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폭력에 대처하는 연극인들의 자세 -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의 두 여성 연출가

문학수 선임기자 2016. 8. 3. 22: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류주연 “통제·감시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모순 해부”
ㆍ최진아 “나도 검열될 수 있다는 불안, 우리 내부 들여다볼 것”

세월호 참사와 예술검열 사태 이후 연극인들의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류주연과 최진아다. ‘40대’ 그리고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연출가의 작품이 잇따라 막을 올린다. 그동안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더듬었던 두 연출가가 내놓는 신작들은 ‘통제와 감시, 차별과 배제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정치적 질문을 품고 있다. 류주연의 <금지된 장난>은 11~14일, 최진아의 <흔들리기>는 18~21일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두 공연은 지난 6월부터 5개월간 릴레이로 진행 중인 연극인들의 대대적인 저항연극제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의 일환이다. 3일 대학로에서 만난 최진아는 “세월호 이후 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내 연극적 시선을 사회와 정치로 돌려놓았다”고 했고, 류주연은 “나는 별로 전투적인 연극인이 아니었지만, 작금의 현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육성을 그대로 전한다.

■류주연과 극단 산수유 ‘금지된 장난’(11~14일)

권리장전 프로젝트에는 모두 23명의 연출가가 참여하고 있다. 배우와 스태프까지 포함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연극인들이 동참했다. 나는 거의 마지막에 합류한 경우다. 솔직히 말해 영광이다. 이렇게 많은 연극인들이 어떤 공감을 갖고 한데 모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연극계의 역사적 순간이다.

사실 난 정치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회의가 밀려왔다. 엄혹하고 잔인한 사회적 상황들이 잇따르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극단의 워크숍 공연으로 올린 <사소한 물음>이라는 작품은 그래서 나왔다. 시인 송경동의 시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아마도 내가 정치적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 첫번째 연극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발표하는 <금지된 장난>은 2034년을 상상한다. 외모와 학벌, 좋은 직장에 가정적인 남편까지 다 가진, 완벽해 보이는 여자의 일상을 통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결국 통제와 감시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추상적 담론을 펼치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소소한 일상을 말하고 싶은 연출가다. 일상을 추적하다보면 결국 정치가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자유가 ‘3㎝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극단 단원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고등학교 시절에 학생주임 교사가 두발 3㎝의 규칙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헤어스타일의 자유’를 누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비유법이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권력자의 견고한 통제와 감시 속에 살면서도 스스로를 자유스럽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통제와 감시에 스스로 익숙해진, 그래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우리의 모순을 연극으로 담아낼 것이다.

■최진아와 극단 놀땅 ‘흔들리기’(18~21일)

지난해 검열 사태가 불거졌을 때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 역시 언제라도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는 실감이 몰려왔다. 그때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공연하고 있었는데,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극장에서 손팻말을 들고, 공연 전단에 ‘검열을 반대합니다’라는 빨간 띠를 둘렀지만, 그걸로는 미진했다. 그만큼 나는 지난해부터, 아니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우리의 현실이 심각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권리장전 프로젝트가 기획됐고 기꺼이 참여했다. 23명의 연출가가 모여 회의를 하던 첫날, 가슴이 벅차고 설레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독립된 예술가’로 작업하는 사람들이다. 공연장에서 마주치거나 함께 술을 마실 때도 있지만, 연극 작업은 철저히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23명이 하나의 마음으로 모여 5개월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함께하다니…!

이번 연극 <흔들리기>는 ‘선미’라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에게는 ‘수빈’이라는 조카가 있는데, 6개월째 도서관에 다니며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다. 선미는 그 조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은 불안하고 위태로운데, 수빈이는 어쩌면 이렇게 안정적이고 편안할까. 또 이런 생각도 한다. 수빈이가 공무원이 된다면 지난해와 같은 검열 상황에서 검열관이 될까, 아니면 내부고발자가 될까. 그것이 연극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질문이다. 그렇게 선미가 상상하는 수빈이의 미래, 그리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열사태, 이 두 가지를 교직하면서 흘러가는 연극이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 연극을 통해 국가의 폭력을 우리는 각자 어떻게 느끼고 대처하는지, 즉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