시는 양이 많은 칵테일의 한 종류)라고 불리는 칵테일들이 좋다. 몰디브에서 마시면 특히 괜찮을 것 같을 모히토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많은 롱 드링크 칵테일들이 사랑받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진 토닉이 가장 유명하고 인기도 많은 편이다.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다른 여러 칵테일들과는 좀 다르게, 진 토닉은 인도의 동인도회사에서 근무했던 군대를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인도나 다른 열대지방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에겐 말라리아가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는데 1700년대에 키나나무의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키니네라는 물질이 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물질이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특유의 쓴맛이 걸림돌이었는데 19세기 초 인도에서 근무하던 한 영국인이 키니네에 물과 설탕, 라임, 그리고 진을 섞어서 말라리아 치료용으로 썼다. 이것이 진 토닉의 시초가 되었다.

데렉 제공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잔에 얼음을 넣고 드라이 진(Dry Gin·사진)을 적당량 넣고 토닉워터를 부어 잔을 채우면 끝이다. 가끔 레몬 필(Peel, 레몬 껍질. 칵테일에서 ‘필’이라 하면 보통 감귤류의 껍질을 잔에 대고 비틀거나 해서 껍질 속의 유분을 짜내어 향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을 하기도 하고 필 한 껍질을 잔에 넣기도 하고 안 넣기도 한다. 드라이 진 중 오이 향이 나는 진인 헨드릭스 진으로 진 토닉을 만들 때는 레몬이나 라임 대신 오이를 세로 방향으로 얇게 썰어 잔에 둘러서 서브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렇게 엄격한 규칙도 없고, 비교적 만들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으며 나 같은 아마추어가 만들어도 대충은 마실 만한 칵테일이 나온다.

물론 프로가 만든 진 토닉은 당연히 완성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연히 손님이 없는 시간에 단골 바를 방문했을 때 친한 바텐더가 진 토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진 토닉 제법과 그 차이를 말해주면서 시음을 해준 적이 있다. 몇 년 전이지만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진이나 토닉워터를 어떤 제품을 쓰느냐는 말할 것도 없고 가니시(Garnish. 음료 등에 곁들임으로 사용되는 식재료)나 필을 어떤 것을 쓰는가, 심지어 토닉워터의 탄산을 얼음 사이의 빈 공간에 부어 넣느냐, 아니면 미리 넣은 레몬이나 라임 껍질 위에 부어 넣느냐, 바 스푼(Bar Spoon. 바에서 쓰는 손잡이가 얇고 긴 숟가락) 위로 부어 넣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프로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크게 깨달았고, 나는 과연 내 일에서 이리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사는지 뒤돌아봤던 기억이다.

홍대 삼거리포차 건너편에 로빈스 스퀘어라는 연 지 8년이 넘은 바가 있다. 여의도의 다희 같은 바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바 중 가장 선배 격의 바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다양한 칵테일과 맛있는 안주들을 좋은 오디오 시스템이 연주하는 맛깔난 재즈 음악과 함께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특히 진 토닉이 아주 맛있는데, 시판되는 토닉워터를 쓰지 않고 자체적으로 토닉 시럽을 만들어서 이를 탄산수와 즉석에서 섞어 진 토닉을 만든다. 상용 토닉워터를 쓰지 않고 수제 시럽을 쓰기 때문에 비교적 덜 달면서 오리지널 토닉 특유의 짜릿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아마도 진 토닉이 처음 만들어졌던 그때의 그 맛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 평소에 별생각 없이 마셨던 진 토닉이 요즘 날씨처럼 끈적거리거나 평범하다고 느끼셨던 분이 있다면 한번 가보셔도 좋을 듯싶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나도 한잔하고 싶어진다. 지금 낮 12시50분인데….

데렉 아저씨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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