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맞은 아이들 "경로당서 '효·예' 배워요"
[경향신문] ㆍ“배례” 구호에 배꼽인사…“부생아신” 사자성어 또박또박
ㆍ대전 용두동 남부경로당 초·중생에 예절교육 가보니
3일 오전 대전 중구 용두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남부경로당. 조용했던 경로당 안이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다. 여름방학을 맞아 경로당에서 열리는 ‘충·효·예 교실’에 참가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이다.
아이들은 경로당 2층에 마련된 교실에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용두동 충·효·예 교실 훈장인 조성환씨(77)가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한 뒤 자리를 정돈시켰다. “공수, 배례.” 훈장님의 구호가 떨어지자 아이들이 능숙하게 배꼽 위에 가지런히 양손을 올리고 허리를 숙였다. 조씨는 “인사를 할 때는 바른 마음과 태도가 중요한 것”이라며 바른 인사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인사 예절 교육이 끝나자 아이들이 교재를 꺼내들어 <사자소학> 효행 편의 첫 구절을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부생아신(父生我身)하시고 모국아신(母鞠我身)하사. 아버지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내 몸을 기르시니.” 장난끼 가득 머금은 아이들의 표정에도 금세 진지함이 묻어났다.
남부경로당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방학을 맞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 10여명이 매일같이 한자와 예절 교육 등을 받고 있다. 조씨는 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10년 넘게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동네 할아버지는 훈장 선생님이 되고, 경로당은 도심의 마을 서당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전에서는 현재 남부경로당 외에도 자치구 별로 2∼3곳씩 모두 15곳의 경로당과 노인회관 등에서 충·효·예 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방학 기간 동안 3∼4주에 걸쳐 300여명의 초·중교생을 대상으로 한자와 전통 예절 등을 가르친다.
충·효·예 교실에서는 주로 한자 전문지도사나 효지도사 같은 전문 자격을 가진 퇴직 교원 등 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마을 어르신들이 훈장 역할을 한다. 대전시가 교실 운영에 필요한 기본 교육 교재를 제작해 배부하고, 자치구에서는 예산을 지원한다.
방학을 맞아 뛰어놀기 바쁠 아이들도 경로당에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찜통더위를 이겨내며 알찬 방학을 보내고 있다. 서대전초 5학년 우승민군(11)은 “한자를 배우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훈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사자성어의 뜻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며 “어른에게 인사하고 절하는 법부터 충과 효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배우고 알게 되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조씨는 “요즘은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아이들이 기본적인 예절은 물론이고 인성 교육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퇴직 후에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아이들의 언행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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