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손진호 어문기자 |
곡성의 결론만큼이나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표현이 있다. ‘귀신 따위에 접하게 되다’는 뜻의 동사 ‘씌다’다. 많은 이가 ‘내가 그런 결정을 하다니 뭔가에 단단히 씌인 모양’ ‘귀신에 씌였다’처럼 쓴다. 하지만 ‘씐’ ‘씌었다’가 옳다. ‘귀신에 쓰여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귀신에 씌어’라고 해야 한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들릴 듯 말 듯 우물우물하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을 뜻한다. 그런데 이 속담, 남북한의 말법 차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씻나락’을 ‘볍씨’의 경상 전라 지역 사투리로 보고, 많은 이가 쓰는 ‘씨나락’은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북한은 씨나락을 ‘벼씨’를 달리 이르는 말로 인정해 문화어로 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볍씨와 볍쌀을 표준어로 삼은 우리와 달리 벼씨와 벼쌀을 문화어로 삼고 있다.
‘나락’과 ‘벼’도 그렇다. 북한이 둘 다 인정하는 반면 우리는 나락을 벼의 강원 경남 전라 충청 지역의 사투리로 본다.
그렇다면, 말법대로 ‘귀신 볍씨 까먹는 소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을 줄 안다. 얼토당토않다. 속담은 말법보다 그 뜻이나 말맛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누군가 ‘귀신 볍씨 까먹는 소리’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란 속담도 재미있다. 무당이 굿을 끝내고 구경꾼에게 나눠 주는 떡이 계면떡인데, 속담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남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고 이익이나 얻으라는 얘기다. 계면은 내림굿을 하기 위하여, 무당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돈이나 쌀을 거둘 때에 무당을 인도한다는 귀신이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리고도 남을 ‘오싹함’을 나타내는 남북한의 말 씀씀이도 딴판이다. 우리가 ‘으스스하다’만을 인정하는 데 비해 북한은 ‘으시시하다’도 쓴다.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는 뜻으로 우리는 ‘섬뜩하다’, ‘섬찟하다’를 쓰지만 북한은 ‘섬찍하다’도 인정한다. ‘섬찟하다’는 한때 비표준어였으나 언중의 말 씀씀이를 인정해 표준어가 됐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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